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인터뷰] '우슈 여신' 서희주 "아킬레스건 파열 이겨낸 값진 동메달"
입력: 2015.03.14 10:00 / 수정: 2015.03.13 23:08

얼짱 검객! 서희주가 더팩트 사옥 옥상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남윤호 기자
'얼짱 검객!' 서희주가 '더팩트' 사옥 옥상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남윤호 기자

서희주 "선수 생명 위기서 우슈만 생각"

생글생글한 미소, 가식 없는 말투를 보면 딱 20대 초반의 아리따운 소녀다. 대화를 나눠볼수록 누구보다 치열하게 우슈와 사랑하고 있는 전사다. 수많은 위기 속에서 우슈에 대한 의지 하나로 오롯이 모든 것을 이겨낸 뛰어난 검객이다. 미모 뒤에 숨겨진 악바리 근성에 그가 어떻게 뛰어난 선수가 됐는지 고개가 끄덕여진다. 한국의 첫 아시안게임 우슈 여성 메달리스트 서희주(21·광주광역시우슈협회)의 이야기다.

서희주가 인터뷰를 위해 가산동 <더팩트> 사옥을 찾았다. "오랜만의 인터뷰"라며 수줍게 말문을 연 서희주는 자신이 걸어온 외길 '우슈'에 대해 담담하게 이야기 보따리를 풀었다. 아킬레스건이 끊어져 의사로부터 "다시 우슈를 하긴 어렵다"는 말을 듣었던 서희주는 "오직 우슈"만을 생각했고 지난해 아시안게임에서 역사를 만들었다. 한 편의 드라마 같은 인터뷰를 마친 서희주는 사진 촬영에 돌입하자 "사진 잘 나와요? 포토샵은 해 주나요?"라며 보통의 20대 초반 소녀로 돌아갔다.

아리따운 20대 초반 소녀! 서희주가 수줍게 카메라를 보고 미소 짓고 있다.
'아리따운 20대 초반 소녀!' 서희주가 수줍게 카메라를 보고 미소 짓고 있다.

◆ '우슈는 내 운명'

- 아주 어린 나이에 우슈를 시작한 것으로 알고 있다.

아버지가 우슈 관장이어서 체육관을 따라다니다가 자연스럽게 시작했다. 동생도 우슈 선수다. 나는 7살 때부터 우슈를 한 것 같다.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본격적으로 대회도 나가고 그랬다. 16년째 우슈를 하고 있다. 우슈가 다양한 발차기도 있고 화려한 기술이 많아 매력적이었다. 재미 있어 보였다. 어린 시절 나는 힘이 없어 보이는 아이였다. 그래서 운동을 시작하게 됐는데 갑자기 체격이 커졌다.

- 우슈에는 상대와 맞붙는 산타와 연기로 순위를 결정짓는 투로가 있다.

애초에 고민 없이 투로를 선택했다. 자연스럽게 바로 투로를 했다. 아버지도 산타를 시킬 생각은 없었다. 상대와 싸우는 산타가 무서운 것도 있었다. (가장 자신 있는 세부 종목은 무엇인가?) 검술이 가장 자신 있다. 여자 선수치고 몸에 힘이 많이 있다. 그래서 묵직한 느낌이다. 항상 남자 선수들과 운동을 하고 남자 지도자들에게 배우다 보니 그렇게 됐다. 다른 선수와 비교해 장점인 부분이다.

- 말 그대로 '우슈 가족'이다. 큰 도움이 됐나?

그렇다. 서로 봐주고 대화를 나눈다. 아버지가 아주 엄하신 편이다. 그래서 울기도 많이 울었지만 정말 열심히 했다. 아버지도 선수 생활을 했다. 십자인대를 다쳐서 꿈을 접었다. 아시안게임이 꿈이었는데 내가 그 부분에 어느 정도 부응을 한 것 같다. 동생은 계속 청소년 대표하면서 국제대회에서 금메달을 따기도 했다. 전국체전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뒀다. (다음 아시안게임에서 동생을 볼 수 있는가?) 지금처럼 열심히 한다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 우슈의 매력은 무엇인가?

여러 가지 종목이 있어 볼거리가 많다. 화려하고 배우는 재미도 있다. 초등학교 때부터 친구들이 날 부를 때 우슈라고 부를 정도였다. 거의 우슈가 나 자신이라고 본다. 당연한 것이 돼 버렸다.

- 우슈 선수를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과 기뻤던 순간은 언제인가?

지난 2012년 아킬레스건이 끊어져 병원에 누워있을 때가 가장 힘들었다. 선발전을 준비하다가 대회 2주 전에 다쳤다. 병원을 가니 운동을 다시 못한다고 의사가 그랬다. 아킬레스건이 한 번 끊어지면 또 언제 다시 파열될지 모른다. 우슈가 뛰는 동작들이 많다 보니깐 위험하다고 말했다. 병상에 누워 있으니 이상하게 아시안게임 출전하고 있는 상상이 됐다. 괜히 흥분됐다. 아킬레스건이 딱 끊어지고 병원에 간 날 펑펑 울었다. 1년 동안 아예 우슈를 할 수 없었다. 입원은 2주 정도 하고 깁스를 오래 하고 있었다. 서울에 올라와서 계속 재활센터에 다녔다. 의사 선생님이 안 된다고 했지만 나는 무조건 할 생각이었다. (왜 그렇게까지 했나?) 어렸을 때부터 했는데 이대로 그만두는 것이 정말 아쉬웠다. 어렸을 때부터 우슈만 배워왔기 때문에 다른 것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가장 기뻤던 순간은 당연히 아시안게임이다.

- 아킬레스건이 끊어지고 트라우마는 없었나?

정말 많이 의식했다. 1년 동안 조금이라도 높게 점프하면 다시 끊어질 것만 같았다. 꿈에서 자꾸 끊어지고 그랬다. 지금은 많이 극복했다. 신기한 것은 다치고 나서 기량이 더 좋아졌다. 동료 선수들이 '다치고 나서 더 잘한다'고 말을 했다. 그만큼 내가 더 열심히 했나 보다. 절실한 마음이 커졌던 것 같다.

우슈는 내 운명! 서희주가 우슈에 대한 자신의 애정을 말하고 있다.
'우슈는 내 운명!' 서희주가 우슈에 대한 자신의 애정을 말하고 있다.

◆ '아시안게임 첫 우슈 여성 메달리스트'

- 우리나라 아시안게임 첫 우슈 여성 메달리스트다. 당시 상황을 설명해 달라.

좋은 예감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얼떨떨한 느낌이었다. 점수가 딱 나왔을 때도 '멍'하게 있었다. 나가서 인터뷰를 하니 그때 실감이 나더라. 감격스러워서 눈물이 났다. (펑펑 우는 사진이 화제가 됐다) 우는 사진이 멋있게 나오긴 했더라.(웃음)

- 점수가 좋게 나올 것이라 예상했나?

일단 실수가 아예 없었다. 어느 정도 기대를 하고 있었다. 대회 전에는 항상 금메달을 목표로 운동을 하기는 하지만 아시안게임이 큰 대회에서 처음 받은 메달이었다. 2013년도에 아쉽게 메달을 놓쳤다. 정말 괴롭고 후회가 많았다. 다시는 이런 경기를 하진 않겠다. 기회는 한 번 뿐이라는 다짐을 했다.

- 국내에서 대회가 열린 것도 도움이 많이 됐나?

응원해준 분들도 많아 큰 도움이 됐다. 경기할 때는 아무것도 안 들렸다. 코치님이 말하는 소리만 들렸다. 긴장을 진짜 많이 했다. 가장 자신 있는 검술에서 몸이 굳어서 제 기량을 펼치지 못했다. 아쉬웠다. 그런데 창에서는 몸이 풀려 정말 만족할만한 연기를 했다.

- 우슈에서 여성이 딴 아시안게임 첫 메달이다. 의미가 깊다.

한국 여자 우슈 선수들의 환경이 좋지가 않은데 내가 조금이나마 알린 것 같아 기쁘다. 함께 아시안게임에 나갔던 언니들도 다 은퇴를 했다. 이제 25, 26살이다. 20대 초반이 우슈의 전성기라 할 수 있다. 대부분 20대 중후반에 은퇴를 한다.

- 아시안게임 한국의 첫 금메달도 우슈에서 나왔다. 이하성과 어떤 대화를 나눴나?

(이)하성이랑은 어렸을 때부터 대회에서 항상 마주쳤다. 그런데 친하진 않았다. 지난해 아시안게임을 같이 준비하면서 친해졌다. 성격이 비슷하다. 친해지면 말수도 많아지는데 그전까지는 조용한 편이다. 하성이가 금메달 따고 '너 정말 연예인 다 됐다'고 농담을 주고받았다. 정말 부러웠다. 그리고 고마웠다. 덕분에 우슈가 검색어 1위도 했고 덩달아 나도 관심을 받았다.

우슈는 서희주다! 서희주는 우슈의 미래에 대해 진지하게 걱정하며 환경이 좋아지길 바랐다.
'우슈는 서희주다!' 서희주는 우슈의 미래에 대해 진지하게 걱정하며 환경이 좋아지길 바랐다.

◆ 서희주가 밝히는 자신과 우슈의 미래

- 은퇴를 고민하고 있다고 들었다.

오는 11월에 인도네시아 세계선수권이 있다. 지금까진 그게 마지막 대회라고 생각하고 있다. 열심히 훈련하고 있다. 올해 가장 큰 목표는 세계선수권에서 메달을 따는 것이다. 경쟁 선수들에 비해 내 장점은 힘이다. 그 부분을 잘 살리겠다.

- 은퇴 이후에 대해 생각을 해 봤나?

방송에서 선생님이 하고 싶다고 했는데 아직 확실히 결정을 하진 못했다. 아직도 고민하고 있다. 우슈 지도자든 교사든 후배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직업을 하고 싶다.

- 우슈 선수로서 선수 생활이 짧고 대회가 많이 없는 부분이 안타깝다.

세계선수권, 아시아대회, 세계대회, 아시안게임. 1년에 국제대회 하나씩 있다. 그것만 보고 1년 내내 운동을 한다. 거기서 실수를 하면 허탈하다. 1년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는 거다. 그리고 여자 선수들은 실업팀이 없어서 경제적으로 많이 힘들다. 성인이 되면 그만두는 이유가 그게 가장 크다. 학비를 벌어야 하는데 그게 어렵다. 국가 대표를 해도 지원이 있지만 경제적으로 크게 나아지진 않는다. 남자는 실업팀이 여러 개 있지만 여자는 없다. 여러 차례 여자 실업팀이 만들어진다는 얘기는 있지만 취소됐다. 전국체전에서 우슈 여자는 없다. 선수가 많이 없어 안 들어간다. 그러다 보니 더 줄어든다. 악순환이다. 여자 선수들은 국제대회 하나만 보고 한다. 우슈 환경이 좋아지길 바란다. 실업팀이 만들어지면 선수 생활을 좀 더 길게 할 수 있다.

-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앞으로 우슈에 대해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다. 열심히 훈련하고 있으니 응원해 주길 바란다. 앞으로도 이런 자리가 생긴다면 우슈를 알리고 싶다.

[더팩트ㅣ이현용 기자 sporgon@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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