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삼성 마이클 크레익 |
[더팩트 | 최정식 선임기자] 경기에 진 농구 감독들에게서 자주 듣는 이야기 가운데 하나가 "이렇게 실책이 많아서는 이길 수가 없다"는 것이다.
실책(턴오버)은 상대에게 볼을 빼앗기거나 바이올레이션이나 공격자 파울을 범하는 등의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지만 단순하게 표현하면 공격팀이 야투와 자유투 실패 이외의 이유로 상대에게 공격권을 넘겨주는 것이다. 두 팀의 야투 성공률에 큰 차이가 없을 때 공격횟수가 많은 쪽이 승리할 가능성이 높다. 실책은 공격 기회가 없어질 뿐 아니라 상대에게 공격 기회를 주기 때문에 타격이 크다. '실책이 많아서 졌다'는 말이 설득력을 갖는 이유다.
그렇지만 감독들이 실책을 무조건 나쁘게만 보는 것은 아니다. 서울 삼성은 8일 홈경기에서 안양 KGC인삼공사를 80-74로 눌렀다. 그런데 이날 삼성이 범한 실책이 무려 18개였다. KGC는 5개. 삼성 이상민 감독은 경기 후 "턴오버를 리바운드로 만회했다"고 말했다. 삼성은 리바운드에서 45-24로 크게 앞섰다. 이 감독은 "어이없는 턴오버가 아니라 공격적인 플레이를 하다가 나온 턴오버였다. 그래서 괜찮았다"고 했다.
보통 포인트가드와 외국인선수의 실책이 가장 많다. 공을 가장 많이 다루기 때문이다. 포인트가드의 효율성을 보여주는 통계가 어시스트와 실책의 비율인 ATR(Assist-to-turnover ratio)이다. 100개의 도움과 50개의 실책을 하는 선수(ATR 2)보다는 80개의 도움과 20개의 실책을 하는 선수(ATR 4)가 팀에 더 보탬이 된다. 팀에 공격 횟수를 더 많이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올시즌 어시스트 선두는 평균 7.11을 기록 중인 인천 전자랜드 박찬희다. 37경기에 출전해 263개의 어시스트를 기록하면서 실책은 69개다. ATR이 3.81로 매우 훌륭하다. 박찬희보다 ATR이더 높다고 해서 꼭 좋은 포인트가드라고 할 수는 없다. 팀의 공격을 주도하고 있지 못하거나 적극성이 부족해 실책이 적은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실책이 더 많았던 삼성이 KGC를 꺾은 8일 다른 경기에서는 실책이 10-19로 더 적었던 서울 SK가 창원 LG를 82-70으로 물리쳤다. 8일 현재 실책이 가장 많은 팀은 원주 동부(13.9개)다. 그 다음이 삼성(13.4)이다. 가장 적은 팀은 고양 오리온(10.4)이고 그 다음이 11개씩을 기록 중인 KGC와 부산 KT다. 상위 4개 팀이 실책수에서 양쪽으로 갈려 있다. 실책 자체만으로는 승패의 영향이 크지 않다고 볼 수 있다.
현재 시즌 실책이 100개가 넘는 선수는 LG의 제임스 메이스(140)와 삼성의 마이클 크레익(122), KGC의 이정현(118) 등 세 명이다. 팀에서 이들을 빼놓고 경기하는 것을 생각할 수 없는 선수들이다. 출전시간을 고려하면 크레익의 실책이 가장 많은데, 그는 팀의 포인트가드 김태술과 거의 비슷한 수의 어시스트를 하고 있으며 그 가운데는 관중의 탄성을 자아내는 멋진 패스들이 적지 않다.
통계상으로만 보자면 실책을 무릅쓰고 공격적인 플레이를 할 이유가 별로 없다. 그러나 통계는 결과이고 승부는 흐름이다. 공격적인 플레이는 상대의 수비를 흔들어 공수가 반복되는 경기 흐름 속에서 주도권을 갖게 하므로써 통계상의 여러 수치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관중에게 좀 더 박진감 넘치는 경기를 보여줄 수 있다는 점에서 프로농구에서는 더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매직 존슨은 1만141개의 어시스트를 했지만 3천506개의 턴오버도 했다. 그가 마법 같은 플레이로 농구팬들을 사로잡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실패가 필요했던 것이다. 걱정할 것은 실수가 아니라 시도하지 않아 사라지는 기회들일 것이다. 농구에서도, 그리고 인생에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