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팩트ㅣ박대웅 기자] 국내 재계에서는 처음으로 4세 경영체제를 여는 박정원(54) 차기 두산그룹 회장이 대관식을 앞두고 숨가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4만1000여 두산 그룹 임직원을 이끄는 최고 사령탑 등극을 앞두고 있지만 그룹 안팎에 산적한 과제 또한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이를 반영하듯 박정원 회장은 업무 중이나 이동 중에도 휴대전화를 놓지 않고 항상 상황에 대비하는 모습이 <더팩트> 취재진 카메라에 잡혔다.
오는 28일 '대관식(회장 공식 취임)'을 앞두고 있는 박정원 ㈜두산 지주부문 회장은 지난 22일 비공식 일정으로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을 찾아 개인 업무를 소화했다. 넥타이를 하지 않은 편안한 정장 차림으로 호텔 로비를 나선 박정원 회장은 지난 2일 ㈜두산 이사회에서 차기 그룹 회장으로 내정된 후 약 2주 만에 <더팩트> 취재진 카메라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더팩트> 취재진은 두산의 새로운 리더로 등장한 박정원 회장과 직격 인터뷰를 갖기 위해 다각도로 접촉을 시도했으나 번번이 실패한 후 이날 처음 대면 기회를 갖게 됐다.
분 단위로 시간을 쪼개쓰는 박정원 회장은 이동중에도 휴대전화를 놓지 않았다. 왼손에는 휴대전화와 함께 약병으로 보이는 플라스틱 용기를 들고 있었다. 호텔을 나서던 박정원 회장은 취재진과 갑작스런 대면에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담담한 표정으로 응대했다.
하지만 그의 손에 들린 휴대전화와 약병은 왕좌에 오르지만 남모를 고심을 간접적으로 드러내는 상징물로 취재진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회장님의 휴대전화'는 보기 힘든 물건 중 하나다. 통상 주요 현안들을 임원 등을 통해 보고받는 회장이라는 특성상 개인 휴대전화를 손에서 놓지 못하는 모습은 다소 이채로운 장면으로 보였다. 여기에 과거 건강상의 이유로 병역까지 면제받는 등 병력까지 있는 박정원 회장의 약병은 '노심초사(勞心焦思)'하며 속을 태웠을 고민의 깊이를 간접적으로 드러냈다.
고민을 반영하듯 입도 무거웠다. '회장직 선임을 축하합니다'라며 직격인터뷰를 요청했지만 가볍게 눈인사만 건넨 뒤 곧바로 차에 올랐다. 박정원 회장이 신라호텔을 찾은 이유에 대해 두산 관계자는 "그룹 차원의 공식 일정은 아니다"면서 "개인 일정 차 찾았고, 누구를 만나고 어떤 업무를 했는지 알 수 없다"고 말을 아꼈다. 아울러 "25일 ㈜두산의 정기 주주총회와 이사회 그리고 28일 취임식 등 일정은 차질 없이 준비 중이다"고 덧붙였다.

두산의 4세 승계는 지난 2일 구체화됐다. 박용만 회장은 ㈜두산 이사회에서 "오래 전부터 회장직 승계를 생각해 왔고, 임기가 끝나는 올해가 적절하다고 판단했다"면서 "지난 몇 년간 업무를 차근차근 이양해 왔고, 대부분 업무도 위임하는 등 할 일을 다했다"고 밝혀 박정원 체제로의 전환을 공식화했다. 박용만 회장은 지난해부터 박정원 회장에게 그룹 경영계획안을 보고받도록 했고, 분기별 동향 보고도 지난해 하반기부터 박정원 회장이 받도록 했다. 또 신입사원 최종면접도 지난해부터 박정원 회장이 대부분 맡았다.
사실상 박정원 회장 체제 출범을 위한 사전 준비는 오랜 시간을 거쳐 마무리 단계다. 문제는 현재 그룹 안팎의 사정이 그리 녹녹치 않다는 점이다. 국내 주요 신용평가사는 지난해부터 진행된 선제적 구조조정 등 실적 개선을 꾀하는 두산의 앞날을 어둡게 전망하며 신용등급을 강등시켰다. 국내와 중국의 건설경기 침체와 신흥국 시장에서 경쟁심화 등 부정적 요인이 '군살빼기'에 나선 두산의 수익구조 개선 노력의 발목을 잡을 것으로 내다봤다.
신용평가사의 부정적 전망에 두산 관계자는 일시적 악재로 평가했다. 그는 "지난해부터 시작된 구조조정의 여파로 당장 신용도가 떨어진 것처럼 보이지만 이는 선제적 구조조정의 여파일 뿐"이라면서 "올해 구조조정 효과가 발현되고 중공업 부문 수주 회복 및 원가 절감 등 호재가 시너지를 낼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당면한 유동성 위기는 극복할 수 있다"고 밝혔다.
박정원 회장에게 있어 그룹 주력 계열사의 실적 개선 못지않게 '두산의 미래'이자 '박정원의 미래'가 될 핵심인 서울 시내 면세점 사업이나 연료전지 사업 등 신성장동력 발굴 및 확대도 주요한 과제다. 면세 사업은 종전 중공업 중심에서 벗어나 두산의 새 미래 먹거리로 사업 포트폴리오를 재편할 수 있는 중대한 변곡점이다. 더욱이 박정원 회장은 지난해 ㈜두산이 면세점 사업 특허권을 신규 취득하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 주인공이기도 하다. 오는 5월 개장을 앞두고 있다.
연료전지 사업 역시 마찬가지다. 박정원 회장은 2014년 연료전지 사업을 주도했고, 사업 시작 2년 만에 안정 궤도에 진입시켰다. 연료전지 사업부문의 지난해 매출은 1600억 원, 영업이익 55억 원으로 2014년 동기 대비 각각 650%, 220% 증가했다. 2년 만에 5870억 원의 수주 실적을 올렸다. 두산 관계자는 "연료전지 부문에 있어 수주가 꾸준이 이어지고 있다"면서 "국내는 물론 국외에서도 호평을 받고 있는 만큼 올해도 기대에 부응하는 성과를 낼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 밖에도 실추된 브랜드 이미지를 회복하는 것도 박정원 회장이 반드시 넘어야할 고개다. '사람이 미래다'를 슬로건으로 내건 두산이지만 지난해와 지난 21일 불거진 '면벽 희망퇴직 종용' 논란은 '명퇴가 미래다'라는 비아냥을 샀다. '20대 희망퇴직' 논란은 각종 커뮤니티와 SNS에서 두산을 성토하는 글이 도배되는 기폭제 역할을 했다. 또 '면벽 퇴사' 논란은 '인재 경영'을 강조한 두산의 기업 이미지를 크게 훼손했다.
박정원 회장은 이처럼 산적한 과제를 안고 오는 28일 오전 서울 길동의 DLI연강원에서 두산가 3·4세와 임원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열리는 비공개 취임식에서 왕관을 수여받는다. 휴대전화와 약병을 들고 고심한 박정원 회장이 재무구조 개선과 신성장동력 발굴, 그리고 실추된 기업 브랜드 이미지 회복 등 산적한 현안에 대해 어떤 카드를 꺼내들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