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틀리프의 43점과 이승현의 파울트러블
입력: 2017.04.18 05:00 / 수정: 2017.04.18 05:00
오리온 이승현이 17일 열린 프로농구 4강PO 4차전에서 삼성 리카르도 라틀리프의 공격을 막고 있다. /KBL 제공
오리온 이승현이 17일 열린 프로농구 4강PO 4차전에서 삼성 리카르도 라틀리프의 공격을 막고 있다. /KBL 제공

[더팩트 | 최정식 선임기자] 삼성의 리카르도 라틀리프가 17일 잠실실내체육관에서 벌어진 2016-2017프로농구 4강 플레이오프 4차전에서 무려 43점을 넣었다. 그런데 팀은 76-79로 패했다. 다른 선수들의 득점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삼성은 라틀리프 외에 마이클 크레익이 12점을 올렸을 뿐 국내선수 가운데 두 자릿수 득점을 기록한 선수가 한 명도 없었다.

역대 플레이오프에서 라틀리프보다 더 많은 득점을 한 선수들이 있었다. 나래의 제이슨 윌리포드는 97시즌 플레이오프 6강 2차전에서 46점, 97-98시즌 6강 2차전에서 47점을 넣었다. 앞의 경기는 나래가 졌고 뒤의 경기는 나래가 이겼다. 2000-2001시즌 6강 2차전에서는 데니스 에드워즈가 46점을 넣은 SBS가 졌고, 2006-2007시즌 6강 3차전에서 피트 마이클이 47점을 넣은 오리온스는 이겼다. 한 선수가 경기를 지배하는 것과 팀의 승패는 일치하지 않는다.

사실 득점이 많다고 경기를 지배했다고 할 수는 없다. 팀의 공격이 특정선수에게 집중된 결과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날 라틀리프는 팀 전체 2점 야투의 절반이 넘는 26개를 혼자 던졌다. 그렇지만 성공률이 65%였다. 페인트존에서 그가 공을 잡으면 거의 한 골이었던 셈이다. 그가 공격 기회를 독차지한 것이 아니라 삼성이 필요에 의해, 또는 어쩔 수 없이 그에게 의존한 것이다.

라틀리프의 득점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21점이 4쿼터에 나왔다. 그를 수비한 오리온 이승현이 4반칙으로 파울트러블에 걸렸기 때문이다. 추일승 감독은 이승현의 파울아웃에 대한 부담 때문에 막판 장재석을 투입해 대신 라틀리프를 수비하게 했다.

이승현이 파울트러블에 걸리고, 애런 헤인즈 등이 도움 수비를 했으며, 트랩 수비까지 펼쳤는데도 라틀리프가 43점을 넣었다면 오리온의 수비가 제대로 되지 않은 것일까? 이승현은 "내가 라틀리프를 제대로 막을 수는 없다. 하지만 결정적일 때 실수를 이끌어낼 수 있으면 된다. 실수 하나, 리바운드 하나로도 흐름과 분위기가 바뀔 수 있다. 득점은 아무리 많이 하더라도 신경쓰지 않는다"고 말했다.

오리온의 수비 전략은 명확하다. 라틀리프에게 주는 득점은 어쩔 수 없더라도 다른 선수를 막는 것이다. 특히 삼성의 외곽포를 봉쇄하는데 집중하겠다는 것이다. 이날 삼성은 18개의 3점슛을 던져 3개를 넣는데 그쳤다. 그나마 그 가운데 하나는 이미 승부가 굳어진 상태에서 경기가 끝나기 직전 라틀리프가 성공한 것이다. 오리온은 라틀리프의 슛 시도보다 그가 킥아웃으로 동료들의 외곽 기회를 살리려 하는 것을 막는데 집중했다.

오리온은 라틀리프에게 43점을 내줬지만 헤인즈(26점)와 이승현(19점), 허일영(14점)의 득점으로 충분히 만회하면서 승리를 거뒀다. 특히 헤인즈는 득점 외에 10개의 리바운드와 8개의 어시스트로 '트리플 더블급' 활약을 펼쳤다.

살아난 헤인즈가 2연패 뒤 2연승의 주역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럴 수 있는데는 이승현의 역할이 결정적이다. 보통은 장신 외국인선수가 상대 장신 외국인선수를 막는다. 그러나 기량이 뛰어나지만 포워드인 헤인즈는 라틀리프를 수비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라틀리프 수비만을 위한 장신 국내선수를 투입하는 것은 효과도 별로 없을 뿐더러 삼성의 전력을 고려할 때 매치업 상 효율적이지도 않다. 그래서 공수에 걸쳐 핵심선수인 이승현이 라틀리프를 맡고 다른 선수들이 도움수비를 하는 것이 유일한 해결책이었다. 그리고 그 결과가 이승현의 파울트러블이다.

농구뿐 아니라 모든 경기에서 득점이 가장 중요하다. 그것으로 승부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승패를 가르는 것은 팀의 득점이지 선수의 득점이 아니다. 그래서 선수에게는 득점 이외의 중요한 역할들이 있다. 이승현의 파울트러블이 라틀리프의 43점 못지 않는 가치를 가질 수도 있는 것이다.
malishi@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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