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프리즘] 노선영·김보름·박지우 "네 잘못이 아냐"
입력: 2018.02.24 00:00 / 수정: 2018.02.24 00:00

21일 오후 강원도 강릉 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팀추월 순위결정전에 출전한 한국 대표 김보름(왼쪽), 박지우(가운데), 노선영이 레이스를 마치고 트랙을 돌고 있다. /강릉=임영무 기자
21일 오후 강원도 강릉 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팀추월 순위결정전에 출전한 한국 대표 김보름(왼쪽), 박지우(가운데), 노선영이 레이스를 마치고 트랙을 돌고 있다. /강릉=임영무 기자

[더팩트ㅣ박대웅 기자] 한국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팀추월 대표팀 노선영(29·콜핑팀), 김보름(25·강원도청), 박지우(20·한국체대)가 21일 안방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에서 응원보다 비난에 가까운 관중의 침묵 속에 3분03초11, 참가 8개국 중 8위로 대회를 마쳤다. 이른바 '노선영 왕따 논란' 등으로 '국민 밉상'이 된 이들에게 꼭 전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네 잘못이 아니야."(It's not your fault.)

'노선영 왕따 논란' 사태를 되돌아보며 이제 갓 20대 초·중·후반인 선수들에게 지나치게 가혹한 주홍글씨를 씌운 건 아닌지 염려된다. 물론 대회 기간 보여준 실종된 팀 워크는 전 국민적 기대를 져버린 졸렬한 행동인 건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다. 그래도 잘못을 지적하는 방법이 잔인할 만큼 너무 가혹하다. 범위를 가정으로 좁혀 보자. 아이가 잘못했다면 응당 부모는 이를 훈계하고 지도해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게 하지 '너는 안돼'라며 다시금 사회에 나서지 못하도록 매도하지 않는다.

'노선영 왕따 논란'의 본질은 곪을 때로 곪은 빙상계의 파벌싸움이지 태극마크를 달고 한기가 도는 빙판을 녹일 만큼 혼신을 다해 구슬땀을 흘린 선수가 아니다. '노선영 왕따 논란'은 이런 썩어 문드러진 파벌싸움이 표면으로 드러난 하나의 사례에 불과하다.

19일 오후 강원도 강릉 스피드스케이팅경기장에서 2018 평창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팀추월 준준결승전 후 한국의 박지우(왼쪽), 김보름(가운데), 노선영이 경기를 마친 뒤 아쉬워 하고 있다. /강릉=임영무 기자
19일 오후 강원도 강릉 스피드스케이팅경기장에서 2018 평창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팀추월 준준결승전 후 한국의 박지우(왼쪽), 김보름(가운데), 노선영이 경기를 마친 뒤 아쉬워 하고 있다. /강릉=임영무 기자

올림픽을 앞두고 이런 저런 말들이 나돌았다. 김보름, 이승훈(대한항공) 등 금메달 가능성이 있는 일부 선수들이 태릉선수촌이 아닌 한국체대에서 특정인의 비호 아래 따로 훈련을 받고 있다는 이야기들이 빙상계 안팎에서 흘러 나왔다. 또한 대표 선발 과정에서 자신의 파벌에 불리하게 규정이 바뀔 것 같으면 이를 문제 삼고 여론전을 펼치는 모습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들은 올림픽을 정치적으로 이용했다. 올림픽을 4년간 노력의 결실을 맺는 '기회의 장'이 아닌 자신들의 세력을 결집하고 세를 확산하는 또 다른 의미의 '기회의 장'으로 활용했다. 스포츠가 정치적으로 이용되는 순간, 선수들의 희생은 불가피해진다.

단적으로 2006년 토리노 동계올림픽을 꼽을 수 있다. 당시 선수들은 남녀 대표팀이 아닌 '한체대와 비(非)한체대'로 나뉘어 훈련을 받았다. 어찌보면 썩은 환부가 수면 위로 드러났던 이 때가 빙상계의 파벌싸움에 철퇴를 가할 '골든타임'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당시 파벌 논란은 지금은 러시아로 귀화해 빅토르 안이 된 안현수와 진선유가 나란히 3관왕에 오르며 수면 아래로 가라 앉았다.

19일 오후 강원도 강릉 스피드스케이팅경기장에서 2018 평창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팀추월 준준결승전에서 김보름(왼쪽), 박지우(가운데)가 앞서 주행하고 있는 가운데 노선영이 뒤쳐져 빙판을 달리고 있다. /강릉=임영무
19일 오후 강원도 강릉 스피드스케이팅경기장에서 2018 평창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팀추월 준준결승전에서 김보름(왼쪽), 박지우(가운데)가 앞서 주행하고 있는 가운데 노선영이 뒤쳐져 빙판을 달리고 있다. /강릉=임영무

금메달로 어영부영 봉합한 썩은 부위는 4년 뒤 더욱 곪아 터졌다.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 후 국내 선발전에서 훈련장과 지도자별로 나뉘어 서로를 밀어준 이른바 '짬짜미' 실태가 만천하에 드러나며 빙상계는 또다시 구설에 휩싸였다.

그리고 또 4년 뒤인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빙상계는 '어제의 동지' 빅토르 안에게 비수를 맞는다. 빅토르 안은 소치 대회를 앞두고 파벌문제 등을 언급하며 러시아로 귀화했고, 소치 대회 남자 쇼트트랙 부문에서 3관왕에 올랐다. 반면 한국 대표팀은 노메달로 초라한 성적표를 들고 귀국했다. 빅토르 안의 귀화는 거센 파장을 몰고 왔다. 빅토르 안의 아버지는 귀화 배경으로 전명규 빙상연맹 부회장을 지목했고, 결국 전명규 부회장은 2014년 3월 자진사퇴했다.

이후 파벌문제는 일단락되는 듯 했지만, 또 4년 뒤 파벌싸움은 쇼트트랙에서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팀추월로 자리를 옮겨 불거졌다. 이번 '노선영 왕따 논란'은 단순히 한체대냐 아니냐를 넘어 더 복잡한 양상이다. 알려진 것과 달리 노선영 역시 한체대 출신이다. 또한 평창동계올림픽을 1년여 앞둔 지난해 2월21일 열린 삿포로 동계아시안 게임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팀추월 부문에서 노선영, 김보름, 박지우 세 선수는 은메달을 따기도 했다.

1년 사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섣부른 추측과 '카더라' 통신으로 예단해서는 안 된다. 대신 상처받은 선수들에게 포용과 관용을 베풀어야 한다. 동시에 고질적인 빙상계의 '밥 그릇 싸움'에는 대대적인 메스를 가해야 한다. 그래야 2022년 베이징동계올림픽에서 평창의 누를 반복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배우 로빈 윌리엄스와 멧 데이먼 주연의 영화 '굿 윌 헌팅' 속 명대사 "네 잘못이 아니야"는 큰 울림을 준다.

자책과 공포의 왜곡된 표현으로 타인을 공격하는 천재 소년 윌(멧 데이먼 분)에게 숀(로빈 윌리엄스 분) 선생은 "네 잘못이 아니야"라고 위로한다. 한 번의 위로가 아니다. 숀 선생은 윌의 눈을 보며 반복한다. "네 잘못이 아니야"라고.

우리 사회에 수많은 윌이 있다. 제2의 노소영, 제2의 김보름이 나오지 말란 보장도 없다. 잘못을 했다면 책임을 물어야겠지만 사고를 치기 전에 누군가 다독여줘야 한다. 잘못한 후에도 누군가 나서야 한다. "본질을 보라"고, "공격을 멈추라"고.

이제는 말해야 할 때다. "노선영, 김보름, 박지우 선수 수고했어요 그리고 당신들 잘못이 아니에요"라고.

bdu@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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