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서재근 기자] 삼성물산이 최고경영자 정연주(63) 부회장의 공격적인 국외 수주에 힘입어 하반기 괄목할만한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업황이 좋지 않은 상황이라 삼성물산의 질주와 정 부회장의 존재감은 더욱 돋보인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 같은 국외 수주가 '양날의 칼'이 될 수도 있다는 전망도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정 부회장의 'DNA'를 수혈해왔던 삼성엔지니어링이 무리한 국외 수주 프로젝트의 후유증을 톡톡히 겪고 있기 때문이다.
◆'어닝 서프라이즈' 삼성물산, 정연주 효과 '톡톡'
올해 3분기 삼성물산의 실적은 말 그대로 '어닝 서프라이즈' 수준이었다. 삼성물산(건설 부문)은 올 3분기 모두 3조3806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67.4% 증가한 수치다. 3분기 누적 매출 역시 9조1507억원으로 같은 기간 50%가량 증가했다.
삼성물산 실적 개선의 중심에는 지난 2010년 삼성엔지니어링에서 삼성물산으로 자리를 옮긴 정 부회장이 있다. 삼성엔지니어링에서 보여준 공격적인 국외 수주 정책이 삼성물산의 매출 증가로 이어졌다. 정 부회장은 지난 1976년 안국화재(현 삼성화재) 경리과에서 출발해 삼성물산 경영지원실 재무담당 임원을 지내는 등 20여 년을 경리 부서에서 근무해 왔다. 이후 지난 2003년 삼성엔지니어링 최고경영자를 맡은 정 부회장은 2010년 정기 인사 당시 삼성물산 대표이사 사장으로 자리를 옮긴 뒤 이듬해 삼성물산 대표이사 부회장으로 승진한 전형적인 '삼성맨'이다.
2010년 정 부회장이 삼성물산에 새 둥지를 틀게 됐을 당시 삼성물산은 상당히 어려웠다. 특히 건설부문의 상황은 매우 심각했다. 바로 부임 직전 해인 2009년 1분기 영업이익은 900억원 수준으로 1000억원에도 미치지 못했고, 2분기에 이어 3분기 실적 역시 ‘어닝 쇼크’ 수준이었다. 그해 3분기에는 영업이익이 전기 대비 14.5% 줄어든 666억원을 기록했고, 전년도 동기보다 45% 떨어졌다. 이에 삼성은 상대적으로 낮은 삼성물산의 건설부문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정 부회장 카드'를 꺼내 든 것이다.
선택은 성공적이었다. 정 부회장 부임 후 4년이 된 지금 삼성물산의 올 국외 사업 수주액은 12조원을 넘어섰으며, 전체 수주의 70%가량을 모두 국외에서 성사시켰다. 이는 국내 단일 건설사 가운데 연간 국외 수주 규모로는 최고 수준이다. 특히, 수주금액만 6조4000억원으로 전체 국외 수주 규모의 절반에 달하는 호주 로이힐 광산 개발사업의 성사가 수주량 확대를 견인했다.
◆국외 수주 중심 외형 확장, 실적 악화 부메랑?
하지만 업계 일각에서는 삼성물산의 국외 수주 중심의 외형 확장이 자칫 실적 악화의 부메랑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정 부회장표' 공격적인 국외 수주 경영 기조를 고스란히 이어온 삼성엔지니어링의 어닝 쇼크 수준의 실적 역시 이 같은 우려에 무게를 싣고 있다.
지난 2003년 삼성엔지니어링 사장으로 부임한 정 부회장은 국외 플랜트 시장에서 공격적인 수주전략으로 2006년 1조7169억원이던 매출을 2009년 3조4714억원까지 끌어올렸다. 그러나 삼성엔지니어링은 지난 1분기 2198억원의 영업손실과 1805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하며 2003년 이후 처음으로 적자전환한 이후 올해 3분기까지 연일 최악의 성적을 기록했다. 저가 정책과 새로운 시장에 대한 이해 부족에서 무리하게 이뤄진 공격적 수주가 결국 실적악화의 부메랑으로 돌아온 것이다.
문제는 이 같은 삼성엔지니어링의 실적악화가 정 부회장의 공격적인 국외 수주 전략과 무관하지 않다는 데 있다. 삼성엔지니어링의 실적 부진의 이유로 꼽히는 국외 수주 가운데 하나는 사우디아라비아 국영기업 마덴사의 알루미늄 프로젝트의 공기 지연으로 그 손실규모만 3000억원에 달한다. 마덴사가 발주한 프로젝트는 알루미늄 프로젝트 외에도 3곳이나 더 있다.
문제가 된 수주 계약 건은 지난 2011년에 성사된 것으로 정 부회장이 삼성물산으로 자리를 옮긴 후에 이뤄졌다. 통상적으로 대형 국외 프로젝트의 경우 계약이 성사되기 전까지 사업계획을 구성하는 데 1~3년이 소요될 뿐만 아니라 사우디아라비아는 정 부회장이 삼성엔지니어링에 몸담았던 2007년 당시 마덴사와 1조원 규모의 석유화학플랜트 수주에 성공한 이후 회사의 외형확장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 주요 시장이었다.
증권가 관계자는 "대규모 국외 프로젝트의 경우 계약 체결 후 실질적인 실적에 반영되기까지 수년의 세월이 걸린다"며 "지난 2007년 이후 국내 건설경기가 침체되면서 국내 건설사들이 앞다퉈 산유국이 모여 있는 서아시아 지역으로 눈길을 돌렸는데 경쟁이 치열해지다 보니 저가 수주 등의 문제로 최근에야 실적악화가 표면화 되고 있다. 삼성엔지니어링 역시 같은 시기 사우디아라비아를 중심으로 서아시아 지역 진출에 박차를 가했고, 실제로 많은 수주를 성사시켰다"고 설명했다.
◆저가 수주 논란, 풀어야 할 숙제

저가 수주 논란도 정 부회장이 풀어야 할 과제다. 삼성엔지니어링의 최근 실적부진과 관련해 업계에서는 "무리한 수주와 현지 시장에 대한 이해 부족, 저가 수주가 실적악화를 초래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업체 간 수주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시장 상황, 공기에 대한 충분한 고려 없이 입찰가를 무리하게 낮췄다는 것이다.
이 같은 저가 수주 문제는 삼성물산에서도 불거졌다. 올해 삼성물산의 국외 수주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호주 로이힐 광산 개발사업의 경우 애초 포스코건설과 STX건설 컨소시엄의 수주를 점치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후발 주자였던 삼성물산이 경쟁사의 63억 호주달러보다 싼 56억 호주달러를 써내면서 최종 입찰에 성공했다.
당시 STX건설·중공업 측은 청와대와 정부 관련 부처에 "삼성물산이 로이힐 철광산 개발 인프라 건설공사에 덤핑 수준의 낮은 가격을 제시, 수주를 따냈다"는 내용의 탄원서까지 제출하기도 했다. 이에 삼성물산 측은 “발주처인 로이힐 홀딩스가 (경쟁사 컨소시엄의) 입찰을 거부하고, 경쟁 입찰로 돌아서게 되면서 입찰에 참여하게 된 것 뿐”이라고 해명했지만, 저가 수주 논란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았다.
정 부회장의 공격적인 국외 수주 전략과 관련한 일각의 우려에 삼성물산 측은 "삼성엔지니어링의 부실 프로젝트 대부분은 2011년~2012년 사이에 수주계약이 이뤄진 것으로 정 부회장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며 "정 부회장의 부임 이후 국외시장 진출과 관련해 투자처 확보는 물론 상품과 시장이해에 대한 철저한 노력이 있었고, 올해 하반기 그 결실이 나오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기본적으로 수익이 창출되는 것을 사업계획의 가장 철저한 기본 원칙으로 하기 때문에 이익이 나지 않는 시장에 대한 투자, 저가 수주와 같은 무모한 수주는 하지 않는다"며 "앞으로도 효율적으로 수익을 창출할 수 있도록 상품적으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 데 매진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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