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원영 기자] 동대문 시장에 갔다. 유명 연예인이 드라마에 입고 나와 화제가 된 코트가 보인다. S매장에 갔더니 50만원을 달라고 한다. L매장은 48만원이란다. 원가는 70만원이라고 말하던 L매장 직원은 할인이 많이 들어가 수선비는 깎아줄 수 없다며 5만원을 요구한다. S매장도 수선비가 비싸긴 마찬가지다. 게다가 재질 특성상 수선이 잦은 옷이란다. K매장, C매장, R매장 전부 같은 옷을 팔지만 가격은 다르다. 고민하고 있는 찰나 L매장 직원이 S매장 직원을 헐뜯는다. S매장도 가만히 있진 않는다. 서로 머리채를 쥐어 잡자 동대문 바닥에 한바탕 난리가 난다.
현재 이동통신시장도 동대문 시장 다툼과 크게 다르지 않다. 과열에 과열을 거듭해 이제는 '대란'까지 터졌다. 원가는 70만 원인데 매장마다 가격이 달라 소비자는 혼란스럽다. 그나마 동대문 시장은 돌아다녀 볼 만하다. 하지만 통신시장에선 시기와 장소를 잘 맞혀야 싸게 살 수 있다. 정보도 부족하고 기력도 없는 '어르신'들은 싸다는 직원 말만 믿고 구매하는 '호갱님'이 된다.
SK텔레콤과 LG유플러스의 손님 뺏기 경쟁은 폭로전으로 이어졌다. SK텔레콤은 13일 자료를 내고 LG유플러스의 '만행'(?)을 고발했다. LG유플러스가 무리한 영업목표를 세워놓고 시장 과열을 가속화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통화품질 등 열악한 상품력을 커버하기 위해 막대한 보조금을 투입했다고 주장했다.
LG유플러스도 반격을 시작했다. LG유플러스는 12일과 13일 SK텔레콤이 점유율 50%를 지키기 위해 불법 보조금을 대거 투입했다는 자료를 보냈다. 한발 더 나아가 SK텔레콤의 투자금액은 이통 3사 중 가장 적은 2조1000억원이라는 자료까지 들고 나왔다.
SK텔레콤은 지난달 23일 소모적인 가입자 뺏기 중심의 보조금 경쟁을 지양하고, 혁신적인 상품 서비스를 통해 소비자에게 인정받겠다고 자신했다. KT와 LG유플러스 역시 자정능력으로 보조금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호언장담했다. 보조금 경쟁은 지양해야 한다고 강조하던 이통3사가 채 한 달이 지나지 않아 진흙탕 싸움을 펼치고 있다.
싸게 파는 것이 죄겠는가. 싸게 사려는 사람이 죄겠는가. '2·11대란' 당시 겨울 칼바람을 맞으면서 새벽 5시부터 동대문에 선 사람들은 '같은 물건이면 싼 값'이라는 시장논리에 따라 움직였다. 문제는 '근본'에 있다.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는 보조금 시장 과열로 통신사에 대대적인 조사를 벌이겠다고 공언했다. 이동통신 3사의 마케팅 및 영업담당 임원을 호출해 자제를 촉구하기도 했다. 이를 비웃듯 이통사는 다시 보조금 전쟁에 나섰다. 이 역시 문제는 '근본'에 있다.
L매장과 S매장, K매장 등의 경쟁으로 옷값은 내려간다. 하지만 옷을 납품하는 업체는 가격할인을 예상하고 도매가를 높게 잡는다. 각 매장도 손해만 보고 있진 않다. 잘 알지 못하는 고객에게는 비싼 값에 판매하거나 수선비를 높인다. 각 매장이 새로운 고객 모시기에 나서면서 단골 손님(장기 고객)에게 돌아가는 혜택도 줄어든다.
휴대전화 보조금은 소비자들이 내는 통신요금, 단말기 금액의 재원으로 지급되는 것이다. 보조금이 지급돼도 이통사는 손해를 보지 않는다. 보조금 혜택은 일부 고객에게만 차별적으로 주어지고 요금제 인하는 '논의' 수준에서만 그친다. 방통위의 경고 역시 솜방망이 역할밖에 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정부의 과징금 제재와 보조금 가이드 라인이 당연한 듯 무시되는 상황도 해결돼야 한다.
정부가 제시한 최대 보조금 27만원은 100만원을 호가하는 스마트폰이 주류를 이룬 '현실'과 맞지 않다. 가입자 1인당 평균 이윤이 27만원이라는 정부의 논리는 독과점 수준인 국내 통신사의 막대한 영업이익을 대변해주는 것이다. 보조금 27만원은 급변한 통신 패러다임에 맞춰 바뀌어야 한다.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단통법)은 휴대전화 보조금의 투명한 지급을 위한 내용이 핵심이다. 현실에 맞게 바꿔나가야 할 부분이 없지 않지만, 근본을 다스리기 위해서는 분명 진지한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 정부 역시 경쟁사에 책임을 떠넘기며 '대란'을 일으킨 이통사에 엄중히 책임을 물어야 한다. IT 강국이라는 국내 통신 시장에서 이뤄지는 진흙탕 놀이를 언제까지 두고 볼 순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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