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프리즘] 리듬체조, 상처와 미소
입력: 2017.02.20 05:00 / 수정: 2017.02.20 05:00

[더팩트 | 최정식 선임기자] 한국 리듬체조의 간판이었던 손연재가 지난 18일 은퇴를 선언했다. 손연재처럼 높은 인기를 누리면서 동시에 갖은 의혹과 비난에 시달린 스타도 드물 것이다. '오버 스코어' 논란 등 그의 기량에 대한 의문 제기에도 불구하고, 그가 불모지나 다름없었던 한국 리듬체조에 의미 있는 성과와 유산을 남겼음은 부인할 수 없다. 낯설기만 했던 리듬체조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많은 소녀들이 리듬체조 스타를 꿈꾸게 됐다. 새로운 문화를 만든 것이다.

리듬체조의 역사는 짧지 않다. 18세기에 '최고의 운동은 춤처럼 자유롭게 표현되는 움직임에 토대를 둬야 한다'고 생각한 이들에 의해 음악과 조화를 이루는 신체 활동으로 자라났다.

그러나 스포츠로서 역사는 길지 않다. 최초의 대회가 1942년 소련에서 열렸고, 올림픽종목이 된 것은 1984년 로스앤젤레스 대회부터였다. 처음에는 소련이, 그리고 소련이 해체된 이후에는 러시아가 리듬체조 최강의 자리를 지켜온 것은 이런 역사와 전통에서 비롯됐다.

처음에는 스포츠라기보다 무용에 더 가깝다는 반응이 많았고, 지금도 올림픽 종목에 포함돼야 하는지 의문을 나타내는 사람이 적지 않다.

리듬체조를 포함한 체조와 피겨스케이팅 등의 종목은 심판의 채점으로 승부를 겨룬다. 주어진 시간 내에 미리 규정된 일련의 복합적 형식에 신체를 적응시켜야 한다. 심판은 특정 형식이 얼마나 완전하게 구현됐는가에 따라 판정을 내린다. 이 때문에 심판의 편견과 악의가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 고정된 기준 때문에 선수들의 새롭고 이상적인 형식 창조를 제한할 수 있다는 비판이 있어 왔다.

그러나 좀 더 완전해지기 위한 선수들의 의지와 노력은 새로운 미적 기준을 만들어내며 종목의 수준을 높여 왔다. 신체 동작의 새로운 창조가 경쟁이라는 형식과 어우러지면서 스포츠로서의 가치를 만들어내고, 심판과 관중의 뜨거운 관심을 이끌어내는 것이다.

리듬체조에서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것은 화려한 복장과 감성을 자극하는 음악, 짙은 화장, 그리고 환한 미소다. 운동능력은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유연성과 균형 감각 외에도 기본적으로 힘이 필요한 종목이다. 게다가 어느 종목 못지 않게 잦은 부상에 시달린다. 후프와 볼, 곤봉, 리본은 선수들의 연기를 위한 가벼운 소품 정도로 보이지만 좀 더 높은 수준으로 올라서기 위해 훈련하면서 끊임 없이 허공으로 던지고 받아내는 동작을 반복하는 선수들에게는 흉기가 될 수도 있다.

지난해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때 미국의 리듬체조 선수 알리야 프로토는 NBC와 인터뷰에서 경기 중 부상당한 일화를 소개했다. 연기 중 곤봉을 머리에 맞았는데 곤봉이 머리핀을 눌러 두피가 찢겼다는 것이다. 그녀는 끝까지 연기를 마쳤고 뒷목으로 피가 흐르는 상태에서도 고통을 참고 얼굴 가득 미소를 머금어야 했다.

곤봉에 머리를 맞은 선수는 헤아릴 수 없이 많고, 리본에 눈을 찔리거나 발목에 감기기도 한다. 발목이 골절된 줄도 모르고 경기를 마친 선수도 있다. 정말 심각한 부상이 아닌 이상 선수들은 연기를 계속한다. 그리고 마지막에 관중이 보게되는 것은 고통이 아니라 밝은 웃음이다.

리듬체조 선수의 우아한 연기와 미소를 바라본 소녀들은 이 종목에 매혹된다. 그리고 리듬체조 선수의 꿈을 키운다. 가족을 떠나 보내야 할 힘든 시간들과 그 과정에서 찾아올 고통을 미리 알 리는 없다. 그러나 몸과 마음의 상처를 이겨내면 그들은 꿈꾸었던 성취를 이룰 수 있다. 다음 영상의 소녀처럼.

[영상] 리듬체조 스토리

손연재가 은퇴하면서 그가 끝내 올림픽 메달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떠나는데 대한 아쉬움과 그의 뒤를 이을 유망주가 눈에 띄지 않는데 대한 우려가 있다. 그러나 한국이 모든 종목에서 세계적인 강국이 될 수도 없고, 리듬체조처럼 저변이 취약한 종목에서 꼭 올림픽 메달을 따야하는 것도 아니다. 리듬체조라는 아름다운 스포츠에 매혹돼 도전에 나선 소녀들이 꿈을 포기하지 않을 만큼의 관심과 지원이면 충분하다.
malishi@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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