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복규기자] 1992년 8월 9일.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한국의 한 마라토너의 발걸음에 집중되었다. 고 손기정 옹이 1936베를린올림픽에서 일장기를 달고 눈물의 금메달을 목에 건 지 어언 56년이 흐른 시간. 바로 황영조(37)가 바르셀로나 몬주익 메인 스타디움에서 올림픽 금메달을 목에 걸었던 것이다. 경기장 한켠에 자리잡은 고 손기정 옹은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물론 TV로 지켜보던 대한민국 국민들 역시 같은 심정이었다.
황영조가 일본의 모리시타를 제압하며 너무나도 자랑스런 금메달을 목에 건 지도 벌써 15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어느덧 황영조도 '추억의 스타'의 목록에 이름을 올리게 된 것이다. '국민 마라토너'에서 지도자로 변신하며 새로운 마라톤 인생을 걷고 있는 황영조를 만나 솔직담백한 이야기들을 나눠봤다.
# 북한마라톤이 부럽다!
현재 국민 체육 진흥공단의 지휘봉을 맡고 있는 황영조는 최근 후배들을 이끌고 북한을 찾았다. 일제시대의 설움을 씻어낸 그가 통일을 염원하며 북한에서 펼쳐지는 대회(북한만경 대상 마라톤 - 4월 8일 개최)에 참가한 것이다. "북한에서 열리는 유일한 마라톤 대회로 규모가 정말 크다. 이번대회에서 아프리카와 동유럽 등 마라톤 강호들이 대거 출전 신청서를 냈다." 황영조의 목소리에서 부러움이 잔뜩 묻어났다.
북한 마라톤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그랬더니 앞선 목소리에서 묻어났던 부러움이 터져 나왔다. "우리나라와 달리 북한 마라톤은 활성화가 잘 되어 있다. 한국의 양궁이나 쇼트트랙처럼 대표팀에 뽑히기가 하늘에 별따기다. 그 만큼 뛰어난 선수들이 많다는 이야기다"며 북한 마라톤에 대한 칭찬을 늘어놓았다.
사실 한국은 당장 내년에 있을 베이징올림픽을 앞두고 눈에 띄는 선수가 보이지 않고 있다. 하지만 북한은 이번 대회 남,여자부에서 각각 우승을 차지한 박성철과 정영옥 등 뛰어난 선수들이 즐비해 행복한 고민에 빠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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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셀로나 올림픽 금메달의 비밀!
사실 많은 사람들의 기억과는 달리 당시 바르셀로나 올림픽에 출전한 황영조의 컨디션은 엉망이었다. 훈련 도중 생긴 발바닥 부상이 그를 끊임없이 괴롭혔고, 결국 경기 직전까지 뛸 수 없는 상황에 다달았다. 하지만 경기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의 머릿속에는 오로지 금메달 생각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경기를 앞둔 상태에서 발바닥 부상으로 컨디션이 좋지 않았지만 내 사전에 포기라는 것은 없었다. 오히려 뛰다보니 이상하게 안 아팠다." 지금 생각해봐도 신기했다는 듯 당시 상황을 설명하는 황영조였다.
몬주익 언덕을 필두로 선두로 치고 나온 황영조는 트랙을 도는 순간 그 동안의 힘들었던 모든 기억들이 선명하게 떠올랐다고 되뇌였다. 그 중에서도 유독 잊을 수 없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어머니였다. "마지막 100m를 남겨두고 피니시 라인을 향해 전력 질주하면서 어머니에 대한 생각을 잊을 수가 없었다." 효자 황영조가 금메달을 딸 수 있었던 또 다른 비결은 바로 어머니였던 것이다.
# 조기 은퇴에 후회는 없다!
1996년 4월 15일 황영조는 은퇴를 선언했다. 그의 나이 26세. 모든 사람들이 조기은퇴를 아쉬워했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조기은퇴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바르셀로나 올림픽 금메달,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안게임 금메달과 대회 MVP, 1994년 보스턴 마라톤 대회에서의 새로운 한국신기록(2시간 8분 9초)등 이룰 것을 다 이뤘다. 후회없다." 황영조는 선수로서 최고의 자리에서 멋있는 은퇴를 선언한데 대해 전혀 후회를 남기지 않았다.
황영조는 1996애틀랜타올림픽 선발 대회에서 29위에 그쳤다. 하지만 주위에서 의견이 모아져 국가대표 예비엔트리에 포함됐다. 그러나 그는 애틀랜타올림픽에 출전할 수 없었다. "좋은 성적을 못 올렸기 때문에 국가대표선발전에서 탈락한 것은 당연하다. 후배들에게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 생각했다. 나는 그동안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을 이뤘다"며 애틀랜타올림픽 불참 이유를 확실히 설명했다.
# 대구가 될 줄 알았다!
지난달 27일 아프리카 케냐 몸바사에서 희소식이 날라왔다. 바로 세계 3대 스포츠 축제로 손꼽히는 세계육상선수권대회가 2011년 대구에서 개최하기로 결정된 것이다. 이는 당시 호주 멜버른에서 '마린보이' 박태환이 금메달 승전보를 울리며 국민들의 관심이 수영에 쏠린 가운데 이룬 또 다른 쾌거였다. 대구시민들은 물론 전국이 연이은 희소식에 신바람이 난 순간이었다.
황영조는 당시 케냐 현지에 있었다. 최종 발표를 앞두고 긴장된 상태에서 대구가 발표되자 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당시 소감에 대해 묻자 "이루 말할 수 없이 기뻤다. 육상인의 한 사람으로서 세계육상대회가 국내에서 열린다는 것은 당연히 기분 좋은 일이다"라며 밝은 표정을 지었다.
황영조는 현지 분위기에 대해 "개최 후보지인 브리즈번과 모스크바와의 경쟁이 치열했다. 하지만 대구가 될 줄 알았다. 마지막 프리젠테이션에서 승부가 갈렸다"며 그 동안 대구 유치 위원회를 비롯해 대구시장과 시민 등 많은 사람들이 세계육상선수권대회 유치에 힘썼음을 밝혔다.
하지만 이후 황영조의 얼굴은 어둡게 변했다. 황영조는 "남들만의 잔치가 될 것 같아 걱정이 앞선다. 앞으로 선수 육성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 좋은 선수들이 나와야 될텐데…"라며 걱정스런 눈치를 보였다. 세계적인 빅 이벤트를 유치한다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그게 끝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한 의미심장한 말이다.
# '마라톤 사랑'이 필요하다!
황영조는 "바르셀로나올림픽과 히로시마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따낼 당시 마라톤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은 높았다. 하지만 이후 마라톤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을 보여주지 못했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현재 각 지역이나 기업단체에 무수한 마라톤 동호회가 있지만 자신의 건강을 위해서일 뿐 정작 마라톤에 대한 관심은 여전히 부족하다는 것이다.
황영조는 내년에 있을 베이징올림픽에 대해 기대보다는 걱정이 앞선다고 솔직히 털어놨다. 국민들의 관심이 줄어들면서 선수층도 얇아졌고, 결국 출중한 실력을 갖춘 선수를 찾기가 힘들어졌다는 설명이다.
"42.195km라는 긴 구간을 달리기 위해서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국민들의 성원이 가장 좋은 에너지가 될 수 있다." '영원한 국민 마라토너' 황영조는 오늘도 마라톤 중흥을 위해 국민들에게 '마라톤을 사랑해달라'라는 말을 외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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