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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단기술 vs 광물' 불붙는 미중 전쟁…한국 기업 공급망 위협
입력: 2024.12.04 16:56 / 수정: 2024.12.04 16:56

미 반도체 제재 다음날 중 갈륨 등 이중용도 품목 통제
수출 의존도 높은 한국 기업, 공급망 확보 난항 예상


미국의 반도체 제재에 중국이 희토류 수출 통제로 반격에 나서면서 미중 무역 전쟁에 불이 붙었다. 지난 2010년 12월30일 중국 장시성 간현의 한 희토류 광산에서 채굴이 진행되고 있다. /뉴시스
미국의 반도체 제재에 중국이 희토류 수출 통제로 반격에 나서면서 미중 무역 전쟁에 불이 붙었다. 지난 2010년 12월30일 중국 장시성 간현의 한 희토류 광산에서 채굴이 진행되고 있다. /뉴시스

[더팩트ㅣ장혜승 기자] 미국의 반도체 제재에 중국이 희토류 수출 통제로 반격에 나서면서 미중 무역 전쟁에 불이 붙었다.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 반도체 기업들의 공급망 확보에도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지난 2일(현지시간) 미국 상무부 산업안보국이 AI 반도체의 핵심 칩인 고대역폭메모리(HBM)을 대중 수출통제 품목에 추가하면서 본격적인 미중 무역 전쟁이 시작됐다.

HBM은 여러 개의 D램을 수직으로 연결해 데이터 처리 속도를 혁신적으로 끌어올린 고성능 메모리다. AI 반도체의 핵심 부품이다.

제재안 시행일은 한국 시간으로 내년 1월 1일부터다. 현재 생산되는 HBM2부터 HBM3E까지 모든 HBM의 중국 수출이 금지된다.

중국은 즉각 반격에 나섰다. 중국 상무부는 3일(현지시간) "국가안보와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미국에 대한 이중용도 물품 수출 관리를 강화하기로 했다"며 "갈륨, 게르마늄, 안티몬, 초경재료, 흑연 등 제품의 미국 수출이 엄격하게 통제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중용도란 특정 소재가 민간 목적과 동시에 군사적 목적으로 활용될 수 있는 경우를 의미한다. 갈륨과 게르마늄 등의 희토류가 전자기기나 반도체 생산 과정에 사용되지만 군사용 통신장비나 우주기술, 미사일 유도시스템 등에도 사용되는 것을 겨냥한 조치로 풀이된다.

희토류는 자연계에 존재하는 양이 많지 않아 희귀한 금속을 말한다. 총 17가지 종류가 있다. 열과 전기가 잘 통해 반도체, 전기차 배터리, 전투기, 디스플레이, 컴퓨터 등 첨단 산업의 필수 소재로 쓰인다.

첨단기술의 주도권을 잡고 있는 미국과 세계 광물 수급을 틀어쥔 중국이 맞붙는 양상이다.

중국이 희토류 미국 수출금지라는 카드를 꺼내든 데에는 희토류 개발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위상이 자리한다.

중국은 미국이 환경오염 등을 이유로 희토류 개발에서 손을 뗀 뒤 장악력을 키웠다. 미국은 1980년대까지 희토류 생산 1위 국가였지만 인건비가 오르고 환경오염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면서 생산량이 줄었다. 그 빈자리를 중국이 채웠다.

채굴·가공 과정에서 환경오염이 따를 수밖에 없는 특성상 희토류 채굴업은 개발도상국에 적합한 산업이기도 하다. 희토류는 추출이 어려워 지표면에서 채굴하는 과정에서 다량의 독성 폐수가 흘러나오고 방사능 오염수가 발생해 환경에 해악을 끼친다.

이런 이유로 중국이 장악한 희토류를 놓고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는 '미국이 희토류에서 중국을 따라잡으려고 계속 노력 중이지만 점점 설 자리를 잃고 있다'고 평가했다.

문제는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 특성상 국내 기업들이 타격을 받는다는 점이다. 미국의 이번 반도체 제재의 강도가 기존 조치보다 강하다고 보기 어렵다는 의견도 나오지만 중국의 수출 통제로 광물 가격 상승은 피할 수 없게 됐다는 점에서 국내 기업들은 긴장할 수밖에 없다.

이종호 서울대 반도체공동연구소 소장(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한국 입장에서는 미국과 중국의 사정을 다 봐야 하는데 (이번 미중 무역 전쟁으로) 공급망 확보의 자유도가 더욱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진단했다.

글로벌 공급망 위기가 새로운 문제가 아니라는 점에서도 위기감은 더욱 짙다. 한국경제인협회가 회원사를 대상으로 '2024년 글로벌 이슈 및 대응계획'을 조사한 결과 기업들은 '글로벌 공급망 문제 심화'(23.0%)를 한국 경제에 영향을 줄 이슈로 꼽았다.

이어 '미국 고금리 기조 장기화'(18%), '전쟁 장기화 및 지정학적 갈등 확산'(17.2%), '미중 갈등과 탈중국 필요성 증대'(14.8%)가 뒤를 이었다.

한국무역협회가 국내 기업 633개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국내 기업 10곳 가운데 7곳이 공급망 문제를 경험했으며, 이 중 85.8%는 공급망 안정화 전략을 추진 중인 것으로 조사됐다.

이종호 소장은 "미중 무역 전쟁과 상관없이 희토류 등 한국이 보유하지 못한 광물의 공급망을 평소에도 다양하게 구축해야 한다"며 "정부도 향후 리스크로 적용할 수 있는 각국의 규제 및 동향을 면밀하게 파악하고 기업들이 광물 등 핵심 소재들을 공급받을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zzang@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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