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철의 스포츠 뒤집기] 쿠바산 ‘갈색 폭격기’가 몰려온다고?
입력: 2014.12.19 10:05 / 수정: 2014.12.19 10:05

OK저축은행에서 활약하고 있는 쿠바 출신 로버트랜디 시몬./ 최용민 기자
OK저축은행에서 활약하고 있는 쿠바 출신 로버트랜디 시몬./ 최용민 기자




한국은 1968년 멕시코시티 올림픽 농구 조별 리그 B조 4차전에서 쿠바에 71-80으로 졌다. 이 경기에 앞서 개최국 멕시코에 62-75, 폴란드에 67-77, 소련에 58-89로 졌고 쿠바 전 이후 브라질에 59-91로 진 뒤 모로코를 76-54로 이겼고 불가리아에 60-64로 져 1승 6패로 조 7위에 그쳤다. 순위 결정전을 치러 한국은 16개 출전국 가운데 14위를 했고 쿠바는 11위에 올랐다. 신동파 김인건 이인표 유희형 등이 뛰던 시절이다.

1972년 뮌헨 올림픽 복싱 라이트미들급에서 임재근은 16강이 겨룬 3회전에서 쿠바의 롤란도 가비에게 2라운드 TKO로 져 탈락했다. 이 대회에서 한국은 재일동포 오승립이 유도에서 은메달 하나를 따는 데 그쳤지만 올림픽에 첫 출전한 북한은 이호준이 사격 50m 소총 복사에서 금메달, 복싱 48kg급에서 김우길이 은메달, 레슬링 자유형 52kg급에서 김광형이 동메달을 차지했다. 또 여자 배구 3위 결정전에서 한국을 세트스코어 3-0으로 누르고 동메달을 보태 금메달 우선 종합 순위 22위를 기록했다. 일본은 금메달 13개와 은메달 8개, 동메달 8개로 5위를 마크했다. 한국은 메달을 하나라도 딴 48개 나라 가운데 33위였다. 중화인민공화국이 올림픽 무대에 나서기 전의 일이기도 하고 요즘의 동아시아 스포츠 판도와는 매우 다른 양상이다.

다시 4년 뒤인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 생전 국가 대표 감독을 지낼 때 ‘불암산 호랑이’로 불렸던 장은경은 유도 63kg급(당시 최경량급) 결승에서 쿠바의 헥토르 로드리게스와 맞붙어 시종일관 우세한 경기 내용을 보였고 영국인 주심 조지 케르는 장은경의 승리를 선언했다. 그러나 부심과 협의한 뒤 판정을 뒤집었다. 우리나라 스포츠 팬이 ‘쿠바 스포츠’를 실질적으로 경험한 첫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신세대 스포츠 팬들에게는 야시엘 푸이그(로스앤젤레스 다저스) 등으로 ‘야구를 잘하는 나라’로 인식돼 있는 쿠바는 스포츠 강소국(强小國)이다. 1900년 제 2회 파리 대회부터 올림픽에 나선 쿠바는 1984년 로스앤젤레스 대회와 1988년 서울 대회에 외교 관계 때문에 출전하지 않았지만 1992년 바르셀로나 대회에서 12년의 공백이 무색하게 종합 순위 5위에 오르는 등 올림픽을 비롯한 국제 스포츠 무대에서 맹활약하고 있다.

쿠바는 신체 절단 위협 등 죽음을 무릅쓰고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여러 선수들에서 알 수 있듯이 야구를 잘하는 나라가 맞다. 한국에 2-3으로 져 준우승한 2008년 베이징 대회를 비롯해 1992년 바르셀로나 대회 이후 열린 다섯 차례 올림픽 야구 종목에서 3개의 금메달과 2개의 은메달을 차지했다. 2011년 파나마시티 대회까지 39차례 열린 세계야구선수권대회에서는 25번의 우승을 차지했는데 1984년 아바나(쿠바) 대회부터 2005년 로테르담(네덜란드) 대회까지 9회 연속 우승했다. 1982년 서울 대회(우승 한국)에 출전해 연속 우승 기록을 이어 갔다면 1976년 보고타(콜롬비아) 대회부터 13회 연속 우승을 차지할 수도 있었다. 서울 대회에는 1988년 올림픽처럼 한국과 외교 관계가 없기도 했지만 북한을 의식해 출전하지 않았다. 서울 대회 2년 전인 1980년 도쿄 대회에서는 한국이 준우승, 일본이 3위, 미국이 4위를 한 가운데 쿠바가 11전 전승으로 정상에 올랐다.

쿠바 스포츠라고 하면 떠오르는 또 하나의 종목이 복싱이다. 쿠바는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12개 체급 가운데 펠릭스 사본이 헤비급에서 우승하는 등 7개 체급에서 금메달을 거머쥐었다. 11개 체급으로 조정된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도 5개 체급에서 정상에 오르는 등 1972년 뮌헨 대회 이후 2008년 베이징 대회에서 ‘노 골드’에 그치기 전까지 대회마다 3명 이상의 올림픽 챔피언을 배출했다. 2012년 런던 대회에서는 다시 2명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를 낳았다. 놀라운 성적이다.

쿠바 출신 올림픽 복싱 챔피언 가운데 돋보이는 선수는 테오필로 스테벤슨이다. 1972년 뮌헨 대회부터 1980년 모스크바 대회까지 헤비급에서 3회 연속 우승을 차지했다. 반쪽으로 치러진 1984년 로스앤젤레스 대회에 출전했다면 올림픽 복싱 사상 전무후무한 4회 연속 우승의 기염을 토할 수 있었다. 이는 단순한 가정이 아니다. 스테벤슨은 1974년 아바나, 1978년 베오그라드(옛 유고슬라비아)에서 열린 세계복싱선수권대회에서 2회 연속 우승을 차지한 데 이어 1986년 리노(네바다주) 대회에서 슈퍼헤비급으로 체급을 올려 다시 한번 정상을 밟았다. 올림픽에서 3회 연속 우승을 이루며 치른 12경기 가운데 KO 또는 TKO 승은 무려 9경기였다. 그의 후계자인 펠릭스 사본도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부터 2000년 시드니 올림픽까지 3회 연속 우승했다.

쿠바 스포츠에서 여자 배구도 빼놓을 수 없다. 1992년 바르셀로나 대회부터 2000년 시드니 대회까지 올림픽 사상 처음으로 3회 연속 우승을 차지했다. 이 외에도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남자 높이뛰기 금메달리스트 하비에르 소토마요르 등 쿠바가 낳은 스포츠 스타는 수없다.

글쓴이는 박찬호 임선동 심재학 등 대학 정예 멤버가 출전한 1993년 버팔로(뉴욕주) 여름철 유니버시아드대회 야구 결승전에서 본 쿠바(2개 대학 연합팀)의 뛰어난 베이스러닝 실력에 감탄했던 일이 지금도 생생하다. 순발력과 탄력이 시쳇말로 ‘장난이 아니었다.’ 남자 프로 배구에서는 시몬(OK저축은행) 등 쿠바 선수들이 뛰어난 신체 조건을 바탕으로 이미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그 돌풍이 야구를 비롯한 여러 종목으로 퍼져 나갈 가능성이 매우 커졌다. 미국이 50년 넘게 단절됐던 쿠바와 외교 관계를 완전히 정상화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1959년 피델 카스트로와 체 게바라가 바티스타 정권을 무너뜨리고 쿠바의 실권을 장악한 뒤 1961년 미국과 외교 관계를 끊은 이후 한국과 쿠바는, 그렇잖아도 지구 반대편 먼 나라인데다 더 먼 나라가 됐다. 그러나 이제는 ‘먼 나라, 이웃 나라’가 될 발판이 마련됐다.

더팩트 편집위원

발로 뛰는 <더팩트>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카카오톡: '더팩트제보' 검색
▶이메일: jebo@tf.co.kr
▶뉴스 홈페이지: http://talk.tf.co.kr/bbs/report/write
- 네이버 메인 더팩트 구독하고 [특종보자▶]
- 그곳이 알고싶냐? [영상보기▶]
AD
인기기사
실시간 TOP10
정치
경제
사회
연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