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서재근 기자] 소주 업계의 저도주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소주의 알코올 도수 '18도 시대'가 열렸지만, 20년 동안 한결같이 변하지 않은 점이 있다. 바로 소주병의 상징이 돼버린 '녹색병'이다.
1980~90년대 태어난 세대에게는 소주병의 색깔이 녹색이라는 게 당연하게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 하지만 소주병이 '녹색'의 옷을 입게 된 지는 생각보다 길지 않다. 그렇다고 제품의 변질을 막기 위한 기술적인 요인으로 특정한 색을 입혀야 하는 맥주병처럼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다.
맥주병이 갈색인 이유는 '자외선 차단'이다. 맥주는 일정 시간 동안 직사광선에 노출될 경우 호프 등 주성분의 변해 냄새가 나는 등 품질이 떨어져 자외선 차단율이 다른 색에 비해 낮은 갈색병을 사용한다. 호프집에서 생맥주를 가정집에 배달할 때 포장 용기로 갈색 페트병을 사용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사실 20여 년 전인 1990년대 초만 하더라도 소주병은 말 그대로 무색의 투명한 유리병으로 방앗간에서 참기름을 담아주는 평범한 유리병이나 연한 하늘빛을 띤 콜라병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소주병 색상의 일대 혁명을 가져오게 된 것은 1994년, 두산주류에서 '그린소주'를 출시하면서부터다. '그린소주'는 이름과 같이 오늘날 '처음처럼'과 똑같은 녹색병을 처음으로 도입했고, '두꺼비 소주'로 불리던 업계 1위 진로 소주를 출시 6년 만에 따라잡으며 단일 브랜드 점유율 최강자로 떠올랐다.
'그린소주' 열풍은 '녹색병' 열풍으로 이어졌고, 경쟁 업체들 역시 투명한 유리병에서 녹색병으로 변화를 시도하기 시작하면서 '소주병=녹색병'이라는 공식이 완성된 것이다.
물론 20여 년의 세월 동안 '색(色)다른 시도'가 없었던 건 아니다. '그린소주'가 출시된 지 3년 뒤인 1997년 두산경월이 청보라색 병에 담긴 '청색시대'를 시장에 내놨지만, 결과는 초라했다. 이후 10년 후인 2007년에도 금복주에서 여성고객들을 타킷으로 하는 알코올 도수 17.9도의 '더 블루'를 출시했지만, 눈에 띄는 성과를 내지는 못했다.
지금도 일부 프리미엄 소주 브랜드는 흰색, 파란색 등 다양한 색상의 병을 활용해 제품의 특징을 강조하고 있다. 금복주는 자사 프리미엄 소주 '독도 참아일랜드'를 코발트 블루 컬러의 병에 담아 해양심층수를 함유한 소주라는 콘셉트를 강조하고 있다. 고급 소주 브랜드 '화요' 역시 투명한 색상은 물론, 짙은 갈색과 화이트 색상을 도입해 제품별 특징을 나타내고 있다.
한 주류업계 관계자는 "맥주병의 색상에 대한 정보는 많이 알려진 게 사실이지만, 소주병이 왜 녹색으로 제작되는지 제대로 알고 있는 고객들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며 "소주병의 색은 기술적인 부분이나 제품의 특성과 무관, 오로지 소비자들의 반응에 따라 결정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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