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 | 최정식 선임기자] 유재학(54) 울산 모비스 감독과 조동현(41) 부산 KT 감독을 흔히 '사제지간'이라고 한다. 조 감독이 연세대에 들어갔을 때 학교 선배인 유 감독이 코치를 맡고 있었다. 유 감독이 프로에서 인천 팀(대우, 신세기, SK 빅스, 전자랜드) 감독을 맡고 있을 때 조 감독이 그 팀들에서 선수로 뛰었다. 조 감독은 현역에서 은퇴한 뒤에도 모비스에서 코치로 유 감독을 보좌했다.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인연인데 실제로 닮은 면이 많다.
31일 모비스는 '메인' 외국인선수인 찰스 로드를 퇴출할 뜻을 밝혔고, KT는 팀의 간판인 조성민의 트레이드를 발표했다. 모비스는 KBL에 에릭 와이즈에 대한 가승인을 신청했다. 그런데 교체 대상이 네이트 밀러가 아닌 로드다. 장신 외국인선수를 단신 외국인선수로 바꾸려는 것이다. KT는 창원 LG에 조성민을 내주고 김영환을 받았다. 대신 다음 시즌 신인드래프트 2라운드 지명권을 주고 1라운드 지명권을 받기로 했다.
둘 다 파격적인 선택이지만 성격은 아주 다르다. 플레이오프 진출권 안에 있는 모비스는 좀 더 높은 곳을 바라보며 팀을 정비했고, 플레이오프 진출이 가망 없는 KT는 미래를 위한 팀 리빌딩에 나선 것이다.
유재학 감독은 모비스에서 리빌딩이라는 것을 해본 적이 없다. 계속 성적이 좋았기 때문이다. 리빌딩을 천명한 지난 시즌에도 막판까지 전주 KCC와 1위 다툼을 했다. 그래서 그의 선택은 대부분 우승을 위한 것이었다. 2013년 1월 LG와 외국인선수 트레이드를 통해 로드 벤슨을 영입한 것도 그런 차원이었다. 그 대가로 젊은 가드 김시래를 LG에 넘겨야 했지만 벤슨으로 골밑을 강화해 2시즌 연속 정상에 올랐다. 그런데 유 감독은 2014~2015시즌을 앞두고 벤슨을 퇴출했다. 팀 분위기를 해친다는 이유였다. 전력 약화에 대한 우려가 있었지만 모비스는 3연속 우승을 달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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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는 통산 500블록을 넘어섰고, 올시즌 한 경기 43점을 기록했을 정도로 존재감이 큰 선수다. 그러나 기분에 따라 경기력이 달라지고 종종 불성실한 모습을 보여 앞서 그를 썼던 감독들을 골치 아프게 했다. 유 감독은 와이즈 가승인 신청 후 "밀러가 더 좋아서 로드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로드가 파트너로서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양동근과 이종현이 부상으로 빠져 있는 동안 모비스는 로드 덕분에 이기고, 로드 때문에 패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불안정한 상태를 그대로 둘 수 없었던 것이다.
신인드래프트에서 전체 1순위로 이종현을 뽑았을 때부터 유 감독의 머릿속에는 여러 가지 생각이 오고갔을 것이다. 양동근과 이종현이 합류할 때까지는 로드가 중심적인 역할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종현이 가세하면 함지훈, 로드와 함께 썼을 때 팀의 전체적인 움직임이 뻑뻑해지는 것이 불가피하다. 세 빅맨의 공존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지난 29일 모비스는 KT와 4라운드 경기를 했다. 경기 직전 갑자기 허리 통증을 호소한 로드가 결장했다. 그런데 이긴 것은 물론 내용도 좋았다. 유 감독은 "올시즌 가장 재미있는 경기였다"며 밝게 웃었다. 단합된 팀, 유기적인 움직임, 조직력을 강조하는 그로서는 로드가 없는 경기에서 가능성을 확인한 것이 기뻤을 수 있다. "생각보다 이종현의 적응 속도가 빠르다"는 말은 모비스가 올시즌 들어 지금까지 해온 것과는 다른 농구를 할 것이라는 예고와 같다.
트레이드를 통한 드래프트 픽 확보는 팀 리빌딩의 가장 대표적인 방법이다. 조성민 트레이드 직후 KT의 한 관계자는 그동안 트레이드를 통해 유망주나 지명권을 뺏겼다며 안양 KGC인삼공사의 이정현을 예로 들었다. KT는 지난 2009년 KT&G(현 KGC)와 1라운드 지명권과 도널드 리틀을 주고 나이젤 딕슨을 받는 트레이드를 했다. KT&G가 이 때 얻은 지명권으로 뽑은 선수가 올시즌 국내 선수 중 득점 1위를 달리고 있는 이정현이다. 당시 트레이드가 KGC '국가대표 라인업' 구축에 상당한 역할을 한 것이다. 딕슨을 얻은 KT는 정규시즌에서 모비스와 동률을 이뤘으나 상대전적에서 뒤져 2위를 했고, 4강 플레이오프에서 KCC에 져 탈락했다.
이에 앞서 2003~2004시즌에는 KCC가 모비스로부터 R.F. 바셋을 영입해 골밑을 강화했다. KCC는 바셋을 앞세워 챔피언결정전에서 TG삼보를 꺾고 우승했다. 이때 모비스가 바셋을 내준 대신 얻은 지명권으로 뽑은 선수가 이후 팀이 다섯 차례 챔피언에 오르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 양동근이다. KCC와 모비스 모두 만족스러운 교환이었다. KT가 이번 트레이드의 결과로 이어지기를 바라는 모델이다.
조동현 감독은 "성민이에게 미안하지만 다른 국내 선수들이 약한 면이 있다보니 성민이에 대한 의존도가 너무 높았다"고 말했다. 조성민 한 명에게 플레이오프 진출 여부가 달려있는 상황이었다는 것이다. 조성민은 로드와 달리 항상 성실한 선수지만 부상으로 출전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가 부상으로 빠져있거나 상대의 집중견제에 묶이면 팀 전체의 경기력이 크게 떨어지는 문제가 있었다.
모비스와 KT의 선택은 분명 다른 것이다. 그러나 공통점이 하나 있다. '한 선수에 의해 팀이 좌우되어서는 안 된다'는 감독의 신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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