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 형제의 지분 싸움' 캐스팅보트는 두 부인과 딸 손에
롯데가(家) 신 씨 가문의 '형제의 난'이 한일 경제계 최대 관심사로 떠오른 가운데 신격호(92) 그룹 총괄회장을 상대적으로 근거리에서 보필하고 교감을 나누는 부인들과 장녀 등 롯데가 여성 3인방의 행보가 주목되고 있다.
신 총괄회장의 두 아들 신동주(61) 전 일본롯데홀딩스 부회장과 신동빈(60) 롯데그룹 회장이 그룹 경영권을 두고 팽팽하게 대립하는 양상에서 신 총괄회장이 각별하게 생각하는 두 명의 부인과 딸의 발언에 큰 힘이 실릴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특히 고령으로 인해 신 총괄회장의 판단력이 예전같지 않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터라 그가 아내와 딸의 목소리에 어느때보다 귀기울일 가능성이 높다는 게 주변의 시각이다.
신 총괄회장은 세 명의 부인을 뒀다. 일본으로 건너가기 전 같은 고향 출신인 첫째 부인 故 노순화 씨 사이에서 장녀 신영자 롯데복지장학재단 이사장이 태어났다. 둘째 부인은 일본인 시게미쓰 하츠코 씨로 동주-동빈 형제의 모친이다. 마지막 셋째 부인은 1970년대 활동했던 영화 배우이자 제1 회 미스 롯데 출신인 서미경 씨다. 슬하에는 딸 신유미 롯데호텔 고문이 있다.
신 총괄회장은 일본으로 건너가 사업을 할 때 시게미쓰 여사와 만나 결혼했다. 1954년에 첫째인 신동주 전 부회장을 낳고 이듬해 둘째인 신동빈 회장을 출산했다. 그는 그간 회사 경영에 참여하지 않았지만 두 아들이 경영권을 두고 다투는 지난달 30일 전격 입국해 지대한 관심을 모았다. 신영자 이사장 외에 신 총괄회장을 설득할 수 있는 두 형제의 모친이 등장하자 그의 의중이 무엇인지 시선이 집중됐다. 그는 이날 김포공항에서 "히로유키(신 전 부회장)와 아키오(신 회장) 중 어느 쪽이냐"는 질문에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일각에서는 시게미쓰 여사가 차남 신동빈 회장측에 가깝다는 관측도 내놓고 있으나 그는 서울체류 및 일본으로 돌아가는 순간까지 확실한 의중을 드러내지 않았다.
일본롯데홀딩스 관계자에 따르면 시게미쓰 여사 역시 한일 롯데그룹 지배구조의 정점에 있는 광윤사 지분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지난 2002년 신 총괄회장이 50% 가까이 보유하던 지분을 두 아들에게 상속하면서 시게미쓰 여사에게도 상당한 지분이 넘어갔다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또 시게미쓰 여사는 첫째 부인의 딸인 신영자 이사장과 평소 팔짱을 끼고 다닐 정도로 가깝게 지내는 사이로 알려져 광윤사 지분을 보유한 아내와 딸이 입을 맞추면 신 총괄회장의 의중에 상당한 영향력을 끼칠 것으로 주위에서는 판단한다.

장녀 신영자 이사장에 대한 신격호 총괄회장의 사랑은 유독 각별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지난 28일 일본에서 돌아온 신 총괄회장과 신영자 이사장이 함께 차에서 긴밀한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이를 뒷받침한다. 신동주 전 부회장이 신 총괄회장을 모시고 일본으로 넘어갈 수 있었던 것도 이복누나인 신영자 이사장의 설득 덕분이었다는 추측이 나온다. 신동빈 회장측은 신영자 이사장이 신 전 부회장과 교감하면서 신격호 총괄회장을 설득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주장한다. 다시말해 신 이사장은 반 신동빈 전선을 막후에서 지휘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신 이사장과 시게미쓰 여사와의 인간적 친분이 비지니스측면에서는 어떻게 작동할 지 주목된다.
셋째 부인 서미경씨와 딸 역시 신 회장의 총애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씨는 롯데백화점과 영화관 매점 사업권 등 알짜 사업을 소유하고 있고 롯데그룹의 주력 계열사인 롯데쇼핑 주식을 0.1% 보유하고 있다. 딸 신 고문도 롯데쇼핑 주식의 0.09%, 계열사 롯데푸드와 코리아세븐 주식도 각각 0.33%와 1.4%씩 갖고 있다. 서씨와 신 고문이 가진 지분이 이번 '형제의 난'에서 일정 부분 영향력을 행사할 것으로 추측되는 이유다. 아울러 모녀는 신 회장 측으로부터 상당한 액수의 부동산과 땅, 건물 등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27일 신영자 이사장이 신 전 부회장과 함께 신 총괄회장을 모시고 일본으로 건너간 것과 달리 서씨 모녀는 아직까지 두 형제 가운데 누구의 손을 잡을지 알려지지 않고 있다.
신동빈 회장 측은 본인 소유 지분(19.1%)과 우호세력인 우리사주(12%) 외에 20% 이상 우호지분을 추가로 확보, 일본 롯데홀딩스 지분을 50% 이상 집결시켰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신동주 전 부회장은 자신의 보유 지분(19.1%)에 광윤사(27.65%), 신영자 롯데복지재단 이사장(1% 안팎 보유 추정) 등을 확보했으며 여기에 신 총괄회장의 지분을 더할 경우 3분의 2 이상 지분 확보에 문제가 없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신 전 부회장은 실제로 지난달 30일 니혼게이자이신문과 인터뷰에서 "일본롯데홀딩스의 결의권은 아버지가 대표를 맡고 있는 자산관리회사(광윤사, L투자회사 등)가 33%를 갖고 있다"며 사원주주회의 32% 지분과 신 전 부회장 본인의 2% 지분을 합하면 3분의 2에 달해 신 회장이 갖고 있는 일본롯데홀딩스와 자산관리회사의 결의권 지분보다 많다고 주장했다.
결국 신 총괄회장을 비롯한 나머지 친족들이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다는 뜻이다. 시게미쓰 여사와 신영자 이사장, 그리고 서씨 모녀가 신 총괄회장을 어떻게 설득할지 여부에 따라 신 총괄회장이 누구의 손을 들어줄지 결정될 것으로 전망된다.

한편 지난달 31일 신 총괄회장의 부친의 제사를 위해 롯데가 일족(신 총괄회장, 둘째 부인 시게미쓰 하쓰코, 장남 신동주 전 부회장, 장녀 신영자 롯데복지재단이사장, 5촌 조카 신동인 롯데자이언츠구단주 직무대행 등)이 서울 성북동 신 전 부회장 자택에 모두 모일 것으로 예상됐지만 결국 신 총괄호장의 두 남동생인 신선호 일본 산사스 사장과 신준호 푸르밀 사장 외에는 정작 아무도 참석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신동주 전 부회장은 여러 매체들과 잇따라 인터뷰를 갖고 신 총괄회장이 신동빈 회장을 해임지시를 내렸다는 등 공세를 펼치고 있다. 신동빈 회장은 일본롯데홀딩스 주주총회를 통해 현 상황을 정면돌파한다는 각오이나 아직까지 주주 성향 파악이 확실치 않은 것으로 알려져 이달 10일께 주총이 열릴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더팩트 | 김민수 기자 hispirit@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