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취재기] 일왕 생일 파티 안팎, '같은 공간, 다른 세상'
  • 서민지 기자
  • 입력: 2015.12.05 10:56 / 수정: 2015.12.05 10:56
지난 3일 서울 남산 그랜드하얏트호텔에서 아키히토 일본 국왕의 83번째 생일 축하 행사가 진행됐다. /남윤호 기자
지난 3일 서울 남산 그랜드하얏트호텔에서 아키히토 일본 국왕의 83번째 생일 축하 행사가 진행됐다. /남윤호 기자

일왕 생일 파티 반대에도 축하 행렬 이어져

[더팩트ㅣ그랜드하얏트호텔=서민지Ⅱ 기자] 차분한 안과 달리 바깥에선 큰소리가 오갔다. 일왕 생일 파티가 진행된 그랜드하얏트호텔의 이야기다. 호텔 안은 일왕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방문객들의 발걸음이 이어졌고, 호텔 밖은 행사를 막는 시위대로 한바탕 소동이 일어났다.

3일 오후 5시 30분부터 약 3시간 동안 서울 남산 그랜드하얏트호텔에서 주한 일본대사관 주최로 아키히토 일본 국왕의 83번째 생일 축하 행사가 진행됐다. 삼엄한 경호 속에 진행된 행사는 조용한 분위기에서 진행됐지만, 이와 달리 바깥은 행사 반대 시위로 떠들썩했다.

일왕 생일 파티는 경찰의 철통경호 속에 치러졌다. /남윤호 기자
일왕 생일 파티는 경찰의 철통경호 속에 치러졌다. /남윤호 기자

이런 상황을 예상했는지 호텔 입구부터 행사장 로비, 정문에는 30여 명의 경찰과 직원들이 배치됐다. 지난해 같은 장소에서 열린 일왕 생일파티 때 시위대가 일장기가 그려진 전단지를 불태운 바 있으며, 이번에 달걀을 투척할 수 있다는 경찰 측 정보 때문에 철통경호가 이어지고 있었다.

행사 시작 전부터 주차장에 경찰차와 버스가 대기하고 있었다. 조심스럽게 다가가 경찰차 문을 두드렸다. "오늘 경찰 인력 몇 명 정도 오는 건가요?"라고 묻자 "어디서 오셨나요? 말할 수 없습니다"라며 대답을 거부했다. 그간 논란이 많던 행사였기에 경찰 측도 조심스러운 입장을 보이는 듯했다.

행사가 진행되는 연회장으로 조심스레 내려갔다. 연회장 앞에는 기업 총수, 기업인, 단체장들의 축하 화환들이 즐비했다. 지난해 생일파티 때 보내진 화환이 논란이 됐지만 연회장 앞은 여전히 화환으로 가득 찼다. 축하화환을 보낸 사람은 조양호 대한항공 회장, 지창훈 대한항공 사장, 박삼구 금호아시아나 회장, 송승준 신한은행 수송동지점장, 김재철 동원그룹 회장, 유정준 SK수펙스추구협회 글로벌 성장위원장, 김선향 대한적십자사 부총재 등이다.

해당 관계자들은 축하의 의미로 보낸 것일 뿐 별다른 의미가 없다고 입을 모았지만 일각에서는 또 다른 해석을 하기도 한다. 특히 일부 인사는 일왕을 '천황'으로 표기해 반일 감정론자들에게는 뭇매를 피할 수 없을 것 같다.

일왕의 생일 파티 연회장 앞은 이를 축하하는 화환들로 가득 찼다. /서민지 기자
일왕의 생일 파티 연회장 앞은 이를 축하하는 화환들로 가득 찼다. /서민지 기자

방문객과 화환을 이리저리 살피고 사진을 찍으니 관계자들이 기자에게 "어디서 오셨어요?", "행사 참여하시나요?"라고 물어 왔다. 누가 봐도 행사 참여자로 보기엔 의심 가는 행동이었을 것이다. 연회장 쪽은 관계자만 올 수 있다는 말에 구석구석 살핀 뒤 다시 호텔 밖으로 향했다.

오후 5시가 되자 애국국민운동대연합이 호텔에 도착했다. 이들은 호텔 로비에서 시위를 예고한 뒤 호텔 정문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경찰은 황급히 따라가 정문 앞을 지켰다. 매서운 추위와 칼바람이 몸을 얼게 했지만, 시위대는 목소리를 높였고, 경찰은 꿋꿋이 경호를 이어갔다.

시위대는 "통한의 일본 식민지 36년 조선의 땅은 지금 대한민국이다. 안중근장군님 동상이 있는 곳 남산에서 일본 왕 아키히토 생일기념식 행사라니 통탄할 일이다"라며 행사 중단과 함께 참석자 명단 공개를 요구했다. 이어 "아직 위안부 문제를 포함해 한일 관계가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일왕 생일 파티를 하는 것은 민족의 수치"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시위대가 성명서를 읽어 내려가며 목소리를 더욱 높여갈 때쯤 바로 옆에서 또 다른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한 여성이 일본의 평화 헌법 준수와 자위대법 반대, 원폭 피해 등을 소리 높여 말하며 1인 시위를 하고 있었다. 분노에 가득 찬 이 여성은 호텔로 향하는 차량을 큰 소리로 비판하며 막아섰다. 그는 지난해에도 일왕 생일파티를 규탄하는 시위를 진행해 일명 '호통 아줌마'로 불린 바 있다.

경찰은 혹시 모를 상황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시위대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경찰 측은 폭력적인 상황이 발생할 경우 시위대를 검거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다행히 아무런 마찰 없이 끝났다.

그랜드하얏트호텔 정문 앞은 일왕 생일 파티을 반대하는 시위대로 시끌벅적했다. /남윤호 기자
그랜드하얏트호텔 정문 앞은 일왕 생일 파티을 반대하는 시위대로 시끌벅적했다. /남윤호 기자

이날 그랜드하얏트호텔은 '같은 공간, 다른 세상'이었다. 따뜻한 호텔 안은 지나치게 조용했고, 논란을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 방문객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반면 바깥은 살을 에는 듯한 추위 속에 시끌벅적했다.

2015년, 광복 70주년이 되는 해다. 또 지난달 초 한일 정상회담 후 과거사 문제로 양국의 갈등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서울 한복판에서 일왕 생일 행사가 진행되는 것, 이를 축하한 기업인, 그룹 회장들의 행동은 많은 생각을 자아낸다. 왜 보냈을까. 대표적 일본계 기업이라는 논란을 빚고 있는 롯데는 보내지 않았는데 그들은 왜?

취재과정에 몇몇 그룹들 질문도 또 다른 상념을 낳는다. "A그룹도 화환을 보냈나요" "B회장은 축하 문구를 뭐라고 썼나요"

한편 일왕 생일파티는 '내셔널 데이 리셉션(National day reception)' 행사의 일환이다. 재외공관을 두고 있는 나라는 대부분 주재국에서 1년에 한 번씩 국경일을 기념하는 연회를 개최하는데 이를 '내셔널 데이 리셉션'이라 한다. 일본의 경우 아키히토 일왕의 생일인 12월 23일을 이날로 정하고 매년 12월 초 기념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jisseo@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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