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덕준의 크로스오버]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 표지 이야기
입력: 2010.10.17 12:33 / 수정: 2010.10.17 12:33

[황덕준의 크로스오버] 사회부나 문화부 기자를 꿈꾸며 신문사에 발을 들여놓았더니 뜬금없이 발령난 곳이 <주간스포츠>라는 부서였다. 체육의 'ㅊ'자도, 스포츠의 '스'자도 몰랐던 견습기자에게 데스크가 던져준 잡지 한권-. 라는 긴 제목은 읽기도 발음하기도 수월찮았다. 때깔 좋은 암갈색 경주마가 커버스토리를 장식하고 있어 더욱 생경했던 기억도 새롭다. 무려 8쪽에 걸쳐 실린 표지사진의 그 경주마-'존 헨리'라는 서러브레드(thoroughbred)의 기사를 번역,발췌하라는 게 사반세기 스포츠기자 경력을 시작하는 첫 번째 임무였다. 밤을 꼬박 새워가며 200자 원고지 스무장 남짓을 채운 생애 첫 기사가 <주간 스포츠>의 ‘해외스포츠 화제’로 활자화됐을 때 회사 화장실에서 읽고 또 읽으며 느꼈던 희열과 전율은 죽어서도 잊기 힘든 경험이 될 것이다.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SI)>는 그때부터 스포츠기자의 기본 소양을 길러준 소중한 교본이 됐다.

SI는 전후 미국사회의 번영기와 함께 성장, 대중문화의 아이콘처럼 간주되는 최고 권위의 스포츠 전문 주간잡지다. 온라인 미디어 시대로 수많은 인쇄매체들이 스러져가는 요즘도 매주 3백여만부가 발행되고, 미국인 2천5백여만명이 읽는다.


1954년 8월 16일 당시 메이저리그 밀워키 브레이브스의 간판 왼손타자 에디 매튜의 타격사진이 실린 창간호 표지는 그 사본 한 장이 스포츠기념품 시장에서 300달러 안팎에 호가될 만큼 인기있다.


SI편집진은 창간호부터 올해 5월 둘째주까지 발행된 잡지 가운데서 2,500장이 넘는 표지사진을 따로 모아 지난 13일 라는 단행본으로 발간했다.


56년 동안에 게재된 표지들은 10년 단위 연대별로 분류돼 총 208쪽의 책자를 흥미롭게 구성하고 있다. SI에 실리는 기사와 스포츠 스토리들은 스포츠계 뿐 아니라 일반 사회 전반에서 워낙 화제가 되고 깊은 영향력을 미쳐왔기에 표지만으로도 미국 현대 스포츠사의 흐름을 한눈에 파악할 만하다.

SI 표지에 가장 많이 등장한 스포츠선수는 누구이겠는가. 스포츠 퀴즈로 자주 제시되는 이 질문의 답은 불세출의 농구스타 마이클 조던이다. 총 49차례나 커버를 장식했다. 프로복서 무하마드 알리가 38회로 그 뒤를 잇는다. 프로농구 NBA무대에서 LA레이커스 전성기를 이끌었던 매직 존슨(23회)과 카림 압둘 자바(22회), 그리고 골프의 전설 잭 니클로스(22회)가 최다 표지인물 톱5까지 채운다.. 이혼스캔들로 힘을 잃어가는 '골프황제' 타이거 우즈는 프로에 데뷔한 지 두달쯤 지난 1996년 10월 마지막주 표지인물로 처음 나선 이래 19회에 걸쳐 등장, 최다 랭킹 6위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메이저리그 최다안타 기록 보유자인 피트 로즈가 15회, 골프의 아놀드 파머가 14회로 우즈의 뒤를 따른다.


종목별로 보면 메이저리그 야구가 전체 표지 가운데 23% 가량을 차지, 가장 많이 커버스토리로 다뤄졌다. 프로풋볼(NFL)이 20%, 프로농구(NBA)가 12%의 표지 등장율을 나타내 미국의 프로종목 가운데 빅3가 전체의 55%를 차지했다. 대학풋볼(7.5%), 대학농구(6.7%)가 골프(5.5%), 복싱(5.0%)을 앞질렀으며 프로아이스하키(NHL)는 4% 정도에 그쳐 표지비중면에서 8위로 내려앉아 있다. 지난 반세기 동안 미국 스포츠의 인기순위도나 다름없는 셈이다.


개별 팀 가운데서는 프로야구의 뉴욕 양키스가 70회로 가장 많이 SI의 커버를 차지했다. 프로농구의 LA레이커스가 64회로 2위, 프로풋볼에서 '아메리카의 팀'으로 불리는 댈라스 카우보이스는 46회로 3위였다. 프로야구 보스톤 레드삭스가 45회, 프로농구 시카고 불스와 보스톤 셀틱스가 각각 44회와 42회로 뒤를 잇고 있다.

특기할 만한 것은 스웨덴출신 '골프여제' 애니카 소렌스탐에 관해서다. 여자프로골프 LPGA 우승을 72회나 차지했고, 그 가운데 메이저타이틀만 10번을 거둔데다 여자선수로 유일하게 59타를 기록한 적이 있는 소렌스탐은 희한하게도 SI표지에 단 한번도 등장하지 못했다. SI표지를 단행본으로 꾸민 편집진은 이 대목을 '가장 두드러진 누락(Most Glaring Ommission)'이라며 보도자료에까지 명시, 자책하는 듯한 자세를 보이고 있기도 하다.

SI 커버 징크스도 빠뜨릴 수 없겠다. 미국 스포츠계에서는 SI 표지에 등장하면 불길한 일이 일어난다는 속설이 팽배하다.


SI커버 징크스는 1961년 당시 북미 피겨스케이팅챔피언이었던 16살의 로렌스 오웬이 그해 2월 13일자 커버에 등장한 지 이틀만에 비행기 사고로 사망하면서 비롯됐다는 게 거의 정설이다. 오웬스와 미국 국가대표 피겨선수단은 체코 프라하에서 열리는 세계선수권대회 출전 길에 벨기에 브뤼셀 인근 상공에서 비행기충돌 사고로 전원 사망, 미국스포츠사의 비극으로 남아 있다.


이때부터 SI커버징크스의 사례가 소급돼서까지 찾아졌다. 창간호 표지에 등장한 에디 매튜조차 피해자였다. 매튜는 표지 등장 직후 손가락을 다쳐 7게임에 결장했고, 소속팀 브레이브스는 9연승을 달리다가 멈췄던 것이다. SI커버 징크스의 희생자 목록은 ‘위키피디아’에서 검색해도 웹페이지 화면을 가득 채울 정도로 수두룩하다.


SI에서는 스포츠계에서 자신들의 잡지 표지등장을 꺼리는 일까지 발생하자 지난 2002년에는 검은 고양이를 커버사진으로 게재하면서 징크스를 분석하기도 했다. 당시 기사에 따르면 SI 표지 가운데 징크스라고 할만한 사례는 조사대상 2,456건 가운데 37%인 913건으로 나타났다.

테크놀로지의 발달로 오프라인 미디어 환경이 급변하는 세상이다. SI같은 전통매체가 전해주는 커버에 관한 이야기는 어쩌면 교실 난로 위의 양은 도시락이나 군대시절 축구경기처럼 구닥다리 묵은 내를 풍길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스마트폰이나 아이패드같은 태블릿PC를 통해 폭포처럼 쏟아지는 디지털 콘텐츠에 비해 다시 뒤적거리는 SI표지들이 전해주는 스포츠의 흐름은 나름대로 사료적 가치와 함께 아날로그적 감성을 일깨워준다.


djhwang59@hotmail.com

발로 뛰는 <더팩트>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카카오톡: '더팩트제보' 검색
▶이메일: jebo@tf.co.kr
▶뉴스 홈페이지: http://talk.tf.co.kr/bbs/report/write
- 네이버 메인 더팩트 구독하고 [특종보자▶]
- 그곳이 알고싶냐? [영상보기▶]
AD
인기기사
실시간 TOP10
정치
경제
사회
연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