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철의 스포츠 뒤집기]한국 축구와 킹스컵, 좋은 인연이었는데…
입력: 2015.02.06 09:36 / 수정: 2015.02.06 09:36
심상민이 1일 태국에서 열린 우즈베키스탄과 경기에서 샴시티노프에게 폭행을 당했다./ 경기 영상 캡처
심상민이 1일 태국에서 열린 우즈베키스탄과 경기에서 샴시티노프에게 폭행을 당했다./ 경기 영상 캡처


태국이 주최하는 국제 친선 축구 대회인 킹스컵은 중·장년 축구 팬들에게는 특별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1960~70년대 한국 축구가 동남아시아 무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을 때 킹스컵은 말레이시아가 여는 메르데카배대회와 함께 단골로 출전하는 대회였고 팬들은 대회 결과에 촉각을 곤두세우곤 했다.

1970년 메르데카배대회(8월)와 킹스컵(11월)에 이어 방콕 아시아경기대회(12월)에서 우승해 ‘3관왕’에 올랐을 때는 한국 축구의 장밋빛 전망이 펼쳐지기도 했다. 1968년 창설 대회에 한국은 출전하지 않았고 1969년 제 2회 대회에 처음 출전해 결승전에서 정강지의 결승골로 인도네시아를 1-0으로 누르고 우승했다. 그 경기에 출전한 인도네시아 선수 가운데 ‘물*지’라는 선수가 있어 TV 중계를 보던 축구 팬들이 포복절도했다.

한국은 이후 1975년까지 8차례 대회에서 7차례나 우승하며 킹스컵의 왕자로 군림했다. 이 기간 모든 대회에 청룡이라는 별칭이 붙은 대표 1진이 출전했다. 이후 대표 2진 또는 포항 아톰스, 럭키금성 황소, 유공 코끼리 등 프로 단일팀이 출전하면서 축구 팬들의 관심에서 멀어져 갔다. 1986년 멕시코 대회부터 월드컵에 단골로 나서게 된 것도 킹스컵이 축구 팬들의 관심사가 되지 못한 이유 가운데 하나였다.

북한은 1980년대 이후 이 대회에 출전했고 1986년과 1987년 그리고 2002년 대회에서 우승했다. 같은 동남아시아 지역 대회인 메르데카배대회에는 얼굴을 비치지 않는 북한이 이 대회에 부지런히 나서는 것은 태국이 북한의 이 지역 외교 활동 거점이기 때문이다. 직전 대회인 2013년 대회에서는 4위를 차지했다.

신세대 팬들 귀에는 익숙하지 않은 대회가 갑자기 관심의 대상이 된 까닭은 불미스러운 일 때문이다. 글쓴이는 지난 1일 태국 나콘라차시마에서 열린 한국과 우즈베키스탄의 경기를 편집 화면으로 봤다. 후반 32분 미샤리도프가 헤딩을 하려던 강상우의 얼굴을 발로 차는 위험한 플레이를 할 때 이미 가슴이 철렁했는데 불과 9분 뒤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장면이 눈앞에서 펼쳐졌다. 샴시티노프가 볼을 다투던 심상민의 얼굴을 주먹으로 세 차례나 쳤다. 무방비 상태의 심상민은 얼굴이 돌아갈 정도로 충격을 받았다.

7일 우즈베키스탄 22세 이하 팀과 온두라스 20세 이하 팀, 한국 22세 이하 팀과 태국의 경기로 올해 대회는 끝나지만 킹스컵은 40년이 넘는 긴 역사에 큰 오점을 남기게 됐다.

한국으로서는 사실 가벼운 마음으로 이 대회에 나섰다. 다음 달 27일 인도네시아에서 막을 올리는 아시아축구연맹(AFC) 23세 이하 선수권대회 예선을 준비하는 과정이었기 때문이다. 한국은 인도네시아 동티모르 부르나이와 H조에 편성됐다. 각조 1위 10개국과 2위 가운데 성적이 좋은 5개국 그리고 개최국 카타르 등 16개 나라가 내년 1월 카타르에서 열리는 AFC 23세 이하 선수권대회에서 겨뤄 상위 3개국이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티켓을 손에 넣는다.

우즈베키스탄축구연맹이 진심 어린 사과를 하고 엄중한 후속 조치를 다짐했지만 사건이 일어난 지 일주일 정도가 지났는데도 얼떨떨하다. 경기장 폭력은 절대 있어서는 안 될 일이라는 걸 다시금 되새기는 계기가 됐다.

경기장 폭력과 관련한 예전 사례 하나를 살펴본다.

한국은 1983년 멕시코에서 열린 제 4회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오늘날의 국제축구연맹 20세 이하 남자 월드컵)에서 드라마 같은 승부를 펼치며 ‘4강 신화’를 썼다. ‘붉은 악마’의 시발점이었다. 그러나 이 쾌거는 경기장 폭력과 연결된 북한의 도움이 없었으면 이뤄질 수 없었다.

한국은 1982년 7월 싱가포르에서 벌어진 제 23회 아시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 동부 지역 예선 겸 제 4회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 예선 준결승에서 북한에 3-5로 진 뒤 3위 결정전에서 태국을 4-1로 누르고 3위를 했다. 그런데 이 3위가 이듬해 ‘붉은 악마’ 돌풍의 불씨 구실을 했다. 북한은 그해 11월 뉴델리에서 열린 제 9회 아시아경기대회 축구 경기에서 판정에 불만을 품고 선수단 임원이 주심을 폭행해 국제축구연맹으로부터 2년 동안 모든 국제 대회에 나서지 못하는 중징계를 받았다.

이에 따라 한국은 그해 12월에 태국에서 열린 아시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 본선에 북한을 대신해 출전해 서부 지역 대표인 아랍에미리트연합을 4-0, 이라크를 2-1로 물리치고 동부 지역 대표인 중국과 1-1로 비겨 아시아선수권자가 되면서 본선 출전권을 차지했다.

북한으로서는 어른들이 저지른, 어이없는 잘못이 청소년들에게 악영향을 미친 것이다.

더팩트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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