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혜 기자] 금융감독원(이하 금감원)은 각 종 범죄에 이용되는 대포통장을 근절하기 위해 통장 발급을 기준을 까다롭게 바꿨다. 일각에서는 금융 당국의 이러한 취지는 이해할 수 있지만 부족한 홍보와 지나치게 융통성 없는 영업 방식으로 소비자들이 불편을 겪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헛걸음하는 소비자…홍보 부족 '아쉬워'
13일 금융권에 따르면 시중은행에서 신규 통장 개설을 위해 통장의 사용 목적, 타 은행에서 통장을 신규 발급한 날짜, 실제 거주지, 신원 확인(모자·마스크 착용 시 거절 가능) 등을 확인하고 조건에 부합하지 않으면 통장 발급을 거절하고 있다. 과거 단순히 통장 개설 목적 의사를 밝히고, 통장 개설 신청서에 간단한 신상정보만 기입한 후 주민등록증만 내밀면 5분안에 끝나던 신규 개설에 비해 매우 까다로워진 것이다.
이는 금감원에서 대포통장 개설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시중은행에서 단기간 다수계좌 개설을 제한했기 때문이다. 대포통장은 불법으로 대여 또는 양도받은 다른 사람 명의의 예금통장을 의미한다. 이전에는 단기간 다수계좌 계설이 개인 명의 통장과 타은행 계좌 개설에만 적용됐지만 현재는 법인 명의 통장과 동일 은행 개설 계좌도 포함돼, 20일 안에 2개 이상의 신규 통장을 개설할 수 없다.
이 때문에 일부 소비자들은 시중은행에서 지나치게 까다로운 조건을 요구한다는 불만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실제 시청역의 농협은행 영업점 직원은 해당 지역에서 직장에 다니고 있다는 증명서까지 요구하며 통장 개설을 거절하고 했다.
영업점 직원은 "최근 대포통장 근절을 위해 대부분의 은행이 참여하고 있다"며 "특히 대포통장 발급이 많다는 통계가 나온 지역의 은행은 더 까다롭게 발급 조건을 규정하고 있어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죄송하지만 인근에 직장이 있는지 증명 서류를 가지고 오면 바로 발급해주겠다"고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인근의 신한·국민·우리은행 역시 까다로운 발급 조건을 설명하며 2개 이상의 통장 발급을 거절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한 달에 여러개의 통장을 개설하는 것이 완전히 막힌 것은 아니다. '다수계좌 개설 신청서'를 작성하면 여러개의 통장을 만들 수 있다. 문제는 계좌가 대포통장으로 활용될 경우 계좌를 개설해준 은행에도 책임이 돌아갈 수 있어 지점 직원들이 다수계좌 개설을 피하려고 한다는 점이다. 실제 일부 은행 영업점 직원들은 '다수계좌 개설 신청서'에 대해 묻자 그때서야 해당 신청서에 대해 설명해주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또 신청서가 받아들여지는 데는 은행과 각 지점에 따라 최대 한 달이 걸리기도 한다.
그러나 시중은행의 이러한 정책이 제대로 홍보가 되지 않아 헛걸음을 하는 소비자들의 불만은 높아지고 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통장 개설을 위해 찾는 소비자들 10명 가운데 4명은 그냥 발걸음을 돌린다"고 말했다. 농협은행에서 통장 개설을 거절당한 소비자 윤모(29)씨는 "대포통장 근절을 위한 목적은 이해할 수 있지만 홍보가 매우 부족해 소비자들이 헛걸음을 하게 만드는 것 같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대포통장 근절 위해 어쩔 수 없어…금감원 '강경한 태도'
통장 개설이 막히면서 금융 소비자들의 민원이 늘어나고 있지만 금감원은 '대포통장 근절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실제 금감원의 대포통장 현황·발급 실태에 따르면 2011년 12월부터 지난해말까지 농협회원조합 2만1456건(43.4%)로 가장 많았다. 농협은행은 22.7%, 국민은행 8.8%, 외환은행 2.9%, 새마을금고 4.0%, 우체국 5.0%이 뒤를 이었다.
이 기간 피싱사기에 이용된 대포통장은 모두 4만9000개로서 대출빙자 사기에 이용돼 지급정지된 대포통장은 5만5000개에 이른다. 이는 연간 약 5만개 이상의 대포통장이 피싱·대출사기에 이용되고 있는 것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지난해 상·하반기 계좌개설 대비 대포통장계좌 발급 수가 높은 은행권을 중심으로 점검에 나설 예정"이라며 "미흡한 은행에 대해서는 엄정제재와 MOU 체결 등을 지도해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앞으로 금감원은 대포통장 피해 환급 외에도 올 7월부터 시행되는 대출빙자사기 피해금 환급에 있어서 피해자에 대한 안내 절차, 전산시스템 구축, 실무자 교육 등 업무매뉴얼을 마련할 계획이다. 금감원은 이번 대포통장 모니터링 강화로 보이스피싱, 대출빙자사기 등 서민을 울리는 각종 금융사기 예방에 큰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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