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프리즘] 한국 레슬링과 투지
입력: 2017.07.29 05:00 / 수정: 2017.07.29 05:00
1984년 LA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낸 뒤 감격해 하는 김원기.
1984년 LA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낸 뒤 감격해 하는 김원기.

[더팩트 | 최정식 선임기자] 레슬링은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스포츠 가운데 하나다. 구약성서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며 기원전 3000년 수메르와 이집트에서 레슬링의 원형이라 할 수 있는 스포츠가 행해졌다. 고대 올림픽에서도 필수 종목이었으며 그리스 올림피아드의 전통을 계승한 근대 올림픽에서도 당연히 첫 대회부터 종목으로 채택되었다.

잘 모르는 사람이 레슬링 경기를 보면 별 특색도 없고 그저 두 사람이 결코 멋지다고 할 수 없는 동작으로 매트 위를 구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올림픽이나 세계선수권대회에 출전할 정도의 선수들은 서로의 공격을 무력화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레슬링은 경기 내내 살과 살이 맞부딪치는 원초적인 스포츠다. 그 어떤 종목보다 선수들의 힘과 기술이 직접적으로 격돌한다. 그래서 때로는 제3의 요소가 승부를 결정짓는다. 투지다.

한국 스포츠가 국제 무대에 나선 이후 레슬링은 빛나는 전과를 올려 왔다. 해방 이후 참가한 올림픽에서 첫 번째와 두 번째 금메달이 레슬링에서 나왔다. 한국 레슬러들의 활약에서 특히 두드러진 것이 바로 '투혼'이었다.

1956년 멜버른 올림픽에 출전한 이상균은 '손가락이 없는 레슬러'였다. 특무대 문관으로 근무하던 중 수류탄 폭발 사고로 손가락 세 개를 잃었다. 레슬링은 상대의 몸을 잡아 매트에 누르는 경기다. 손가락 힘이 경기에 크게 영향을 미친다. 왼손 엄지부터 중지까지 손가락 세 개가 없는 이상균은 자신의 핸디캡을 최소화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해 경기에 나섰다. 손가락이 잘린 부위의 통증을 참아가며 레슬링을 계속한 그의 투지는 한 국내대회에서 늑골이 부러진 상태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승리를 따낼 정도였다. 그런 투지로 올림픽에서 4위를 차지했다.

1968년 멕시코시티 올림픽에 출전한 안천영은 3회전에서 가슴 근육이 파열되고 늑골이 튀어나오는 중상을 입었다. 4회전에는 진출했지만 도저히 경기에 나설수 없는 상태였다. 그러나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는 늑골 부위를 붕대로 감고 출전을 감행했다. 부상으로 힘을 쓸 수가 없었던 그는 판정패했고, 경기가 끝난 직후 앰뷸런스에 실려 병원으로 갔다.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 출전한 유인탁은 자유형 68kg급 준결승에서 허리를 크게 다쳤다. 더 이상 경기는 무리라는 의사의 진단에도 그는 결승에 나섰고 악전고투 끝에 승리했다. 금메달이 확정된 뒤 소변 검사를 받으러 의무실로 가던 그는 통증을 이기지 못하고 쓰러졌다. 결국 그는 올림픽 사상 최초로 휠체어를 타고 시상식에 나간 선수가 됐다.

1988년 서울 올림픽에 출전한 한명우도 자유형 82kg급 결승에서 눈썹 위가 찢어지는 부상으로 붕대를 감고 경기를 치르는 투혼을 펼치며 금메달을 따냈다.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그레코로만형 66㎏급 금메달을 목에 건 김현우는 오른쪽 눈두덩이 피멍으로 부풀어 올라 까맣게 변한 얼굴로 시상대에 올랐다. 한쪽 눈이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승리한 것이다. 김현우는 지난해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에서는 오른쪽 팔꿈치가 탈골되는 고통을 참아내고 동메달을 따냈다.

가난, 신체적 한계, 가족에 대한 사랑, 신앙 등 투혼을 발휘하게 하는 동기는 다양하지만 승리에 대한 굳은 의지라는 점은 한결같다. 심권호를 제외하고는 한국 레슬링의 승리는 대부분 힘과 기술보다는 투지로 빚어낸 것들이었다.

유인탁과 함께 1984년 올림픽 그레코로만형 62kg급에서 금메달을 따냈던 김원기가 27일 급성 심근경색으로 별세했다. 그 역시 어려움을 극복하고 승리를 쟁취한 투지의 인물이었다. 대회를 앞두고 발목 부상을 당해 대표로 선발되기도 힘들었지만 이를 이겨냈고, 올림픽에 나가서도 불굴의 정신력으로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었다.

은퇴한 뒤 보험영업이라는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 그는 지인 보증을 섰다가 부도가 나면서 급여 압류를 당한 끝에 회사를 그만두는 등 시련을 겪었다. 힘든 시간을 보냈지만 매트 위에서처럼 강인한 투지로 다시 일어서 불우한 이웃을 돕는 삶을 살았기에 55세의 나이에 유명을 달리한 것이 더욱 안타깝다.

한때 올림픽 '효자 종목'이었던 레슬링은 최근에는 예전만큼 좋은 성적을 내지 못했다. 여러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과거처럼 치열한 정신이 사라진 것은 아닌가 하는 아쉬움을 느끼게 된다.
malishi@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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