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식의 농구생각] 위기를 맞았을 때, 가능한 변화들
입력: 2017.04.27 05:00 / 수정: 2017.04.27 05:00

[더팩트 | 최정식 선임기자] 프로농구 KGC인삼공사의 포워드 양희종에게는 일부 농구팬들이 부르는 별명이 하나 있다. '무록자(無錄者)'다. 듣기 좋은 별명은 아니다. 풀타임 출전하고도 득점, 리바운드, 어시스트 등의 기록이 하나도 없었던 경기 이후에 붙여진 이름이다. 이번 정규시즌 그의 기록은 평균 3.9점 3.7리바운드 2.0어시스트. 그러나 그는 부상이 없으면 항상 국가대표로 뽑힌다. 리그 최고의 수비수 가운데 하나로 꼽히기 때문이다. 그의 가치는 득점이 아니라 수비에 있다.

26일 잠실실내체육관에서 벌어진 챔피언결정전 3차전. KGC가 서울 삼성을 88-82로 눌러 시리즈 전적 2승 1패로 다시 앞서갔다. 이날 경기 기록지의 양희종 이름 옆에는 13점 5리바운드 6어시스트라는 숫자가 적혔다. 4개의 파울은 낯익지만 13점은 낯설다. 동료 외국인선수 데이비드 사이먼의 34점, 정규시즌 MVP인 오세근의 22점보다 더 크게 느껴지는 숫자다. 양희종은 승부처인 4쿼터에 양 팀을 통틀어 가장 많은 8점을 넣었고, 그런 그의 활약이 3쿼터 한때 11점까지 뒤져 패색이 짙었던 KGC를 역전승으로 이끌었다.

챔프전을 앞두고 열린 미디어데이 행사 때 삼성 이상민 감독이 농담처럼 양희종의 공격에는 신경쓰지 않겠다는 말을 했다. 양희종을 놓아두고 다른 득점력 높은 선수에게 도움 수비를 하는 것은 삼성만이 아니다. 기분 좋을 리 없는 말이지만 그는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자신은 궂은 일을 맡는 블루워커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3차전에서는 적극적으로 골밑을 파고들며 득점을 노리고, 과감하게 3점슛을 던졌다.

양희종은 경기가 끝난 뒤 "키퍼 사익스가 부상으로 빠지면서 공격력이 약해졌다. 국내선수들이 우리끼리 즐기면서 우리 농구를 해보자고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가 공격에 적극적이었던 것은 사익스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서만은 아니었다. 그는 "꼭 이기고 싶었다"고 했다.

2차전에서 이정현이 삼성 이관희와 거친 몸싸움을 벌였다. 이관희는 그 경기에서 퇴장당했고 징계를 받아 3차전에 나서지 못했다. 그러나 이 일로 이정현은 먼저 거친 플레이로 이관희를 자극했다는 논란에 휩싸였다. 평소 습관적으로 할리우드 액션을 한다는 비난까지 겹쳐지면서 이관희보다 더 큰 타격을 입었다. 3차전에서도 관중석에서 그를 향한 야유가 나왔다.

양희종은 "이겨야 경기 후 기자회견에서 우리 얘기를 할 수 있기 때문에 이기고 싶었다. 여러가지 상황이 우리에게 불리하게 돌아가는 것 같았다. 여론이 한쪽을 너무 나쁜 사람으로 몰아가는 것 같아 아쉬웠다"고 말했다. 사익스는 다쳐서 경기에 나서지 못하고 사이먼도 발목이 좋지 않다. 이정현은 심리적으로 위축됐다. 이정현 개인뿐 아니라 팀에 대한 여론이 나빴다. 그래서 양희종이 달라진 것이다.

삼성 이상민 감독은 자신의 선수들에 대해 "너무 착하다"고 말하곤 한다. 투지가 부족하다는 것이어서 좋은 의미만은 아니다. 착해서인지 잘 흔들린다. 전력이 강한 팀이지만 상대가 세게 나오면 우왕좌왕하고, 중요한 상황이라는 생각이 들면 마음이 급해 서두르다가 실책을 쏟아내며 무너진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2차전에서 이관희가 퇴장당했을 때 원래의 삼성이라면 흔들려야 했다. KGC는 정규시즌에서 우승한, 빈틈을 찾아보기 어려운 상대다. 삼성은 플레이오프 6강과 4강의 관문을 통과하는 동안 10경기나 격전을 치러 체력적으로 절대 불리하다. 게다가 1차전을 졌다. 이관희의 퇴장은 잘못됐다고 할 수 없지만 그 과정이 삼성 선수들로서는 억울했다.

그런데 삼성 선수들의 분위기는 가라앉지 않았고 오히려 투지를 불태웠다. 전반을 6점차로 뒤졌지만 후반에 뒤집었고 끝까지 집중력을 잃지 않으며 완승을 거뒀다. 이관희가 '관창'이 된 셈이다.

사실 이번 플레이오프에서 삼성의 위기는 전자랜드와의 6강전에서도, 오리온과의 4강전에서도 있었다. 그런데 이겨냈다. 그럴 수 있었던 힘은 변화다. 삼성은 막강한 주전 라인업에 크게 의존했고 공수 전술도 어느 정도 정해져 있었다. 그런데 플레이오프에서 이상민 감독은 전술에서도 선수 기용에서도 변화를 시도했다. 정규시즌보다 훨씬 긴박한 승부에서 익숙한 전술을 바꾸고 백업 멤버를 다양하게 활용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았다면 챔프전까지 올라오지 못했을 지도 모른다.

불리한 상황과 환경은 오히려 성장과 발전을 가져온다. 도전과 응전이다.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느냐는 이전과 다른 모습으로 바뀔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malishi@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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