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구 천재' 안희욱의 인생 제2막. 안희욱이 10일 관악구 신사로에 위치한 스킬 트레인 사무실에서 '더팩트' 취재진의 카메라를 향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 관악구 신사로 = 박상혁 기자 |
365일 농구에 빠져 살았던 부산의 한 소년은 2002년 우연하게 맞닿은 기회를 잡게 된다. 프로농구 선수 문경은(서울 SK 감독), 이상민(서울 삼성 감독)과 함께한 한 스포츠브랜드의 길거리 농구 대회다. 손이 보이지 않을 만큼 빠르면서 현란한 그의 손놀림에 당대 최고의 스타들도 고개를 숙였다. 맥없이 패한 문경은은 "얘 뭐하는 애야?"라며 주위의 청소년들을 웃기기도 했다. 이 경기 동영상이 인터넷상에 퍼지면서 그는 농구 팬들 사이에서 '길거리 농구 천재'로 불리며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일명 '힙후퍼 1세대' 안희욱(32) 씨가 그 주인공이다.
이후 10여 년이 흘렀다. 농구 팬들 사이에서 서서히 잊혀져가는 동안 그는 어느덧 30대의 사회인으로 성장했다. 길거리 농구 코트에서 더 이상 그의 드리블을 볼 수 없지만 또 다른 곳에서 농구라는 매개체로 자신의 인생을 개척하고 있다. 농구 선수들에게 드리블 기술을 전수하는 '국내 1호 스킬 트레이너'로 변신해 지도자의 길을 걷고 있다. 그는 어떠한 삶을 살아왔고 또 앞으로 어떤 인생을 살고 싶을까. <더팩트>가 안희욱이 꿈꾸는 인생 제2막을 듣기 위해 지난 10일 서울 관악구 신사로에 있는 스킬 트레인 사무실을 찾았다.
스킬 트레인 내부 전경과 계획표. 스킬 트레인 사무실은 그가 직접 디자인하고 인테리어까지 해 훈련용 플로어를 비롯해 아기자기하게 꾸며져 있었다. 작은 사진은 그가 사업 대상으로 꼽은 목표 고객 등 구체적인 사업 플랜들. |
◆ 농구 선수들의 선생님? '국내 1호 스킬 트레이너'
NBA(미국프로농구) 선수들은 높은 몸값에 맞게 자신들이 개인 트레이너를 고용해 비시즌 동안 기술 연마를 하는 것이 일상화된 지 오래다. 팀의 코치와 트레이너들이 하는 구단 훈련도 물론 있지만 여러 명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세세한 부분까지 잡아주는 훈련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코비 브라이언트는 비시즌에 전담 체력 트레이너를 고용해 긴 시즌을 대비한 체력을 키우고 기타 나머지 선수들도 드리블과 슈팅 등 부족한 개인 기술을 개인 코치를 고용해 보완하며 시즌을 준비한다.
하지만 KBL(한국농구연맹)은 아직 이런 시도 자체가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NBA 구단보다 훈련 시스템이 좋다기보다는 이런 개인 트레이닝 개념 자체가 없고, 체력을 제외하면 개인적으로 봐주는 스킬 트레이너도 없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국내에 스킬 트레이너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도입한 게 바로 안희욱이다. 그는 지난해부터 'SKILL TRAIN'이라는 회사를 설립해 국내 농구 선수들의 드리블 기술을 향상하는 일을 하고 있다.
흔히 프로 농구 선수들이 은퇴 후 차리는 '농구 교실'과 착각할 수 있지만 엄연히 다르다. 스킬 트레이닝은 기술 전수와 전문화된 훈련 시스템을 적용할 뿐 아니라 수강생 개개인의 1대1로 관리가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맨 땅에 헤딩'으로 시작했지만 이제 실력 향상을 목표로 하는 중·고교 선수들은 너도 나도 가리지 않고 그를 찾는다.
- 스킬 트레이너란 직업을 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친한 친구가 운동 선수였다. 그 친구는 학창 시절 내내 운동을 했는데, 프로에 들어가지 못해 홀로 눈물을 삼켰다. 그 친구를 보며 선수들의 잠재성을 끌어내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생각했다. 특히 농구의 경우 다른 스포츠와 달리 개인기를 살릴 수 있을 만한 시스템적 요건이 충분치 않다. 간혹 절망과 실의에 빠진 선수들을 보곤 했는데 그들에게 힘이 되어주고 싶었다. 그래서 스킬 트레이너를 구상하게 됐다.
- 농구 시장을 뚫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어떻게 개척하려 하는가
상호명이 'SKILL TRAIN'이다. 이는 기술을 익혀가는 여정이란 뜻을 담아내고 있는데 서두르지 않고 차근차근 사업을 확장시켜 갈 예정이다. 스킬 트레이닝 이외에 'SKILL TRAIN' 상호를 알릴 수 있는 의류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앱은 이미 시범용으로 수강생들이 사용하고 있는데 일반인들도 사용할 수 있도록 보강할 예정이다.
또 SNS를 활용하고 있다. 수강생들의 훈련 동영상을 SNS에서 공유하다 보니 파급 효과도 큰 것 같다. 콘텐츠는 영상을 집중적으로 개발하고 싶다. 지금은 내가 직접 스마트폰을 사용해 촬영하고 있지만, 영상제작팀을 꾸려 전문적으로 콘텐츠를 생산할 예정이다.
- 1인 사업이 쉽지 않을 텐데 어려움은 없나?
2013년 '크리에이티브코리아'에는 친구와 함께 출연했다. 우승을 예측하고 있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고 일을 하면서 맞지 않는 부분이 없잖아 있었다. 그래서 서로 다른 길을 걷게 됐고 지금에 이르렀다. 하지만 근래 들어 전문성을 키울 필요가 생겨서 농구 선수 출신 스킬 트레이너의 영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성균관대에서 선수 생활을 했던 친구와 동업을 하게 됐다. 아무래도 농구 선수로 활동했기 때문에 내가 경험하지 못했던 부분을 채워줄 수 있을 것 같다.
2인 체제와 함께 구상하고 있는 것은 '전국 투어'다. 특정 지역을 찾아 지역민들과 농구 경기를 펼치며 소통하려 한다. 2대2 경기가 진행된다면 3대3 경기로 발전할 수 있으며 5대5 경기도 무리 없이 소화해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훗날 '슈퍼스타K'같은 농구 오디션 프로그램을 만들어 일반인들에게 스킬 트레이너와 농구 문화를 안내해주고 싶다.
- 자신의 실력을 뛰어넘는 수강생이 있는가?
많다. 하지만 수강생 가운데 한 명을 선택하라면 용산고 2학년 이기준(18)을 꼽고 싶다. 이 친구의 드리블은 내 실력 못지 않다. 프로 선수들과 비교해도 월등한 것 같다. 정신력도 대단하다. 이 친구의 경우 드리블 400번을 3개월 만에 2분 30초대로 끌어왔다. 그래서 내년 즈음 NBA에 이 친구의 영상을 제출한 뒤 미국 에이전시와 접촉을 해보려 한다. 실력이 나날이 늘고 있는 이기준 학생은 가족 같은 존재다. 하지만 이 친구뿐만 아니라 나와 함께하는 모든 수강생 하나하나가 내겐 소중한 사람들이다. 나는 이들을 훌륭한 농구 선수로 만들어 낼 책임이 있는 사람이고, 꼭 그렇게 하고 싶다. 훗날 내 제자들이 NBA 무대에서 뛴다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할 것 같다.
"저도 힘들 때 많았죠" 안희욱은 10일 '더팩트'와 인터뷰에서 사업을 펼치기까지 쉽지만은 않았다고 고백했다. |
◆ 청년 사업가 안희욱, "포기란 없다"
30대의 패기 때문일까 안희욱은 철저하고 거침없다. 사업에 대한 목표와 구상 그리고 계획을 물으면 머뭇거릴 만도 한데, 막힘이 없다. 오히려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에 대한 믿음과 확신이 있다는 듯 눈빛은 빛났다. 그러나 그는 지난날 '농구 천재'라 불리며 많은 이들에게 손가락질을 받았어야만 했다. 또 주위의 질투 때문에 힘든 나날도 있었다.
힘들 때마다 그는 마음을 차분히 가지라는 어머니의 말씀을 기억했다. 또 늘 책을 가까이하며 부족한 지식들을 쌓아 나갔다. 특히 YG 엔터테인먼트 양현석과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와 관련된 서적을 읽으며 경영 지식을 쌓는다. 밤낮없이 바쁜 그의 이야기를 들어 보니 엉덩이 붙일 새가 없다. 이미 응급실도 두 차례 다녀왔지만, 좋아하는 일을 하기 때문에 행복하다 말한다.
- 농구 선수가 되지 못한 후회는 없는가.
초등학교 3학년 때 우연히 TV를 보다 미국 농구 선수 마이클 조던을 봤다. 경기장에서 그가 활약하는 장면 하나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이후 고모님이 문방구에서 농구공을 하나 사주셨다. 처음 만져본 농구공, 그 순간을 잊을 수 없다. 누가 가르쳐 준 것이 아니라 동네 형들과 함께 놀면서 배우게 된 농구는 내 삶의 한 부분으로 자리잡았다. 아파트 뒤편에 간이 농구대를 설치해 매일같이 공을 가지고 놀았다. 학교 오갈 때, 밥 먹을 때 심지어 수능 볼 때도 난 농구공을 손에 놓지 않았다. 그만큼 농구에 대한 애착이 강했고, 이런 애착 때문에 나이키 길거리 농구에도 참여하게 됐다.
농구를 좋아할 뿐이었는데,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왔다. 하지만 선수를 하고 싶어 농구를 한 것이 아니라 농구가 좋을 뿐이었다. 또 스카우트 제의를 받을 당시 고등학교 2학년이었는데, 농구를 하기엔 키도 작고 늦은 나이라 생각했다. 더불어 나이키 길거리 농구를 하면서 나만의 방식으로 즐기고 있었기 때문에 선수를 꼭 해야겠다는 필요성은 느끼지 못했다.
- '오포세대 2030' 청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없는가?
포기하기엔 아직 우린 젊다. 포기에 앞서 세상 속에서 자신들이 '특별한 존재'라는 것을 인식했으면 좋겠다. 마음속에 꿈을 간직하고 있는 이는 모두가 특별하다고 생각한다. 나도 여기까지 오는 길이 쉽지 만은 않았다. 제대 후 3~4년 동안은 농구공을 만져본 적도 없이 현실에 매여 살았다. 심지어 부모님이 취업 걱정을 하실까 봐 기업에 입사하기도 했다. 하지만 행복하진 않았다. 진실로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해야 행복한 것 같다. 내가 지금 그런 경험을 했기 때문에 현실적인 제약에 갇혀 꿈을 잊고 살아가기보다는 어려움에 한번 부딪혀봐야 후회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 같다. 내가 청년들의 대표가 되어 이야기하긴 쑥스럽지만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고 후회를 덜 하는 쪽을 선택해야하지 않나 싶다.
- 안희욱에게 농구란 무엇인가
'농구는 내 자신이다'이런 말들은 많이 해 왔기 때문에 상투적인 말은 하기 싫다. 농구를 한 마디로 설명하자면 '내 얼굴'이다. 예전에 나는 '농구에 미친 사람이다'는 소리를 셀 수도 없이 들었다. 매일 농구공을 갖고 살았으니 그럴 만도 하다. 스스로 판단해도 심각한 수준이었다. 제대 후 몇 년간 농구를 하지 않고 살다 이 일을 계기로 다시 공을 잡았다. 수 년 동안 하지 않고 살았는데 내 몸이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그래서 난 농구가 날 대변해 줄 수 있는 얼굴이고 분신이라 생각한다.
[더팩트ㅣ신사로 = 박준영 인턴기자 iamsoleil@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