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일 기자] 23일 오후 홍익대학교 실내체육관. 홍익대와 한양대의 전국대학배구 추계대회 조별예선이 열린 이날, 춘계대회에서 깜짝 준우승을 차지하며 대학배구의 새로운 강자로 떠오른 홍익대가 풀세트까지 가는 접전 끝에 한양대를 3-2로 꺾었다. 그리고 실내를 쩌렁쩌렁하게 만든 홍익대 선수들의 기세 속에서 어느 누구보다 희열감을 느끼는 와이셔츠 사나이가 한 눈에 들어왔다. 경기 내내 코트위의 선수들만큼 뻘뻘 땀을 흘리며 왼손, 오른손을 번갈아 셔츠 소매를 매마지는 남자, 신진식(35) 홍익대 신임 감독이다.
현역시절, '갈색 폭격기'로 이름을 떨친 그는 김세진과 함께 '좌(左)진식·우(右)세진' 콤비로 삼성화재를 1997년부터 리그 9연패와 77연승이라는 불멸의 기록을 작성했다. 국가대표에서도 찰떡 호흡을 과시해 한국 배구 역사상 최고의 '쌍포'로 한 시대를 풍미했다. 2007년 현역 은퇴 후 호주 유학을 떠났다가 지난해 광저우 아시아경기대회에서 트레이너로 복귀한 그는 KBS N 배구 해설위원 등 배구로 할 수 있는 모든 포지션을 소화한 후 마침내 '감독' 자리에 올랐다. 인터뷰 내내 '근성'이라는 단어를 강조한 그는 "스타 출신도 감독으로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자, 오늘도 진심으로 소통하는 '지도자'를 꿈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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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진식(37) 홍익대학교 배구부 감독 / 사진 - 문병희 기자 |
◆ "김세진, 친형 이상의 존재" 아내 이름도 '세진'
지난 8월에 열린 성균관대와 한양대의 OB 라이벌전 이야기를 먼저 꺼냈다. 1980~1990년대 대학배구 인기를 주도했던 양 교가 전·현직 선수들이 한 자리에 모인 가운데 추억을 재현했다. 신 감독은 성대 소속으로 현역 은퇴 후 4년 만에 코트 위에 섰다. "5세트까지 갈 줄 몰랐고, 제가 풀타임을 뛸 것이라고는 더욱 생각 못했죠. 땀이 어찌나 나던지…. 경기 후 술자리를 하는데 열이 올라왔어요.(웃음) 그래도 동문애가 생기더라고요. 경기 전 저와 김세진 위원의 맞대결이 이슈화 됐는데, 세진이 형은 중간에 나왔죠. 저만 고생했네요.(웃음)"
성균관대가 세트 스코어 2-3으로 패했지만 이날 경기는 승패와 관계없이 한국 배구의 기념비적인 날이었다. 김호철 현대캐피탈 총감독과 신치용 삼성화재 감독이 각각 한양대와 성균관대의 감독으로 나서 재미를 더했고, 현역 시절 신 감독과 ‘쌍포’를 이룬 한양대 출신 김세진 위원을 비롯해 왕년의 배구 스타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진 위원은 지난 6월 <김용일의 코리언 레전드> 인터뷰에서 현역 시절 세터였다면 공격 시에는 김세진, 수비 등 나머지 공은 신진식에게 줄 것이라고 말했다.
"아, 수비나 더러운 공은 제게 준다고요? (웃음)". 세간에 알려진 것처럼 신 감독과 김 위원은 뗄 수 없는 호형호제 관계다. "친형 이상이죠. 서로 모르는 것이 없고요. 형제들끼리 말을 편하게 하듯, 개인적으로 만나면 저도 조언을 해줘요. 죽을 때까지 함께하자고 했는데, 그게 가능할지는….(웃음) 제가 이상하게 '세진'이라는 이름과 인연이 있어요. 낚시 동호회에서 만난 형님도 '김세진'이었고, 제 아내 이름도 '권세진'이에요. 심지어 대학 시절 친구들과 나이트에 놀러갔을 때 웨이터 이름도 '김세진'이었죠.(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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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 감독은 '패배의식'에 사로잡혀있던 홍익대 배구에 '신바람'을 불어넣어 탈바꿈시키고 있다 |
◆ '어두웠던' 홍익대, 모두가 한 마음이 되고자…
본격적으로 '신진식 감독'이야기를 시작했다. 지난 5월에 홍익대 신임 감독으로 부임 후 사흘 만에 데뷔전에서 승리를 차지하더니, 파죽지세 대학배구 춘계대회에서 준우승까지 이뤄냈다. 홍익대 배구팀 창단 이래 4강에도 몇 번 오르지 못했던 역사를 일순간 탈바꿈한 것이다. "제가 오고 나서 선수단의 분위기가 '해보자'는 동기부여가 더 생겼던 것 같아요. 춘계대회는 전적으로 선수들의 몫이라고 봐요. 실제 훈련 할 때도 더 잘 보이려고 적극적으로 하는 모습도 보였고요."
" (처음 팀에 왔을 때 분위기는?) 어두웠죠. 무엇보다 작은 것에 포기하려는 습성이 있었어요. 한 발짝 더 뛰면 공을 코트에 안 떨어뜨릴 수 있는 상황이 많았죠. 지금은 많이 달라졌어요. 몸을 던지며 끝까지 포기하지 않죠. (감독님이 무서워서?) 하하, 사실 감독은 무서워야 해요. 그리고 선수들과 대화를 잘 해야 하고요. 저는 그런 면에서 장점이 있는 것 같아요. 선수들과 장난칠 때는 치더라도, 훈련할 때 집중하죠. 그래야 경기를 할 때 서로 얼굴보고 믿음을 이룰 수 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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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전, 후보선수와 감독, 코칭스태프의 '하나 됨'을 강조한다 |
현역 시절 최고의 스타였던 신 감독. 감독 부임 후 무엇이 가장 달라졌을까. "선수 때는 그저 몸으로 말을 하면 됐죠.(웃음) 감독은 머리와 마음을 함께해야 돼요. 마음이 가지 않으면 선수들이 오질 않죠. 저는 평소에도 선수들에게 그 점을 강조해요. 코트 위에 6명만이 잘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몸을 풀고 있는 선수들, 그리고 코칭스태프가 한 마음이 돼 관중들까지 끌어 모을 수 있어야 한다고요. 지금은 선수들이 저의 이러한 마음을 잘 받아들여주는 것 같아요." …①편 끝. <②편에서는 신진식 감독의 지도 철학, 향후 목표 등 이어집니다>
<글 = 김용일 기자, 사진 = 문병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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