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농구 신인왕의 자격
입력: 2017.03.23 05:00 / 수정: 2017.03.23 05:00
전자랜드 강상재가 22일 삼성전에서 슈팅을 시도하고 있다. /KBL 제공
전자랜드 강상재가 22일 삼성전에서 슈팅을 시도하고 있다. /KBL 제공

[더팩트 | 최정식 선임기자] "상재에게 미안하다."

프로농구 인천 전자랜드의 유도훈 감독은 22일 잠실실내체육관에서 벌어진 서울 삼성과의 원정경기에서 81-78로 이겨 6강 플레이오프 진출을 확정한 뒤 신인 포워드 강상재의 몸 상태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발등 부상으로 계속 통증을 호소하고 있다는 것이다. 경기에 나설 수 없는 상태인데도 뛰도록 해 미안하다는 마음을 나타냈다.

강상재는 이날 25분여를 소화했다. 2득점 2리바운드 3어시스트 1블록슛으로 출전시간에 비해 두드러진 기록은 아니었다. 정상 컨디션이 아니었으니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순간에 그는 제몫을 했다. 79-78로 불안하게 앞선 종료 18초 전 강상재는 삼성 문태영의 슛을 막아냈다. 이 블록은 속공으로 연결됐고 제임스 켈리가 승리를 굳히는 덩크를 터뜨렸다.

삼성은 높이가 강점인 팀이다. 리카르도 라틀리프와 마이클 크레익, 김준일 등이 버티고 있는 삼성을 상대하기 위해 공수 모두에서 장신 포워드 강상재가 필요했다. 7위 창원 LG와의 플레이오프 진출 경쟁에서 다소 유리한 처지이기는 했지만 삼성전을 패했다면 어떻게 될지 몰랐다. 꼭 잡아야 하는 경기였기 때문에 유 감독은 몸 상태가 좋지 않은 강상재를 투입해야 했고 비교적 긴 시간 기용해야 했다.

그러나 유 감독이 강상재에게 미안함을 표시한 것처럼 강상재는 유 감독에게 고마움을 나타내야 할지도 모른다. 전자랜드 선수 모두 플레이오프 진출에 대한 간절함이 있었지만 강상재에게는 특별한 의미가 하나 더 있었기 때문이다.

강상재는 서울 SK 최준용과 함께 이번 시즌 신인왕의 유력한 후보다. 시즌 초반부터 최준용의 활약이 돋보였고, 전체 1순위로 지명된 이종현(울산 모비스)의 부상에 따른 결장이 장기화되면서 신인왕은 최준용으로 굳어지는 듯했다. 그러나 5라운드부터 강상재가 존재감을 드러내면서 추격을 시작했고 신인왕 경쟁은 승자를 예측할 수 없는 상황으로 바뀌었다.

22일 현재 최준용은 평균 8.3점 7.3리바운드 2.5어시스트 1.1블록을 기록하고 있다. 강상재는 8.2점 4.7리바운드 1.0어시스트 0.4블록. 최준용이 모든 부문에서 다소나마 앞선다.

그러나 전자랜드는 플레이오프에 진출했고 SK는 탈락했다. 개인 성적에 큰 차이가 없으면 팀 성적이 득표에 결정적으로 작용한다. 2014-2015시즌 고양 오리온 이승현이 개인 성적 가운데 가장 비중이 높은 득점에서 삼성 김준일에게 뒤졌지만 오리온은 플레이오프에 나갔고, 삼성은 최하위로 떨어졌다. 신인왕은 이승현의 것이 됐다.

2013-2104시즌 전주 KCC 김민구가 LG 김종규와의 신인왕 경쟁에서 밀리자 당시 KCC 사령탑이었던 허재 감독은 "신인왕을 뽑는데 개인 성적으로 해야지 왜 팀 성적이 더 중요하냐"고 불만을 나타냈지만 그렇게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개인을 평가하려면 각 부문 통계를 종합한 공헌도로 따지면 될 것 같지만 그러면 그 숫자가 끼친 영향에 대한 평가가 빠지게 된다. 소속팀의 선수 구성과 맡게 되는 역할에 따라 기록 상의 숫자는 달라질 수 있다. 팀 성적도 마찬가지다. 그 선수가 없었으면 같은 결과를 낼 수 없었는지 따져봐야 한다.

해마다 새로 들어오는 루키들은 프로농구의 활력소다. 소속팀은 물론 리그 전체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는다. 그들이 없었을 때에 비해 리그가 얼마나 달라졌는가 하는 파급 효과, 그것이 개인 성적이나 팀 성적보다 더 중요한 신인왕의 자격이다.

숫자로만 평가할 수 없다. 팀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그에 따라 리그 전체의 판도에도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다는 존재감이 있어야 한다. 기록은 평가의 기준이 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강한 인상이다. 그런 면은 계량화하기 어렵다. 그래서 신인왕을 기자단 투표로 뽑는다.

강한 인상을 남기려면 결정적인 순간에 코트에 있어야 한다. 이번 정규시즌 전자랜드에게 결정적인 순간은 바로 삼성전의 마지막 1분이었다. 그 때 강상재를 코트에 세운 사람이 유도훈 감독이었다. 유 감독은 강상재에게 미안했지만 강상재는 유 감독이 고마웠을 이유다.
malishi@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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