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의 체력과 라틀리프, 오리온의 경기감각과 김동욱
입력: 2017.04.12 05:00 / 수정: 2017.04.12 05:00
삼성 리카르도 라틀리프가 11일 열린 4강 PO 1차전에서 오리온의 집중수비를 뚫고 공격하고 있다. /KBL 제공
삼성 리카르도 라틀리프가 11일 열린 4강 PO 1차전에서 오리온의 집중수비를 뚫고 공격하고 있다. /KBL 제공


[더팩트 | 최정식 선임기자] 체력과 경기감각, 어느 것이 더 문제일까.

오리온과 삼성의 2016-2017프로농구 4강 플레이오프 1차전이 11일 고양체육관에서 열렸다. 2위로 4강에 직행한 오리온은 정규시즌 최종전 이후 16일 만의 경기. 이에 비해 삼성은 6강 플레이오프에서 전자랜드와 5차전까지 가는 치열한 승부를 벌인 뒤 이틀을 쉬고 다시 코트에 나섰다.

경기 전 삼성 이상민 감독은 "선수들이 많이 지쳤다"며 체력이 문제가 될 것을 걱정했다. 반면 오리온 추일승 감독은 경기감각이 떨어질 것에 대해 크게 우려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다만 "경기내용이 좋아야지 그렇지 못하면 2주 동안 뭐했냐는 소리를 들을 것"이라고 했다.

워낙 휴식기가 길었던 까닭에 오리온 선수들은 4일간의 휴가까지 받을 수 있었다. 정규시즌 종반 몸 상태가 나빴던 선수들도 많이 좋아졌다. 그런데 아직도 한 선수가 회복되지 못했다. 베테랑 포워드 김동욱이다. 추 감독은 "무리하게 출전시키지 않으려고 한다"는 뜻을 밝혔다.

이날 경기는 삼성이 78-61로 완승을 거뒀다. 마지막 4쿼터를 시작할 때의 스코어가 61-36이었을 정도로 일찌감치 승패가 굳어졌다. 삼성은 리카르도 라틀리프가 33점 19리바운드로 이날도 변함없이 골밑에서 맹위를 떨쳤다.

오리온은 전반 14개의 3점슛을 던져 단 2개를 적중하는데 그쳤다. 골밑 공략에 애를 먹어 2점 야투의 성공률도 크게 떨어졌다. 2쿼터 중반 이후 줄곧 무기력한 모습이었다. 단순히 슛만 부정확한 것이 아니라 전반적으로 공격을 제대로 풀어가지 못했다.

오리온은 정규시즌 삼성과 경기에서 시즌평균보다 10점 가까이 높은 92.3점을 기록했다. 두 차례나 100점 이상을 넣었고 가장 적었던 것이 79점이었다. 그런데 이날은 3쿼터까지 40점에도 못미쳤다. 이미 승부가 결정된 4쿼터 중반 이후 양 팀 주력선수들이 빠지고 삼성 수비가 느슨해진 덕에 간신히 60점을 넘겼다.

이 정도라면 너무 오래 쉰 탓에 경기감각에 문제가 있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추일승 감독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영향이 전혀 없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그것이 승패를 좌우할 정도는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보다는 삼성이 정규시즌에 별로 쓰지 않던 지역방어를 들고 나왔는데 이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오리온으로서 아쉬운 것은 김동욱의 공백이다. 김동욱은 넓은 시야로 상대의 허점을 파고드는 패스를 하고, 동료와 호흡을 맞춘 2-2 플레이를 펼치며 공격의 흐름을 이끌어 갈 수 있는 선수이기 때문이다. 게임을 읽는 눈이 좋고 경험도 많아 상대의 수비에 따라 공격을 풀어갈 수 있다. 추 감독은 오데리언 바셋이 그런 역할을 해주기를 바랐지만 기대에 못미쳤다.

삼성은 전자랜드와 6강 플레이오프를 하기 전에 이미 오리온과 대결에 대비해 지역방어를 다듬어 왔다. 그러나 오리온이 그런 수비를 깨지 못할 팀은 아니다. 김동욱이 부상으로 빠져있을 때도 이날처럼 맥없이 무너지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경기감각에 문제가 있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삼성의 체력은 어떻게 된 걸까? 삼성은 포인트가드 김태술이 무릎 통증에 시달리고 있어 노장 주희정의 기용시간을 대폭 늘렸다. 오리온의 앞선 압박에 맞서기 위해 장신 가드 이동엽도 중용했다. 이들은 20분을 훨씬 넘기며 정규시즌 평균 출전시간의 2배 이상을 뛰었고, 제몫을 했다. 김동욱의 난 자리처럼 이들의 든 자리도 표가 났다.

삼성이 체력 문제를 크게 느끼지 않은데는 라틀리프의 역할이 크다고 본다. 뛰어난 체력을 자랑하는 그가 전자랜드와의 5경기에서 풀 출장에 가까운 시간을 뛰고도 여전한 활약을 보여줬다는 것만이 아니다. 라틀리프가 워낙 골밑에서 강한데서 비롯되는 파급 효과가 있다.

정규시즌 라틀리프에 대한 트랩 수비로 효과를 봤던 추일승 감독은 경기 전 "완전히 막을 수는 없다. 그러다가는 다른데서 망한다. 공격리바운드를 너무 많이 주지 않고 1인 속공을 쉽게 허용하지 않는 정도로 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트랩이든 협력수비든 제대로 하려면 로테이션으로 빈 곳을 커버해야 하기 때문에 체력 소모가 심할 수밖에 없다. 물론 삼성 선수들도 라틀리프에 대한 상대의 수비에서 파생되는 기회를 살리기 위해 계속 움직여야 하지만 상대보다 여유가 있기 때문에 힘이 덜 든다.

경기를 어렵게 풀면 체력소모가 더 커지고 경기가 쉽게 풀리면 체력의 문제가 크게 드러나지 않는다. 따라서 체력보다는 경기감각이 더 문제가 될 수 있다. 그런데 승부는 한 판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최소 3경기에서 최대 5경기를 치러야 한다. 시간이 흐를 수록 경기감각의 문제는 없어지고 체력의 문제는 누적된다. 삼성과 오리온은 2차전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
malishi@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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