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선영(오른쪽), 김보름(가운데), 박지우로 구성된 한국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팀추월 대표팀이 팀 내 불화설로 홍역을 치르고 있다. /강릉=임영무 기자 |
[더팩트ㅣ박대웅 기자] 2018 평창동계올림픽을 보고 4년을 준비했지만 정작 평창에서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됐다. 김보름(25·강원도청), 박지우(20·한국체대), 노선영(29·콜핑팀)이 호흡을 맞추고 있는 여자 스피드스케이팅 팀추월 팀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이들은 "작전상 선택"이었다와 "작전과 관련해 이야기한 적 없다"며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4년을 준비한 올림픽인데 진실게임으로 서로가 서로에게 비수를 겨누는 모양새다.
김보름, 박지우, 노선영은 19일 강릉 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에서 열린 팀추월 준준결승에서 3분03초76으로 7위에 그쳤다. 내심 4강을 기대했지만 부진한 기록 탓에 준결승 무대도 밟지 못하고 탈락했다. 세계 최고의 기량을 뽐내는 올림픽에서 예선 탈락이야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문제는 실종된 팀워크다.
이날 노선영은 김보름, 박지우보다 무려 4초가량 늦게, 거리로 환산하면 40여m 뒤처진 채 결선선을 통과했다. 팀 추월은 마지막으로 결선선을 통과한 선수의 기록을 팀 기록으로 채택한다. 경기 직후 기대 이하의 경기력에 실의에 빠진 노선영을 위로한 건 팀 동료가 아닌 밥 데 용 코치 뿐이었다. 더욱이 경기 후 가진 인터뷰에서 김보름, 박지우는 노선영을 탓하는 뉘앙스의 발언을 해 국민적 공분을 샀다. 누리꾼들은 '김보름, 박지우가 노선영을 버리고 왔다'고 목소리를 높였고, 급기야 대한빙상경기연맹의 부정부패와 비리, 김보름과 박지우의 국가대표 자격 박탈 등을 요구하는 국민청원이 등장했다. 특히 대한빙상연맹의 부정부패와 비리를 조사해야 한다는 청원에 30만명이 넘는 국민이 참여했다.
사태가 겁잡을 수 없이 커지자 결국 대한빙상경기연맹은 20일 오후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진화에 나섰다. 애초 백철기 대표팀 감독을 비롯해 김보름과 박지우, 노선영 등 선수 전원이 참석할 예정이어지만 백철기 감독과 김보름만 카메라 앞에 섰다. 백철기 감독은 "노선영이 감기 몸살을 심하게 앓아 참석이 어렵고, 아직 어린 박지우는 덜덜 떨면서 '못 가겠다'고 했다"고 불참 이유를 설명했다. 이어 백철기 감독과 김보름은 노선영을 버리고 온 게 아니며 작전 상 선택이었다고 밝혔다.
전략적 선택이었다는 해명을 두고 뒷말이 무성하다. 제갈성렬 SBS 해설위원은 "노선영은 레이스 중반부터 체력이 떨어져 보였다. 기록이 늦더라도 노선영을 중간에 두고 밀어주면서 달렸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노선영은 김보름, 박지우에 비해 훈련량이 부족했다. 노선영은 빙상경기연맹의 행정처리 미숙으로 올림픽 출전 자격이 없다는 사실을 뒤늦게 안 뒤 평창동계올림픽을 눈 앞에 두고 선수촌을 떠났다. 다행히 러시아 선수의 자격이 박탈되면서 막판 극적으로 재입촌했다. 하지만 지난달 24일부터 28일까지 훈련을 못한 노선영은 최상의 컨디션으로 올림픽을 맞이하지 못했다.
백철기 감독은 긴급기자회견에서 "4강으로 목표를 수정하면서 김보름의 비중을 늘렸다"고 말했다. 실제로 팀은 노선영의 비중을 최소화하는 전략을 짰다. 경기 특성상 맨 앞에 서는 선수는 바람막이 역할로 체력소모가 많다. 대표팀은 박지우가 스타트로 나서 반 바퀴를 돌고 이어 노선영과 김보름, 박지우 순으로 한 바퀴를 돈 뒤 나머지 반 바퀴를 노선영에게 맡기고 남은 두 바퀴를 김보름이 책임지는 순으로 로테이션을 짰다. 김보름이 대표팀의 에이스 임무를 맡은 셈이다.
19일 오후 강원도 강릉 스피드스케이팅경기장에서 2018 평창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팀추월 준준결승전에서 노선영(오른쪽)이 팀 동료 김보름(맨 왼쪽)과 박지우에 비해 4초가량 뒤쳐져 결선선을 통과했다. /강릉=임영무 기자 |
문제는 마지막 두 바퀴에서 불거졌다. 노선영이 반 바퀴를 돌고 선두에서 맨 뒤로 빠졌다. 이후 두 바퀴를 책임진 김보름은 속도를 냈고, 박지우도 뒤를 따랐지만 노선영만 점점 쳐졌다. 통상 맨 선두로 체력을 소모한 선수는 가운데로 이동한다. 뒤 선수가 지친 선수를 밀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노선영은 맨 뒤로 빠졌다.
백철기 감독은 "노선영이 경기 전날 후미로 가겠다고 자청했다. 더 좋은 기록을 위해 노선영이 리드한 후에도 속도를 유지해야 했다. 노선영이 중간에 들어가 속도를 늦추기보다 가장 뒤에 가는 게 낫다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김보름도 "기록을 의식해 마지막 바퀴 때 힘껏 달렸다"며 "결승선에 와서야 (노)선영 언니가 뒤쳐졌다는 걸 깨달았다. 앞에서 이끈 사람으로서 뒤를 챙기지 못해 죄송하다"고 말했다.
노선영의 말은 달랐다. 긴급기자 회견 후 노선영은 SBS와 인터뷰에서 "그동안 다른 선수들과 훈련하는 장소도 달랐고, 만날 기회도 별로 없었다.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며 "내가 뒤로 빠지겠다고 말한 적 없다"고 주장했다.
김보름이 노선영이 뒤쳐진지 정말 몰랐는지도 논란거리다. 팀추월 경기 직후 믹스트존(공동취재구역)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박지우는 "(김)보름 언니랑 제가 준결승에 진출하려는 마음에 더 잘 타려고 욕심을 냈다. 뒤에서 제가 보름 언니를 밀면 기록이 더 잘 나와서 그렇게 했다. 골인하고 전광판을 봤는데 (선영 언니가) 없어 당황했다. 코치 선생님들이 레이스 중 (선영 언니) 많이 떨어져 있으니 살피라고 했는데 첫 올림픽이라 긴장해서인지 그러지 못했다"고 했다.
백철기 감독은 이 부분에 대해 "함성도 크고 경기장의 분위기 때문에 간격이 벌어진다고 소리쳤지만 전달이 안 됐던 것 같다"고 해명했다.
이날 경기에서 김보름과 박지우는 2분59초대에 골인했다. 4위로 4강행 막차에 오른 미국팀의 기록이 2분59초 02였던 점을 감안하면 노선영, 김보름, 박지우 세 선수의 호흡이 진한 아쉬움을 남긴다.
노선영, 김보름, 박지우 세 선수는 21일 7~8위전에 출전한다. 김보름과 박지우 등은 24일 매스스타트에 출전해 메달을 바라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