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식의 농구생각] 양동근과 김주성, 그리고 리더십
입력: 2017.01.09 05:00 / 수정: 2017.01.09 05:00

[더팩트 | 최정식 선임기자] 래리 버드와 매직 존슨, 마이클 조던의 공통점은? 물론 농구를 잘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리더십이다.

버드는 항상 팀을 생각하는 선수였다. 인디애나주립대학 3학년 때 NBA의 명문 보스턴 셀틱스의 지명을 받았지만 팀을 NCAA 우승으로 이끌기 위해 프로 입단을 보류했다. 보스턴에서 그는 자신만이 아닌 동료들을 훌륭한 선수로 만들었다. 로버트 패리시, 케빈 맥헤일, 데니스 존슨, 대니 에인지 등 함께 뛰는 선수들의 수준을 끌어올려 팀 전체를 이끌고 나가는 리더였다.

존슨이 어릴 때부터 모두 그를 좋아했다. 다급한 상황에서도 여유만만한 태도로 팀을 안정시켰고 미소가 필요할 때는 미소로, 환호가 필요할 때는 환호로 동료들의 사기를 북돋았다. 그는 관중석의 팬들 뿐 아니라 코트 위의 선수들도 즐겁게 만드는 농구를 했다.

최고의 슈터이면서 최고의 수비수였던 조던은 클러치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모습으로 팀을 이끌었다. 시카고 불스 선수들은 뛰어난 선수로서가 아니라 탁월한 지휘관으로서의 조던에게 정신적으로 의지했다.

8일 울산에서 벌어진 모비스와 동부의 2016~2017 프로농구 경기. 모비스는 4쿼터에 외국인선수 찰스 로드가 5반칙 퇴장당하며 패배의 위기에 몰렸다. 그러나 그대로 무너지지 않고 분투한 끝에 73-66으로 승리를 거뒀다.

모비스는 개막전에서 부상을 당해 빠져있던 베테랑 가드 양동근이 돌아오면서 전날 선두 삼성을 물리치고 3연패를 끊었다. 그리고 동부마저 꺾으며 연승을 달렸다. 양동근은 이날 10점 1어시스트를 기록했다. 아직까지 경기를 뛸 체력이 되지 않아 예전의 경기력을 보여주지는 못한다. 그러나 모비스가 그를 기다린 것은 기록지에 나타나는 숫자가 아니라 무형의 '기운' 때문이었다.

모비스 유재학 감독은 경기 후 "감독으로서 정말 편했다"고 말했다. "양동근이 있으면 팀이 안정되는 면이 있다. 상대가 강하게 압박하면 당황하는데 어제 오늘은 그러지 않았다. 선수들이 안정감을 찾은 것 같다"는 것이다.

유 감독은 지금 상무에 있는 가드 이대성에게 "정말 좋은 포인트가드가 되려면 팀의 리더가 돼야 한다"며 양동근을 보고 배우라고 충고한 적이 있다. 동료들이 진정으로 따르는 리더가 되려면 코트 밖에서도 리더가 돼야 한다면서. 양동근은 외박 때나 오프시즌 후배들을 집으로 불러 식사를 함께 하고 잠까지 재운다. 선수 뿐 아니라 수당에서 일부를 떼어 운전기사와 식당 아줌마들까지 챙긴다.

반면 승리를 눈앞에 뒀다 패한 동부의 김영만 감독은 "로드가 나가고 난 뒤 미스매치 공격에서도 기회를 살리지 못하고 역전을 허용했다. 팀의 중심을 잡을 리더가 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 전체적으로 우왕좌왕했다"고 말했다.

김 감독이 말한 리더는 김주성이다. 김주성은 컨디션이 나빠 울산 원정에 함께 오지 못했다. 김 감독은 "김주성이 없으면 가드들이 지시를 하고 어떻게 하겠다는 전략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상대 수비의 압박에 밀려나왔다. 적극적으로 해야 하는데 동료들에게 서로 맡기는 모습이 보였다"며 아쉬워 했다.

이날 뿐 아니라 동부는 김주성이 있을 때와 없을 때 경기력에 차이를 보이는 경우가 많다. 김주성은 리그 최고의 빅맨이었지만 지금은 운동능력이 예전보다 많이 떨어졌다. 체력이 뒷받침되지 않다보니 어이없는 실책을 할 때도 있다. 그러나 존재감은 여전하다. 경험을 바탕으로 한 움직임과 판단 능력으로 팀을 이끈다. 템포를 조절하고 슛이나 패스가 필요하면 적극적으로 그 역할을 맡는다. 그런 경기 운영 능력으로 출장시간이 많지 않아도 팀에 안정감을 불어넣는 것이다. 지난 시즌 대체 외국인선수로 합류한 웬델 맥키네스가 몇 경기 치른 뒤 "슛도 던지고 패스도 하고 지시도 해주는 김주성을 존경하고 좋아한다"고 말한 것도 이 때문이다.

김주성은 이전에 비해 3점슛을 자주 던진다. 성공률이 높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 골밑에서의 위력이 떨어진데 따른 개인적인 생존 전략으로 볼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다. 김주성은 "3점슛을 던져야 하는 상황에서는 던지지만 내 본연의 역할은 아니다. 외국인선수들의 활동 공간과 범위를 넓히기 위해 던지는 것"이라고 했다. 팀을 강하게 만들기 위한 리더의 선택인 것이다.

농구는 대개 원래 잘하던 선수가 잘한다. 그리고 대개는 잘하는 선수가 많은 팀이 이긴다. 그러나 오랫 동안 강팀으로 남아있기 위해서는 리더가 필요하다. 강팀에게도 위기는 찾아오게 마련이고 그럴 때 리더의 진가가 드러난다. 하기야 어디 농구만 그럴까.
malishi@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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