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팩트ㅣ장병문 기자] 국내 30~40대 남성들에게 기아자동차 엘란에 대해 물어보면 '불운의 스포츠카'라는 생각이 먼저 떠오를지도 모르겠다. 엘란은 이국적인 디자인과 강력한 힘을 갖춘 스포츠카였으며, 천장을 열 수 있는 국내 최초 컨버터블로 누구나 한 번쯤 꿈꿨을 드림카였다.
수입 스포츠카의 가격이 높아 현실적인 가격으로 살 수 있는 국내 스포츠카는 현대자동차의 제네시스 쿠페 정도다. 소비자의 선택이 제한된 스포츠카 시장에 기아 4도어 정통 스포츠카(프로젝트명 CK)가 출시된다는 소식은 반가울 수밖에 없다.
기아의 두 번째 스포츠카가 개발되고 있는 가운데 기아 최초의 스포츠카였던 엘란의 추억에 잠시 빠져 보자.
1996년 4월 현대차 티뷰론이 국내 출시되고 석 달이 못 되어 기아차가 엘란을 선보였다. 기아는 영국 로터스로부터 엘란을 들여와 국산화했다. 기아의 독자 개발이 아니기 때문에 엘란의 의미가 축소됐지만 스포츠카의 불모지였던 한국 자동차 시장에 큰 획을 그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당시 기아는 크레도스의 1800cc DOHC 엔진을 튜닝해 엘란에 이식했다. 최고출력 151마력으로 최고 시속 220km, 정지에서 100km/h 도달시간 불과 7.4초였다.
하지만 상업적으로는 실패했다. 차 값은 2750만 원으로 당시 쏘나타의 두 배였다. 기아는 월 100대 안팎을 판매해 2만 대가 팔리면 단종할 계획을 했다.
엘란 출시 초기 월 180대 주문이 밀려왔다. 당초 예상했던 월 80대를 훌쩍 뛰어넘는 수치였다. 하지만 기아차의 엘란 생산 능력은 주문을 따라가지 못했다. 고객이 주문해도 3~4개월 후에야 인수할 수 있었다. 생산공정이 수작업으로 이루어진 것이 문제였다.
엘란 출시 이듬해인 1997년 경기 침체가 시작됐고 기아는 그해 7월 15일 부도 유예를 발표했다. 그 이후 기아차는 현대차에 인수되어 지금의 현대기아자동차 그룹의 일원이 됐다.
기아차가 현대차로 흡수됐지만 엘란을 계속 판매할 여력은 없었다. 그렇게 1999년 엘란은 생산이 중단됐다.
엘란의 공식 생산대수는 1055대로 그중 200대가 수출됐고 나머지는 국내에 판매됐다. 엘란 개발비로 1100억 원이 투입된 사실을 비추어 볼 때 1대 당 1억 원 수준의 엘란을 2750만 원에 판매한 셈이다.
지난해 국토교통부에 등록된 엘란은 553대이며, 엘란 동호회는 현재 약 200대 정도가 운행되고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