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팩트│황원영 기자] 현대캐피탈이 역대 최대 글로벌 성과를 내놓고도 싸늘한 시선을 받고 있다. 최근 발표한 해외 실적에 지분 관계가 없는 법인이 포함됐다는 내용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현대캐피탈은 실적 발표 당시 현대자동차그룹 손자회사인 현대캐피탈 아메리카(HCA) 등 해외 법인을 포함했다. 하지만 해당 법인에 대한 지분은 전혀 보유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실적 뻥튀기 논란에 대해 회사는 억울하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앞서 지난달 17일 현대캐피탈은 지난해 글로벌 시장에서 역대 최고 실적을 거뒀다고 밝혔다. 현대캐피탈에 따르면 작년 말 기준 현대캐피탈 해외법인들의 자산 총액은 전년 대비 30% 늘어난 74조 원으로 집계됐다. 국내 자산 규모(32조 원)의 2배를 넘는 수준이다. 3분기 말 기준 세전이익 합계는 1조1400억 원으로 전년 같은 기간 대비 2배 이상 증가했다. 지난해 전체 실적이 공개되진 않았으나 이 같은 추세라면 1조5000억 원 안팎의 세전이익을 기록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이는 코로나19에 따른 글로벌 경기 침체와 자동차 반도체 수급난을 극복하고 거둔 성과로, 업계의 눈길을 끌었다.
하지만, 실적 뻥튀기 논란이 불거지면서 의미가 퇴색했다. 도마에 오른 건 미국 법인인 현대캐피탈 아메리카다. 현대캐피탈 아메리카는 지난해 3분기 기준 8720억 원의 세전이익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 대비 125% 성장한 수치다. 같은 기간 자산 역시 26% 이상 성장했다. 현대캐피탈 해외법인 중 이익 규모가 가장 큰 수준인데, 문제는 현대캐피탈이 이 회사 지분을 1%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지분 관계가 없는 현대캐피탈 아메리카를 포함해 역대 최고 해외 실적을 발표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현대캐피탈은 지난해 해외사업 실적을 공개하면서 현재 13개 국가에 진출해 있는 해외 법인 성과를 모두 취합했다. 현대차·기아와 시너지 효과를 통해 현대캐피탈 해외사업이 괄목할만한 성과를 냈다는 설명도 곁들였다. 해당 13개 해외 법인 중 현대캐피탈은 현대캐피탈 캐나다, 현대캐피탈 브라질, 현대캐피탈뱅크 유럽 등 일부 해외법인의 지분만 보유하고 있다. 현대캐피탈 아메리카의 경우 1989년 현대차가 미국에 진출하는 과정에서 설립됐는데, 현대차·기아가 현지 법인을 통해 회사 지분 100%를 갖고 있다. 현대캐피탈은 현대캐피탈 아메리카 지분을 보유하지 않고, 마케팅 및 리스크 관리 경영 자문을 통해 수수료를 받는다.
현대캐피탈이 자사와 무관한 해외 법인으로 실적을 부풀렸다는 논란이 이어지자 금융당국은 현대캐피탈 실적 공시와 관련한 조사에 나섰다. 실적 발표 시 지분 관계가 없는 회사를 자회사로 포함할 경우 지배구조법상 문제의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반면, 이 같은 논란에 대해 현대캐피탈 측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현대캐피탈 관계자는 "현대캐피탈은 현대자동차그룹 내 금융사로써 그룹의 글로벌 금융사업 실적을 공개한 것일 뿐 자회사라고 언급한 바 없다"며 "현대캐피탈 국내 법인 실적에 포함시킨 것도 아니다"고 반박했다. 또 "국내 법인이 현대자동차그룹 금융부문 글로벌 비즈니스를 총괄하는 입장에서 지난 몇 년간 계속 글로벌 법인 전체 실적을 공개해왔다"고 덧붙였다.
현대캐피탈 실적 공시에 대한 금융감독원 조사는 마무리된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캐피탈 관계자는 "금융당국 조사가 마무리됐으며 위와 같은 내용을 모두 소명했다"고 부연했다. 현대자동차그룹 금융 총괄 자회사로써 국내 법인 실적과 무관하게 해외 사업 현황을 취합·제공했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현대캐피탈 해외 법인 실적 공시에 대해 문제가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자회사가 모회사의 손자회사 실적을 발표하는 셈인데 이 경우 자사 해외 실적으로 오인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앞서 지난해 9월 정태영 부회장이 현대캐피탈 대표이사에서 물러나고 같은 해 12월 기아가 기존 특수목적법인(SPC)의 현대캐피탈 보유 지분 20%를 추가 취득했다. 이로써 현대캐피탈은 현대자동차그룹 직할경영 체제를 본격화했다. 현대자동차그룹의 현대캐피탈 지분율은 현대차 59.7%, 기아차 40.1%로 총 99.8%에 달한다. 업계 관계자는 "현대자동차그룹 내 자회사 실적을 현대캐피탈이 공시함으로써 자사 글로벌 실적마냥 착시현상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며 "오해의 소지가 발생할 수 있다는 얘긴데 현대캐피탈이 상장사일 경우 주가 조작 등의 논란이 불거질 수도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