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태순의 길거리 사회학] 그런 ‘세기의 대결’ 더 하지 마라
입력: 2017.08.28 14:55 / 수정: 2017.08.28 14:55

플로이드 메이웨더(왼쪽)와 코너 맥그리거는 27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세기의 대결로 불린 복싱경기를 펼쳤으나 팬들의 기대를 충족시켜주지 못했다. / 게티이미지코리아 제공
플로이드 메이웨더(왼쪽)와 코너 맥그리거는 27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세기의 대결'로 불린 복싱경기를 펼쳤으나 팬들의 기대를 충족시켜주지 못했다. / 게티이미지코리아 제공


[더팩트 | 임태순 칼럼니스트] 플로이드 메이웨더와 코너 맥그리거의 대결을 TV로 봤다. 메이웨더는 현역 최고의 복싱선수고, 맥그리거는 종합격투기(UFC) 두 체급 챔피언으로 UFC의 지존이라고 한다. 각각 복싱과 UFC를 대표하는 선수이니 ‘세기의 대결’이라고 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말해 그런 세기의 대결은 이제 더 없었으면 한다.

복싱에 대한 내 관심은 그리 높지 않다. 젊었을 때는 무하마드 알리, ‘핵주먹’ 타이슨의 경기를 봤지만 복싱인기가 시들시들해지고 나이가 들면서 관심권에서 차츰 멀어졌다. 그래도 메이웨더는 안다. 필리핀의 매니 파퀴아오와 싸우는 것을 보니 기술이 대단히 뛰어난 선수였다. 예전의 슈가레이 레너드처럼 아웃복싱형의 깔끔한 선수라는 인상을 받았다. 복싱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그런 정도다.

종합격투기는 별 관심이 없다. TV에 경기가 중계되면 다른 곳으로 돌린다. 복싱, 레슬링 등 전통적인 격투기와 달리 진짜 싸우는 것 같아 이맛살이 찌푸려진다. 그래서 맥그리거가 누구인지 몰랐다. 며칠 전 모임에 나가 두 사람의 대결이 화제라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를 알게 됐다.

메이웨더와 맥그리거의 복싱 경기는 세기의 대결로 불리며 대중의 호기심을 자극했다./스포티비 나우 제공
메이웨더와 맥그리거의 복싱 경기는 '세기의 대결'로 불리며 대중의 호기심을 자극했다./스포티비 나우 제공

두 사람의 대결은 이변 없이, 예상대로 메이웨더가 TKO승을 거뒀다. 경기방식을 복싱으로 했으니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초반에는 제법 맥그리거가 공세를 폈으나 후반으로 갈수록 몰렸다. TV를 보면서 왜 복싱으로 경기가 치러졌을까 궁금했다. 아들에게 물어보니 “맥그리거가 먼저 그렇게 제안을 해 그렇다”고 했다. 궁금증은 풀렸지만 불공정한 경기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스포츠에 열광하는 것은 선수들이 훈련과 연습을 통해 최고의 기량으로 승부를 겨루기 때문이다. 그 전제는 동일한 조건이다. 만약 한 쪽이 우월한 조건에서 일방적으로 경기를 하면 결과도 뻔하고 재미도 없다. 아마 그런 맥빠진 경기를 보려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복싱, 유도, 레슬링이 체중을 구분해 경기를 치루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또 규칙을 지켜야 한다. 축구선수는 손을 쓰면 안 되고 반대로 농구선수는 발이 아닌 오로지 손을 사용해야 한다. 이렇게 조건을 같이 하고 무엇은 되고 안 된다는 제한을 가하니 스포츠가 재미있다. 약물복용을 엄격히 규제하는 것도 ‘약물이 아닌 자연 상태에서의 기량발휘’라는 조건을 똑같이 하기 위해서다.

맥그리거는 손과 발을 다 사용할 수 있는 격투기 선수다. 그런데 오로지 손으로만 싸워야했으니 출발부터 불리했다. 불공정, 불균형상태에서 시합을 했으니 이길 리 만무하다. 그런 점에서 두 사람의 대결은 이미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일각에서는 메이웨더가 전성기가 지난 마흔인데 반해 맥그리거가 29살의 젊은 나이이니 어느 정도 균형을 맞췄다고 말한다. 그러나 요즘 과학, 의학의 발달로 점점 체력이 좋아지고 있는데 40이란 나이는 균형추가 되지 못한다. 이런 상태에서 경기를 치르니 저런 경기를 왜하지 아는 안타까움만 있을 뿐 박진감이나 감동은 전혀 느낄 수 없었다. 맥그리거가 끝까지 투혼을 불살랐다는 평가도 있었지만 내 눈엔 그저 공허하게 비쳤다.

이런 변칙 경기는 ‘누가 더 강할까’ 하는 호사가들의 호기심과 더 많은 자극을 원하는 대중들의 얄팍한 심리에 돈벌이가 결합돼 성사됐다. 당연히 두 사람은 많은 돈을 챙겼다. 메이웨더는 2200억 원, 맥그리거는 1100억 원을 벌었다고 한다. 특히 맥그리거의 수입은 UFC에서 한 경기 받은 최고 대전료(33억원)의 33배라니 그로선 아무리 불공정경기라 해도 손해나는 장사가 아니다.

호기심과 강한 자극에 편승한 경기는 과거에도 몇 차례 있었다. 전설의 복서 무하마드 알리와 레슬링 최강자 안토니오 이노키의 대결, 미국 여자 프로골퍼 미셀 위가 남자대회에 도전한 것 등이 기억에 남는다. 그러나 이런 변칙 시합은 관심은 끌었지만 소문난 잔치 먹을 게 없다는 말대로 모두 싱겁게 끝났다.

자연계에도 동종간의 결합은 있어도 서로 종이 다른 이종(異種)간의 결합은 금기시된다. 스포츠도 마찬가지다. 복싱과 종합격투기의 출발부터 조건과 제한이 다른 이종 스포츠의 대결에 일시적 관심을 보이는 스포츠 팬은 있어도 영원히 박수를 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경기가 끝난 뒤 트위터에 올라온 “이 경기의 진짜 패배자는 가짜 스포츠를 본 유료 시청자들”이란 글이 이를 말해준다.

thefact@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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