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포커스] 3.1절 한일전 출격! 김지연 '돌주먹'이 운다
입력: 2015.02.27 10:01 / 수정: 2015.02.27 10:02

한 여성 파이터가 승리했지만 표정이 매우 좋지 않다. 또 다른 여성 파이터는 졌지만 환한 미소를 짓고 있다. 두 선수의 표정이 다른 이유는 바로 '실력 차' 때문이다. 링 위에 오르기 전 화장을 고치고 출전한 선수는 승리를 거뒀지만 정신이 없다. 이겨 본 경험도 져 본 경험도 매우 적기에 얼떨떨할 뿐이다. 반면에 경기 막판까지 투혼을 불사른 선수는 패배를 직감했지만 만족스럽게 주먹을 불끈 쥔다. 고된 훈련의 순간들을 떠올리며 자신과 싸움에서 승리한 것을 너무나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자, 과연 당신은 어떤 선수에게 박수를 보낼 것인가.

외모파 vs 실력파! 미녀 파이터의 등장은 불모지와 같았던 한국 여자 격투기 시장에 신(新)바람을 불어넣었다. 하지만 미녀 파이터들은 실력보다 예쁜 외모로 인기를 모은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 김동휘 기자
외모파 vs 실력파! '미녀 파이터'의 등장은 '불모지'와 같았던 한국 여자 격투기 시장에 '신(新)바람'을 불어넣었다. 하지만 '미녀 파이터'들은 실력보다 '예쁜 외모'로 인기를 모은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 김동휘 기자

◆ 한국 격투계 '신(新)바람', 외모지상주의!

최근 한국 격투기 시장에 '신(新)바람'이 불고 있다. 그동안 남성들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격투기 세계에 여성 파이터들이 등장한 것이다. 그런데 국내 분위기가 좀 이상하다. '정글'로 비유되는 격투기 무대의 분위기와 사뭇 다르다. 강한 주먹보다 '예쁜 얼굴'을 갖춘 여성 파이터가 더 많이 얼굴을 비치고 있다. 일명 '미녀 파이터'들이 뜨거운 관심 속에 링 위에 올라 스타 대접을 받고 있다. '홍보용 선수'라는 비난의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나온다.

"경기를 준비하며 차에 내려 여행가방 안을 봤는데, 하이힐과 여러 종류의 화장품이 있었다. 운동화가 보이지 않아 물어 보니 아무렇지도 않게 빌려 쓰면 된다고 했다. 거기까진 약과다. 경기 당일 화장을 하는 모습에 정말 혀를 내둘렀다."

취재 중에 한 격투기 전문가로부터 들은 이야기다. 한 여성 파이터의 이해하기 힘든 경기 준비 과정에 그는 크게 화를 냈다. '격투기'는 말 그대로 싸워 이기는 스포츠다. 싸우러 가는 선수가 상대의 얼굴이 아닌 자신의 얼굴을 정조준 했으니 말 다했다. 한국 격투계 '신(新)바람', 외모지상주의의 단면이다.

하지만 한 번 달아오른 '미녀 파이터'에 대한 관심은 쉽게 사그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네티즌은 격투기 무대뿐 아니라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선수를 두고 '홍보용 파이터'라고 비아냥거리면서도 TV 채널을 쉽게 돌리진 않는다. '미녀 파이터'는 어느덧 대중들이 원하는 '콘텐츠'로 자리 잡았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도 묵묵히 제 길을 걷고 있는 여성 파이터들의 존재는 '오아시스'로 비친다. '빛나는 외모'에 밀려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졌지만 음지에서 눈물을 곱씹으며 훈련에 매진하는 선수들이 있다. 범아시아복싱협회 슈퍼 페더급과 대한이종격투기총협회 57kg급 챔피언을 지냈고, 다음 달엔 일본 격투기 단체 '글레디에이터' 페더급 타이틀 매치를 치르는 김지연(25·팀 몹)이 그 대표적인 주인공이다. 격투기 마니아들이 인정한 김지연은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어떤 상황에서도 '격투기'라는 한우물만 파고 있다.

돌주먹 여전사 김지연. 10년째 격투기 무대에서 활동하고 있는 김지연은 미녀 파이터의 등장에 반가운 마음을 표현했다. / 이준석 기자
'돌주먹 여전사' 김지연. 10년째 격투기 무대에서 활동하고 있는 김지연은 '미녀 파이터'의 등장에 반가운 마음을 표현했다. / 이준석 기자

◆ 그래도 '미녀 파이터'를 미워할 수 없는 이유

매서운 한파가 한창이던 2015년 2월 10일. <더팩트>는 서울 강남구 학동로에 있는 격투기 체육관 '팀 몹(TeaM Mob)에서 구슬땀을 흘리고 있는 김지연을 만났다. 인터뷰 시작과 함께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미녀 파이터'가 높은 인기를 누리는 것에 대해서 솔직히 어떻게 생각하는가?"

"미워도 미워할 수 없다!" 김지연은 '우문현답'을 내놓았다. 최근 연이은 '미모 파이터'의 등장으로 여자 격투기가 대중의 많은 관심을 받는 것 자체가 반갑단다. 그는 여성 파이터들이 아예 노출되지 않는 것보다 어떤 방식이든 사람들에게 알려져야 자신에게도 기회가 찾아올 것이라고 믿고 있다. 악플(악성 댓글)보다 무서운 것이 '무(無)플'이라고 했다. 김지연은 미국 프로레슬링(WWE)의 미녀 스타들을 예로 들며 "외모도 나쁜 흥행 수단이 아니다"고 확실히 선을 그었다.

김지연의 말이 맞다. '미녀 파이터'의 출현에 한국 여자 격투기는 '불모지'에서 '블루오션'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남자 선수들의 경기처럼 '화끈한 한방'은 쉽게 찾아볼 수 없지만, 곱상한 외모를 가진 여자 선수들이 타격과 그라운드 기술을 펼치는 장면에 팬들은 환호하고 있다. 격투기 대회를 주관하는 쪽에서 얼굴이 예쁜 파이터들을 링에 올려 '이슈'를 만드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대중의 관심을 얻어야 발전을 모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직까지 한국에는 '여자 격투기'가 생소하기에 '미녀 파이터'는 필수 불가결한 존재일지도 모른다.

실력파 김지연. 김지연은 여자를 상징하는 아이섀도 대신 진한 피멍자국을 자랑스러워 하며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 이준석 기자
'실력파' 김지연. 김지연은 여자를 상징하는 '아이섀도' 대신 진한 '피멍자국'을 자랑스러워 하며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 이준석 기자

◆ '아이섀도'보다 진한 '피멍자국'

하지만 이런 분위기(미녀 파이터가 '대세'가 되는)가 계속 이어져선 곤란하다. 김지연 역시 정작 오랜 시간 동안 묵묵히 훈련하고 있는 여자 파이터가 경기에 나서지 못하는 현실이 빨리 개선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미녀 파이터들의 등장으로 많은 사람이 여자 격투기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여자 파이터도 파이터다. 파이터에게 제일 필요한 건 역시 '실력'이다. 물론 실력이 뛰어난데 외모까지 특별하면 금상첨화겠지만 말이다"라며 사람 좋은 웃음을 터뜨렸다.

격투가들은 경기 도중 새겨진 진한 피멍자국을 '영광의 상처'라고 말한다. 혹독히 훈련해 기회를 잡고 상대와 치열하게 싸워 얻은 '훈장'이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여자들이 아름답게 꾸며진 '아이섀도'를 자랑한다면, 파이터들은 '피멍자국'을 가리키며 뿌듯한 표정을 짓는다. 여성 파이터들에게는 '아이섀도'보다 '피멍자국'이 더 의미 깊고 진하다는 이야기다. 10년 넘게 격투기 선수로 활약하고 있는 김지연도 20대 여자로서 한창 멋을 부리기도 모자랄 시간에 아이섀도 대신 피멍자국을 얼굴에 새겼다.

남자 격투기 선수이자 '팀 몹'을 운영하고 있는 권배용(35)이 보는 김지연은 말 그대로 '독종'이다. 5년 동안 김지연을 봐 온 권배용은 "김지연은 '연습벌레'다. 큰 장점이자 단점이 욕심이 많다는 것이다. 오로지 운동만 생각하고 연습 또 연습에만 매진한다"며 "본인은 잘 모르겠지만, 처음 봤을 때보다 많이 성장했다. 정말 뿌듯하다"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실제로 김지연은 부상에도 연습을 멈추지 않았다. 취재진과 만난 당시에도 어깨 부상이 있었으나 "별것 아니다. 운동하면 나아진다"며 밝게 웃으며 샌드백을 두들겼다.

일본은 없다! 김지연은 다음 달 1일, 3.1절에 일본 격투기 단체 글레디에이터 플라이급 타이틀 매치를 치른다. 의미 있는 날 일본에서 펼치는 일본 선수와 대결에서 반드시 승리하겠다며 당찬 포부를  밝혔다. / 이준석 기자
일본은 없다! 김지연은 다음 달 1일, 3.1절에 일본 격투기 단체 '글레디에이터' 플라이급 타이틀 매치를 치른다. 의미 있는 날 일본에서 펼치는 일본 선수와 대결에서 반드시 승리하겠다며 당찬 포부를 밝혔다. / 이준석 기자

◆ 3.1절 빅매치! '일본은 없다'

'실력파 파이터' 김지연은 곧 큰 경기를 치른다. 바다 건너 일본에서 링 위에 오른다. 일본 격투기 단체 '글레디에이터'가 김지연의 실력을 알아보고 플라이급(58kg) 타이틀 매치를 마련했다. 글레디에이터 전적이 없는 그가 곧바로 타이틀 매치를 치른다는 것 자체가 '실력파'임을 증명한다. 상대는 전 일본 유도 선수권 대회 3위 성적에 빛나는 미야우치 유키. 프로레슬링 무대에서 명성을 떨친 그는 그라운드 기술과 타격 모두 수준급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국내에서는 TV 중계는커녕 언제 누구랑 싸우는지도 잘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무관심'은 익숙해진 지 오래다. 3.1절을 맞아 일본 선수와 싸우게 됐기에 동기부여가 잘 된다며 오히려 어금니를 꽉 깨무는 김지연이다. "3.1절, 그것도 일본에서 열리는 일본 선수와 타이틀 매치다. 한국인 파이터로서 많은 책임감을 느낀다. 반드시 승리하고 돌아오겠다. 많은 응원 부탁드린다." 김지연은 그렇게 당당하게 '일본은 없다'를 외쳤다.

선수 경력이 길지 않은 '미녀 파이터'들의 경기는 국내 대회 포스터 메인카드로 활용되고 관련기사가 넘쳐난다. 하지만 그들보다 더 실력이 뛰어난 김지연은 무관심 속에서 일본으로 떠나 타이틀이 걸린 한일전을 가진다. 10년 이상 외길 격투기 인생을 살아온 '베테랑 여성 파이터' 김지연이 후회 없는 한일전을 펼치고 돌아와 다시 웃는 얼굴로 뒷이야기를 나누길 기대한다.

태권도 공인 3단인 기자가 '돌주먹 파이터' 김지연과 직접 스파링을 펼쳤다. / 이준석 기자

◆ 기자체험! '유단자' 기자 vs '돌주먹' 김지연(영상)

격투기 팬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단어 가운데 하나가 '근자감'이다. '근거 없는 자신감'의 줄임말이다. 소위 힘 좀 쓴다는 남자들은 "여성 파이터들과 대결하면 이길 수 있다"는 이야기를 곧잘 한다. 솔직히 '태권도 3단'인 기자 역시 마찬가지였다. '근자감'이 '근거 있는 자신감'이라고 힘주어 말하며 기자정신으로 김지연에게 '대결'을 신청했다. 그런데 이제 생각이 바뀌었다. 영상 속의 2시간 같았던 '지옥의 2분'을 경험하고 난 뒤 '근자감'의 원뜻에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더팩트 | 이성노 기자 sungro51@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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