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의 용병술! 유도훈 감독이 인천 전자랜드의 기적 같은 6강 플레이오프 진출을 지휘했다. / KBL 제공 |
정식 감독 부임 이래 5시즌 연속 PO 견인
'기적'이라는 평가가 과하지 않다. 시즌 전 어두웠던 평가를 보란 듯이 뒤엎었다. 유도훈(47) 감독이 이끄는 인천 전자랜드가 6강 플레이오프 진출을 확정했다. 지난 24일 서울 SK와 홈 경기에서 혈전 끝에 79-77로 이겼다. 남은 4경기를 모두 지더라도 관계없이 6강 플레이오프에 오른다.
애초 농구 전문가들은 전자랜드의 전망이 밝지 않다고 입을 모았다. 객관적인 전력이 떨어진다는 이유였다. 실제로 정영삼(30)과 정병국(30), 이현호(34) 등 팀의 주축들의 나이가 많고 김선형(26·서울 SK)이나 문태영(36·울산 모비스)처럼 폭발적인 득점력을 갖춘 선수가 전혀없기 때문이다.
모기업의 인색한 투자도 문제였다. FA(자유계약) 시장에서 선수를 영입하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할 일이었다. 결국 뚜렷한 전력 보강에 실패했다. 농구단 해체설까지 나돌았다. 모기업 고위층이 눈에 띄는 성적을 내지 못하는 농구단에 별다른 관심이 없다는 소문이 고개를 들었다.
시즌 전부터 불안했다. 외국인 선수 문제도 그 가운데 하나였다. 우여곡절 끝에 찰스 로드(29)를 부산 kt로 보내고 테렌스 레더(33)를 영입했다.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지만, 시즌 개막을 코앞에 두고 외국인 선수를 교체한다는 것은 그만큼 위험 부담이 크다. 손발을 맞춰볼 시간이 필요하고 조직력이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괴롭다 괴로워! 유도훈 감독은 시즌 초반 자진사퇴를 염두에 둘 정도로 마음고생이 심했다. / KBL 제공 |
실제로 전자랜드는 시즌 초반 급격히 흔들렸다. 갈피를 잡지 못했다. 지난해 10월 23일 고양 오리온스전부터 11월 12일 서울 SK전까지 모두 졌다. 무려 9연패. 순위는 10위로 곤두박질쳤다. 뚜렷한 반전 요소가 없었다. 특유의 신바람 농구와 조직력이 자취를 감췄다.
팀을 진두지휘하는 선장 유도훈 감독도 마음고생이 심했다. 자진사퇴까지 염두에 둘 정도로 속병을 앓았다. 하지만 유 감독은 주변의 만류로 마음을 다잡고 팀을 추슬렀다. 정신 무장이라는 효과를 노려 삭발까지 했다. 선수들에게 당근과 채찍을 동시에 사용하며 반등을 노렸다. 결과는 적중했다.
지난해 11월 14일 부산 kt전부터 11월 29일 울산 모비스전까지 단 한번도 지지 않았다. 6연승했다. 마치 마법을 부린 것처럼 달라졌다. 조금씩이지만 리카르도 포웰(31) 의존도를 줄였으며 특유의 조직력과 투지로 똘똘 뭉쳤다. 말 그대로 "한번 해보자"는 식으로 응집력을 발휘했다. 전자랜드의 끈끈한 조직력에 모비스와 오리온스도 나가떨어졌다.
자연스레 순위도 올라갔다. 6강 플레이오프 진출의 가시권인 5위에서 7위를 오갔다. 시즌 중반 부산 kt의 거센 반격에 주춤했지만, 재빨리 전열을 가다듬어 추격을 뿌리쳤다. 1월 29일 kt전부터 지난 14일 서울 삼성전까지 6경기에서 5승 1패를 기록하며 사실상 6강 플레이오프 진출을 확정했다.
유도훈 감독의 공로를 빼놓을 수 없다. 평소 유 감독은 코트 안에선 선수들을 호되게 꾸짖는 지도자로 유명하다. 선수들의 정신을 다잡기 위해 호통도 치고 눈으로 '레이저빔'도 쏜다. 하지만 코트 밖에선 마음씨 넓은 형님처럼 선수들에게 다가간다. '호랑이' 전창진(51) kt 감독과 비슷한 맥락이다.
전술적인 부분도 가치를 인정할 만하다. 변화무쌍한 용병술이 빛났다. 상대의 특성에 따라 선발 명단도 수시로 바꾸며 예측을 뒤엎었다. 상대적으로 높이에 약점이 있지만, 그가 입버릇처럼 말하는 "한 발 더 뛰면 된다"는 간단하지만 명쾌한 논리로 강팀들의 발목을 잡았다. 지난 7일 안양 KGC인삼공사전에선 통산 200승에 성공했다.
사랑의 윙크! 유도훈 감독은 지난 7일 안양 KGC인삼공사전에서 통산 200승에 성공했다. / KBL 제공 |
한때 '레더신(神)'으로 불릴 정도로 KBL(한국농구연맹)을 헤집었지만, 날개를 접은 레더의 활용도를 높였다는 것도 고무적이다. 전자랜드의 최대 약점으로 꼽히는 높이에 힘을 더한 원동력이었다. 레더는 포웰에게 부족한 높이를 갖췄지만, 출전 시간이 길지 않아 제몫을 하지 못한 게 사실이다.
하지만 유도훈 감독은 레더의 활용폭을 늘려 팀의 높이를 강화했다. 우지원 SBS스포츠 해설위원은 "전자랜드가 시즌 막판 레더를 많이 기용하며 부족한 높이를 보완해 만만치 않은 팀으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유 감독은 그동안 다재다능한 능력을 갖춘 포웰 의존도를 낮추지 못했지만, 레더의 가치를 재발견하고 있다.
출전 시간에 대한 갈증을 훌훌 털어 낸 레더는 최근 6경기에서 평균 16.8점을 올리며 유 감독의 기대에 부응했다. 출전 시간이 짧아 쑥 나왔던 레더의 입도 쏙 들어갔다. 외국인 선수들과 이른바 '밀당(밀고 당기기)'한 것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그들과 관계도 더욱 친밀해졌다.
지난 2009~2010시즌이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대행' 꼬리표를 달고 전자랜드를 맡은 유 감독은 정식 지도자로 취임한 이래 단 한번도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하지 않았다. 2위-6위-3위-4위. 지난 시즌까지 유 감독이 올린 전자랜드의 정규 리그 성적이다. 올 시즌 역시 최소 6위를 확보했다
다른 팀들처럼 거액을 쏟아부어 전력 보강에 성공하는 것도 아니지만, 그만의 독특한 마법이 전자랜드의 5시즌 연속 플레이오프 진출이라는 쾌거를 이뤘다.
[더팩트 | 이준석 기자 nicedaysky@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