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럭비협회가 원종천 부회장(왼쪽)이 6일 삼성중공업 럭비단 해체 관련 기자회견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 서울역 = 이준석 기자 |
[더팩트ㅣ서울역 = 이준석 기자] 한국 럭비계가 똘똘 뭉쳤다. 한 목소리를 냈다. 최근 불거진 삼성중공업 럭비단의 해체설에 대해 사실이 아니길 바란다고 입을 모았다.
원종천 대한럭비협회 부회장 겸 회장 직무대행은 6일 오후 2시 서울시 용산구 동자동의 서울역 KTX 대회의실에서 열린 삼성중공업 해체설 관련 기자회견에서 "지난해 연말 믿고 싶지 않은 소문을 들었다. 삼성중공업이 해체된다는 것이었다. 사실이 아니기를 바란다"고 말문을 열었다. 원 부회장은 "삼성중공업은 하루이틀 된 팀이 아니다. 한국의 럭비에 크게 이바지했다. 훌륭한 팀이다. 이런 소문이 퍼지고 있어 섭섭하기도 하다"며 해체 의사를 철회하라고 촉구했다.
원 부회장은 간단한 인사말을 마친 뒤 호소문을 낭독했다. 그는 "럭비를 사랑하는 모든 분을 대신해서 호소문을 낭독하겠다. 삼성중공업 스포츠단의 럭비팀 해체 중단을 호소한다"면서 "어려운 여건에도 한국의 럭비 발전을 위해 노력한 삼성 럭비단에 감사드린다. 항간에 돌고 있는 소문이 사실이라면 그 결정이 가져올 파장이 엄청날 것이다. 해체 의사를 철회하길 부탁한다"고 말했다.
한국 럭비 관계자들이 기자회견에 임하고 있다. 정삼영 전 삼성중공업 감독·원종천 대한럭비협회 부회장·서울사대부고 조민기 군(왼쪽부터). / 서울역 = 이준석 기자 |
원 부회장은 또 "삼성중공업이 해체한다면 한국 럭비의 몰락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어린 선수의 꿈이자 목표인 실업팁 가운데 하나가 사라진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파문을 일으킬 것"이라며 "당장 2016 히우데자네이루 올림픽과 2020 동계 올림픽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고 촉구 의사를 철회하길 바란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정삼영 전 삼성중공업 감독은 "삼성이 해체한다면 후진을 양성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미래를 개척하는 일이다. 세계 초일류 기업인 삼성이 배출한 지도자들이 각 팀에서 지휘봉을 잡고 있다"며 "저변을 확대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길 부탁한다. 삼성 럭비단의 명운을 쥐고 계신 분들이 합리적으로 선택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럭비 유망주로 꼽히는 서울사대부고 조민기 군은 "언제나 목표로 해온 삼성 럭비단이 해체할지도 모른다는 소문을 들었다. 가슴이 철렁였다. 지금 이 순간에도 소문이 사실이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함께 운동해온 친구들이 불안해한다.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삼성중공업에 입단하는 것이 꿈이다. 만약 해체한다면 많은 유망주의 꿈이 사라질 것"이라며 "하나의 실업팀이 사라진다면 한국 럭비의 경쟁력은 그 어느 곳에도 찾을 수 없을 것 같다"고 해체 의사 철회를 촉구했다.
대한축구협회 고위 관계자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럭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야구와 골프, 럭비를 중요한 스포츠로 꼽았다. 삼성 계열사별로 럭비 경기를 했다. 1995년 창단과 동시에 대한럭비협회와 삼성컵 7인제 대회를 시작했다. 이 대회로 한국의 7인제 럭비 대회가 부흥했다"며 "삼성이 해체된다면 럭비계의 분위기가 급격히 떨어진다. 영원히 일어설 수 없을 것이다. 국제 경기도 쉽게 치를 수 없을 것이다. 정말 아쉽다"고 우려했다.
대한럭비협회가 기자회견을 23분 앞두고 배포한 삼성중공업 럭비단 홍보 자료. / 서울역 = 이준석 기자 |
대한럭비협회는 기자회견을 23분 앞두고 '대한민국 럭비의 중심, 삼성중공업 럭비단'이란 주제의 16쪽짜리 홍보 자료를 배포했다. 여기엔 삼성중공업 럭비단의 역사와 연표 등 여러 가지 자료가 담겨 있었다. 삼성중공업의 해체 철회가 옳다는 당위성을 주장하기 위해서 배포했다. 상황이 심각하다는 뜻이었다.
해체설이 퍼진 삼성중공업은 지난 1995년 창단됐다. 10년 연속 전국체전 우승에 성공하며 2005년까지 한국 럭비 최강팀으로 자리했다. 한국 럭비 전체에 끼치는 파급효과도 컸다. 삼성중공업의 많은 선수가 국가 대표로 선발돼 1998 방콕 아시안게임과 2002 부산 아시안게임에 한국의 금메달 획득을 이끌었다.
하지만 해체설이 불거지면서 한국 럭비의 뿌리가 흔들릴 수도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삼성중공업은 "확정된 것은 없다"고 주장했지만, 사실상 해체 절차를 밟고 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계약 만료를 앞둔 선수들과 재계약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
대한럭비협회 관계자는 "그들의 가슴이 타고 있다"고 말했다. 만약 해체된다면 한국 럭비계가 입을 타격은 상상할 수 없이 클 전망이다. 당장 2016 히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 선수단을 꾸리는 것도 힘겨울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