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격투기 발전을 위해선 로드 FC와 TOP FC의 소통이 필요하다. 사진은 정문홍(왼쪽) 로드 FC 대표와 전찬열 TOP FC 공동 대표. /로드 FC·TOP FC 제공 |
[더팩트ㅣ이준석 기자] 한국을 대표하는 두 격투기 단체가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한국 격투기 시장은 갈수록 침체의 늪에 빠지고 있는데, 힘을 합쳐도 모자랄 양대산맥 로드 FC와 TOP FC의 관계는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불신의 골만 깊어지는 양상이다.
두 단체의 주장은 같다. 서로를 존중하며 동반 발전을 모색하지 않고 자신의 단체가 더 우월하다고만 입을 모은다.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열악한 환경에서 조금이라도 많은 격투기 팬을 끌어모으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독자노선을 걷는다'라는 의견을 내놓는다. 하지만 이 말에 동의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 좁은 시각이다. 숲을 보지 못하고 나무만 바라본다. 동업자 정신으로 똘똘 뭉쳐도 모자랄 판에 소통할 의지가 전혀 안 보인다. 가뜩이나 좁은 한국 격투기 시장에서 최고 단체들의 '소통'이 없어 동반 발전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로드 FC와 TOP FC는 실제로 단 한번도 공식적인 만남을 가지지 않았다. 서로 모르는 사이라서가 아니다. 정문홍 로드 FC 대표와 전찬열-하동진 TOP FC 공동 대표는 격투기계에서 서로 아는 처지다. 전-하 공동 대표는 TOP FC의 모태라 할 수 있는 코리안탑팀을 이끌던 시절 정 대표와 만나 격투기 대회를 위해 머리를 맞대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 2013년 7월 TOP FC가 출범되면서 소통이 단절됐다.
로드 FC와 TOP FC가 만나는 날은 언제쯤 올까. /로드 FC·TOP FC 제공 |
소통이 되지 않는 이유는 간단하다. 서로의 길만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인지도가 높아진 로드FC는 '1위 굳히기 모드'에 돌입한 느낌이다. 국내 최고 수준 파이터들의 경기를 포함한 대회를 잇따라 개최하면서 격투기 팬들의 많은 호응을 얻었다. 그러나 무리한 홍보로 비판을 받기도 했다. 송가연, 박지혜 등 검증되지 않은 여자 선수들을 과도하게 홍보해 역효과를 낳았다.
TOP FC는 오는 2월 7일 부산 벡스코에서 5번째 대회를 개최한다. '팬과 선수가 함께 만드는 종합격투기(MMA) 대회'라는 타이틀을 걸었지만 관심을 끌기에 부족한 부분이 한둘이 아니다. 국내 강자들과 일본 선수들의 대결 밑그림을 그려 '식상하다'는 혹평의 도마 위에 놓였다. 홈페이지에는 '준비중'이라는 글만 덩그러니 있어 대회 정보조차 얻기가 매우 어렵다.
이렇듯 두 단체는 서로 '최고'라고 자부하지만 내실은 매우 부족하다. 하지만 '벤치 마킹'과 '협력'에 대한 의지가 없어 시간이 지나도 발전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잘못된 부분은 그저 묻어두고 잘된 부분만 내세우는 모양새가 불편하다. 서로가 따끔한 지적과 견제를 펼치며 발전할 수 있는 기회를 계속 놓치고 있다.
현재 한국 격투기 시장은 사실상 위기에 빠져 있다. '스턴건' 김동현(33)을 제외하면 세계 무대에서 이름을 날리고 있는 선수가 사실상 없다. '코리안좀비' 정찬성(27)은 사회복무요원 신분이라 전력에서 빠져 있다. 그만큼 저변이 좁고 활성화되지 않았다. 일본의 판크라스나 미국의 UFC를 따라가기엔 한참 멀었다. 냉정하게 말해 세계 격투기 시장에서 한국은 변방이나 다름없다. 하루라도 빨리 뭉쳐 머리를 맞대야 한다.
부산에서 MMA 체육관 조슈아짐을 운영하고 있는 이동기 MBC스포츠 플러스 해설위원은 "로드 FC와 TOP FC의 색깔이 완전히 다르다. 서로 힘을 합치려면 선의의 경쟁을 적극적으로 펼쳐 탄탄한 기반을 만들어야 한다"며 "지지하는 팬들의 성향 역시 다르다. 하나로 묶는 것보단 경쟁력으로 승화해야 한다. 서로 손해 보지 않는 가운데서 공동의 격투기 이벤트를 단발성으로 만들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일단 관계자들이 자주 만나 동반 발전을 꾀하는 게 좋을 듯하다"라고 말했다.
로드 FC 021은 2월 1일, TOP FC 5는 2월 7일에 열린다. 꾸준히 격투기 대회를 열고 있는 두 단체의 소통이 필요한 시점이다. / 로드 FC·TOP FC 제공 |
2000년대 초반 일본의 격투기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프라이드 FC와 K-1은 협력 체제로 동반 발전에 성공했다. 입식타격과 종합격투기로 룰 자체가 달랐지만, 적절한 소통과 연구로 이벤트 경기를 만들어내면서 팬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K-1의 선수가 프라이드 FC로 넘어가 경기에 참여하고, 프라이드 FC 선수가 K-1 링에 올라 입식타격으로 경기를 펼치기도 했다. 연말에는 '올스타전' 성격의 대회를 개최하면서 격투기 팬들의 뜨거운 반응을 이끌어냈다.
로드 FC와 TOP FC도 이런 '협력 시스템'을 벤치마킹 하고 적용하면 함께 발전할 수 있다. 물론 인원이 적고 대회 일정이 빡빡해 만남 자체가 쉽지는 않다. 그러나 좁디 좁은 한국 격투기 시장에서 자기 단체만 잘났다는 생각을 버리지 못하고 잘못된 길을 향해 나아가는 것은 '동반 추락'의 결과를 부추길 뿐이다. 로드 FC와 TOP FC, 뭉쳐야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