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달(왼쪽)과 페더러가 29일 2017호주오픈 남자단식 결승이 끝난 뒤 악수를 나누고 있다. / 게티이미지 제공 |
[더팩트 | 최정식 선임기자] 황제의 귀환과 제왕의 부활. 톱시드 앤디 머리(영국)와 2번시드 노바크 조코비치(세르비아)의 초반 탈락으로 충격을 안겨줬던 2017 호주오픈 남자단식이 테니스 사상 최고 라이벌의 결승 격돌로 화려하게 막을 내렸다.
'테니스 황제' 로저 페더러(36, 스위스)가 29일 멜버른에서 벌어진 남자단식 결승에서 3시간 37분간의 풀세트 사투 끝에 '클레이의 제왕' 라파엘 나달(31, 스페인)을 3-2(6-4 3-6 6-1 3-6 6-3)로 물리치고 개인통산 18번째 그랜드슬램대회 단식 타이틀을 차지했다. 15번째 메이저대회 단식 우승을 노렸던 나달도 비록 패했지만 여전한 강자의 면모를 자랑했다.
페더러는 메이저대회 최다 우승과 최장기간 세계 1위, 최다연속 1위, 4개 메이저대회 모두 5회 이상 결승 진출 등 수많은 기록을 갖고 있다. 나달은 프랑스오픈 9회 우승의 위업을 이뤘고, 2008 베이징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어 남자선수로는 앤드리 애거시(미국)에 이어 두번째로 커리어 골든슬램을 달성했다.
페더러는 테니스 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로 꼽히는데 비해 나달은 지금까지 쌓은 업적에서 조금 뒤져있다. 그러나 상대 전적에서는 나달이 이날 패배에도 불구하고 23승 12패로 크게 앞서 있다. 톱 레벨의 선수들 가운데 페더러와 맞대결에서 우위를 보인 것은 나달이 유일하다.
가장 완벽에 가까운 선수라는 페더러가 왜 나달에게는 눈에 띄게 약세를 보여왔을까? 매치업의 문제다. 페더러는 코트 전체에서 공격적이고, 서브와 포핸드, 발리까지 테니스의 모든 기술에 뛰어나고 멘털도 강하다. 반면 나달은 베이스라인 뒤에서 엄청난 위력의 양손 백핸드와 날카로운 각도의 톱스핀으로 상대를 공략하면서 빠른 발로 코트 전체를 커버한다. 그런데 나달의 포핸드는 바운드가 크다. 왼손잡이 나달의 크로스 코트 포핸드는 누구에게나 까다롭지만 특히 페더러처럼 한손 백핸드를 치는 선수는 더욱 대응하기 힘들다. 결국 나달의 강점과 페더러의 상대적인 약점이 맞붙는 셈이었다
이번 호주오픈 결승에서도 나달은 첫 세트를 내준 뒤 2세트에 페더러의 백핸드를 집중 공략하며 승부를 원점으로 돌렸다. 그러나 페더러는 마지막 세트 승부처에서 결정적인 백핸드 위너를 기록하는 등 이전 나달과 대결 때보다 백핸드가 훨씬 좋아진 모습을 보였다. 오히려 포핸드 때문에 발목을 잡힐 뻔했다. 이날 페더러는 무려 57개의 실책을 범했는데 그 가운데 포핸드 에러가 29개나 됐다. 결국 페더러는 위력적인 서브를 앞세워 힘겨운 승리를 따냈다.
페더러와 나달은 2005년부터 2010년까지 6년 연속 연말 랭킹 세계 1,2위 자리를 함께 지켰다. '페더러-나달 시대'로 불린 이 기간 동안 열린 24차례의 메이저대회에서 이들 둘이 아닌 다른 선수가 우승한 것은 2005년 호주오픈(마라트 사핀), 2008년 호주오픈(조코비치), 2009년 US오픈(후안 마르틴 델 포트로)의 세 차례 뿐이다.
이후 30대 중반에 접어든 페더러의 '나이'와 수없이 많은 부상에 시달려온 나달의 '몸' 때문에 이들의 시대는 저무는 듯했다. 페더러는 지난 2012년 윔블던 우승 이후, 나달은 2014년 프랑스오픈 우승 이후 그랜드슬램대회 트로피를 들어올리지 못했다. 이번 호주오픈에 나달은 9위, 페더러는 17위라는 그들 자신은 물론 팬들에게도 낯선 랭킹으로 나섰다.
그러나 이번 호주오픈을 통해 페더러와 나달 모두 예전이 기량을 되찾은 모습을 보여줬다. 페더러는 무릎 부상으로 6개월을 쉬었지만 전혀 공백을 느낄 수 없었다. 나달과 결승에서는 4세트가 끝난 뒤 오른쪽 허벅지 근육 통증 때문에 메디컬 타임아웃을 쓰며 마지막 세트에서 1-3으로 끌려가다 뒤집는 저력을 발휘했다.
나달은 그리고르 디미트로프(불가리아)와 준결승에서 풀세트 접전을 벌인 직후 쉴 틈도 없이 나선 결승에서 또 5세트 경기를 치렀지만 체력에 별 문제가 없었다.
호주오픈에서 보여준 모습이라면 페더러는 메이저 단식 20회 우승에, 나달은 지금도 독보적인 프랑스오픈 우승 횟수를 10회로 늘리는데 충분히 도전해 볼 수 있다. 조코비치-머리의 신 라이벌 체제가 굳어지는 듯하던 남자 테니스가 페더러와 나달이라는 레전드들의 부활로 더욱 흥미롭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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