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혁의 코트비전] '13일의 금요일'도 못막은 전자랜드의 업셋
입력: 2015.03.15 11:00 / 수정: 2015.03.15 21:25
4강을 향한 치열한 접전! 전자랜드가 모든 이들의 예상을 뒤엎고 3위 SK를 3연승으로 누르며 4강에 진출했다. / KBL 제공
4강을 향한 치열한 접전! 전자랜드가 모든 이들의 예상을 뒤엎고 3위 SK를 3연승으로 누르며 4강에 진출했다. / KBL 제공

연장까지 간 최고의 명승부

'13일의 금요일'은 서양에서 대표적인 불행의 상징으로 꼽힌다. 이유는 골고다 언덕에서 예수가 죽은 날이라고 알려져 왔기 때문이다. 곧 예수 그리스도가 처형당한 날이 13일의 금요일이었고 12사도와 예수를 합하면 13이 된다는 것이다.

이런 13일의 금요일에 인천 전자랜드와 서울 SK가 적으로 만났다. 2014~2015 KCC 프로농구의 챔피언을 가리는 첫번째 관문인 6강 플레이오프에서 두 팀은 저마다의 불안감을 안고 경기에 나섰다. SK는 여기서 지면 마지막이라는 절박함이 있었다. 전자랜드 역시 2승을 거뒀지만 배수의 진을 친 SK에게 질 수도 있다는 불안함이 있었다. 순간의 분위기가 경기 승패를 좌우하는 단기전의 성격상 SK가 이긴다면 그 상승세가 이어질 수 있었다.

이런 서로 다른 불안감 속에 열린 경기의 승자는 전자랜드였다. 전자랜드는 SK를 연장까지 가는 접전 끝에 91-88로 꺾으며 3연승으로 4강 PO 진출에 성공했다.

역대 프로농구에서 6위 팀이 전승으로 1회전을 통과한 것은 전자랜드가 처음이다. 또한 4강에 오른 역대 최저 승률(25승29패ㆍ승률 0.463) 팀으로 이름을 남겼다. '13일의 금요일'의 불운도 전자랜드의 업셋을 막지는 못한 셈이다.

두 팀의 경기 전 많은 전문가들은 SK의 4강 진출을 예상했다. 정규리그 3위 SK와 6위 전자랜드의 대결이었고, 선수 구성과 모기업의 농구단에 대한 지원 규모 등을 고려하면 SK의 손을 들어주는 게 당연했다. 전자랜드가 잘하면 1승 정도는 건진다는 전망도 있었지만 어디까지나 립서비스에 불과했다.

6위 전자랜드가 3위 SK를 꺾는 이변을 연출한데는 대략 3가지 이유가 꼽을 수 있다. 농구단에 대한 모기업의 지원이 풍부한 SK와 달리 전자랜드는 상대적으로 그 규모가 적다. 창단 첫해 4강 이후 바닥을 치는 성적에 한때 모기업이 농구단 운영 포기 의사를 밝혀 KBL(한국농구연맹)의 지원으로 겨우 팀 해체를 막은 적도 있었다. 이렇기 때문에 선수들은 어떻게든 좋은 성적을 내야 농구단이 유지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비시즌에 고액의 연봉을 줘야 하는 대형 FA(자유계약선수)를 영입하는 것은 '그림의 떡'이었다.

이런 가운데서 전자랜드 선수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절박함과 끈끈함 등 강한 정신력으로 경기에 나서는 것뿐이었다. 물론 SK 선수들이 대충 하자는 마음으로 경기에 나섰다는 것은 아니다. 특히 마지막 경기가 된 3차전에서는 높은 집중력을 보이며 초반부터 전자랜드를 압박하기도 했다. 하지만 너무 늦은 감이 있었고, 홈에서 열린 두 경기에서 기선 제압을 하지 못한 것이 컸다. 움직임에서도 3번의 경기를 보면 루즈볼을 잡기 위해 몸을 날리고 5명 전원이 리바운드에 가담하는 등 경기에 대한 집중력에서는 전자랜드가 SK에 앞섰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집중력 있는 플레이의 중심에 있던 것은 바로 외국인 주장 리카르도 포웰이다. 그는 3번의 경기 모두에서 승리의 일등 공신이자 영웅이었다. 1차전 때는 자신의 득점은 물론이고, 팀 동료들을 살리는 어시스트에서 발군의 기량을 뽐냈고, 2차전에서는 사실상 패색이 짙은 경기 막판까지 포기하지 않고 플레이를 펼쳐 결국 결승 득점까지 올렸다. 연장까지 가는 접전 속에 치러진 3차전 역시 추격의 불씨를 붙이는 3점슛을 거푸 성공했고 쐐기골까지 터트리는 등 만점 활약을 펼쳤다. 3경기 동안 평균 21점을 올렸으니 최고의 활약을 펼쳤다고 해도 무방하다.

포주장의 포효! 전자랜드의 6강 플레이오프는 포웰로 시작해 포웰로 끝났다 / KBL 제공
포주장의 포효! 전자랜드의 6강 플레이오프는 포웰로 시작해 포웰로 끝났다 / KBL 제공

사실 포웰은 전자랜드 입장에서 '양날의 검'과도 같았다. 마음먹은 대로 플레이가 전개되면 그만한 선수가 없지만 원하는 대로 되지 않으면 멋대로 날뛰는 들짐승과도 같았기 때문이다. 1차전에서 20점 이상 치고 나가다 3쿼터 막판 한자릿수 점수까지 추격당한 것이 좋은 예다. 그러나 유도훈 감독의 컨트롤과 4쿼터 들어 자신이 스스로 흥분을 가라앉히는 모습으로 위기를 극복했다.

리카르도 포웰 경기 기록

1차전 24분 38초 출장 18점 9리바운드 2어시스트
2차전 17분 38초 출장 18점 4리바운드 3어시스트
3차전 24분 57초 출장 27점 9리바운드 9어시스트

마지막 변수는 SK 주포 애런 헤인즈의 부상이었다. 헤인즈는 SK에서 포웰과 같은 구실을 했다. 필요할 때 득점을 해 공격의 물꼬를 터주고 다른 동료들의 플레이를 살려주는 것이 헤인즈의 몫이었는데 그가 빠지면서 SK의 팀 플레이는 혼란을 맞았다. 그동안 SK는 그에게 수비가 집중되면 박상오와 김민수 등 국내 빅맨들이 쉽게 골밑 득점을 올렸으나 전자랜드 전에서는 그런 모습을 기대하기 힘들었다.

1차전에서 헤인즈가 부상을 당하면서 SK가 팀의 틀에 변화를 줘야 했기 때문이다. SK는 정규리그에서 김선형-헤인즈 라인업을 중심으로 경기를 운영했지만 헤인즈의 부상으로 본의 아니게 주희정-코트니 심스 체제로 변화를 줬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익숙하지 않은 포메이션으로 플레이오프라는 큰 경기를 치러야 하는 SK 선수들의 부담감은 상당했다.

대조적으로 전자랜드는 SK의 높이에 대항하기 위해 테렌스 레더를 간간이 투입했지만 승부처에서 포웰을 투입하는 큰 틀을 깨지 않으며 익숙함 속에 전술적인 변화를 줬다.

헤인즈가 빠졌을 때 팀의 구심점이 되야 하는 김선형의 기복도 뼈아팠다. 김선형은 KBL에서 몇 안 되는 수준급의 가드다. 하지만 정규리그와 달리 플레이오프 같은 큰 경기에서 득점의 기복이 심하고 안정적으로 팀을 이끄는 면에서는 여전히 의문부호가 남아 있다.

그러나 승패를 떠나서 두 팀은 13일 멋진 경기를 펼쳤다. 이긴 팀이든 진 팀이든 박수 받기에 충분한 경기였다 .선수들의 몸을 사리지 않는 플레이에 모처럼 프로농구의 재미를 만끽했다는 이도 있었다. 지난 주 지상파가 중계를 외면한 것을 후회하게 할 정도로 최고의 플레이였다.

약팀이 강팀을 꺾는 이른바 '업셋'을 이룬 전자랜드에게 축하의 인사를 전하며 결과를 떠나 명승부를 펼쳐준 멋진 상대 SK에게도 박수를 보낸다.

한편, 전자랜드는 19일부터 원주 동부와 4강 플레이오프(5전3선승제)를 치른다.

6강 플레이오프 경기 결과

1차전 3월 9일(월) 서울 SK 72-87 인천 전자랜드 잠실학생체육관
2차전 3월 11일(수) 서울 SK 75-76 인천 전자랜드 잠실학생체육관
3차전 3월 13일(금) 인천 전자랜드 91-88 서울 SK 인천삼산월드체육관

[더팩트ㅣ박상혁 기자 jumper@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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