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프리즘] '유령 파이터'와 싸웠다? 석상준 데뷔전 승리의 진실
입력: 2014.11.28 09:01 / 수정: 2014.12.29 17:00
석상준(왼쪽)이 지난 9일 서울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서 열린 로드 FC 영건스 018에서 마쓰오카 다카시와 프로 데뷔전을 치러 1라운드 1분 57초 만에 암바로 승리했다. 하지만 경기 후 상대 선수가 바꼈다는 억측이 나와 논란이 됐다. /로드 FC 제공
석상준(왼쪽)이 지난 9일 서울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서 열린 로드 FC 영건스 018에서 마쓰오카 다카시와 프로 데뷔전을 치러 1라운드 1분 57초 만에 암바로 승리했다. 하지만 경기 후 '상대 선수가 바꼈다'는 억측이 나와 논란이 됐다. /로드 FC 제공

[더팩트ㅣ임준형 기자] 3개월 동안 피땀을 흘렸다. 단 한번뿐인 프로 데뷔전을 위해 석상준이 흘린 땀의 값어치는 말로 형용할 수 없다. 그리고 그의 땀은 승리라는 값진 결실을 보았다. 하지만 영광은커녕 난무하는 억측 때문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안았다.

석상준은 지난 9일 서울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서 열린 로드 FC 019에 앞서 영건스 018에서 마쓰오카 다카시와 프로 데뷔전을 치렀다. 경기 초반 다카시의 기습적인 펀치 공격에 흔들리기도 했지만, 결국 1라운드 1분 57초 만에 암바로 서브미션 승리를 거뒀다.

하지만 이후 석연치 않은 억측에 시달렸다. 격투기 팬들 사이에서 석상준의 상대가 마쓰오카 다카시가 아닐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됐다. 파장은 사그라지지 않았고 급기야 한 매체에서 석상준의 상대는 마쓰오카 다카시가 아닌 체구가 작다는 이유, 그리고 격투기 선수의 전적을 확인할 수 있는 셔독닷컴(Sherdog.com)에 동명이인이 존재한다는 이유로 다른 인물일 것으로 판단했다. 여기에 복싱의 예를 들며 전적 사고팔기까지 언급했다. 에둘러 표현했지만 결국 석상준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라는 추측이다.

셔독의 선수 프로필은 100% 신뢰할 수 없는 상황이다. 유우성(첫째 줄의 왼쪽)과 이재선(첫째 줄의 오른쪽)은 맞붙은 적이 없지만, 셔독에는 두 사람의 대결이 표기되어 있다. 반면, 김훈(아래쪽의 왼쪽)은 정찬성(아래쪽의 오른쪽)과 같은 대회에 출전했지만 출전 자체가 누락됐다. / 셔독닷컴 캡처
셔독의 선수 프로필은 100% 신뢰할 수 없는 상황이다. 유우성(첫째 줄의 왼쪽)과 이재선(첫째 줄의 오른쪽)은 맞붙은 적이 없지만, 셔독에는 두 사람의 대결이 표기되어 있다. 반면, 김훈(아래쪽의 왼쪽)은 정찬성(아래쪽의 오른쪽)과 같은 대회에 출전했지만 출전 자체가 누락됐다. / 셔독닷컴 캡처

◆ 격투기 선수 전적 확인…셔독이 답은 아니다!

하지만 애초 접근 방법부터 잘못됐다. 셔독닷컴은 미국 온라인 엔터테인먼트 크레이브 온라인에서 운영하는 회사다. 미국 내 유력한 격투기 매체지만 아시아권 선수 전적 관리에 대해서는 신뢰도가 떨어진다. 종종 전적에 오기가 있으며, 아예 전적이 빠지는 경우도 있다.

한국 선수 유우성과 이재선의 경우 지금까지 맞붙은 적이 없지만 셔독의 프로필에는 2003년 12월 21일 KPW(한국 아마추어 MMA 단체)에서 경기를 펼쳤고 유우성의 판정승으로 돼 있다. 김훈은 아예 전적이 빠져있는 케이스다. 김훈은 2008년 5월 31일 코리아 FC 토너먼트 시리즈에서 설보경과 경기를 펼쳐 1라운드 암바 승리를 거뒀지만 셔독의 프로필에는 누락됐다. 중소 규모의 대회이기 때문에 전적이 누락됐다는 주장을 펼칠 수 있지만 같은 대회에 출전했던 정찬성은 해당 대회의 전적이 고스란히 표기돼 있다. 결국 셔독의 파이터 프로필은 100% 신뢰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셔독도 아시아권, 특히 한국 선수의 전적 오기에 대한 부분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 셔독의 편집장 조던 브린은 <더팩트>와 이메일 인터뷰에서 셔독의 파이터 등재와 전적 표기에 대해 아래와 같이 설명했다.

"셔독의 파이터 파인더는 수십 명의 조력자와 기자에 의해 유지된다. 세계적으로 일어나는 경기를 다 확인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일부 나라에서는 지역 체육위원회에서 직접 경기 결과를 보내주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나라, 특히 브라질의 경우 많은 지역에서 항상 대회가 있기 때문에 모든 경기를 관리하는 것은 어렵다. 현재도 세계의 여러 매니저들로부터 전적 수정에 대한 요청을 받는다. 한국 파이터는 이름의 유사성이 문제다. 예를 들면 김종만이나 김동현이 여러 명이기 때문에 정확한 전적 표기가 쉽지 않다. 김동현은 과거 2명이 스피릿MC에서 활동했는데 그걸 분류하느라 고생했던 기억이 있다. 일본 파이터는 한자 이름이 영어로 번역되는 과정에서 잘못 표기되는 경우가 많다. 또한 링네임만 쓰고 경기에 출전하는 경우가 있어 확인이 더욱 힘들다. 하이레벨의 선수가 아니면 찾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또한 셔독의 프로필에 등재된 마쓰오카 다카시와 석상준이 맞붙은 다카시는 얼굴 생김새부터 체격까지 다르다. 물론 전적도 다르다. 그렇다면 다른 선수를 데려왔을 경우를 생각하는 것보다 동명이인에 대한 가능성을 먼저 생각해야한다. 하지만 단순히 사진이 없고, 1전을 가진, 밴텀급으로 뛰고 있다는 이유로 다카시 다카시라는 선수가 석상준과 맞붙었다고 주장했다. 이 또한 억측으로, 로드 FC에서는 석상준의 상대에 대해 3전 2승 1패라고 소개했다. 전적부터 다르지만 추측으로 시작된 이야기가 다시 한번 사실이 된 순간이다.

그렇다면 석상준이 다른 선수와 대결한다면 얻는 이득은 무엇일까. 아무런 이득도 없다. 어차피 프로 데뷔전을 치르는 석상준이기 때문에 전적 관리를 할 필요도 없다. 3전의 상대보다 오히려 1전, 나아가 프로 데뷔전을 치르는 '애송이'와 붙는 것이 승률을 올릴 수 있는 더 좋은 기회다. 하지만 석상준은 데뷔전을 앞두고 상대가 2번이나 변경됐고, 대회 시작 3주를 앞두고 다카시와 대결이 확정됐다는 통보를 받았다.

석상준과 싸운 마쓰오카 다카시는 경기 후 자신의 SNS를 통해 석패에 대한 아쉬움과 응원해준 사람에 대한 고마움을 나타냈다. / 마쓰오카 다카시 페이스북 캡처
석상준과 싸운 마쓰오카 다카시는 경기 후 자신의 SNS를 통해 석패에 대한 아쉬움과 응원해준 사람에 대한 고마움을 나타냈다. / 마쓰오카 다카시 페이스북 캡처

◆ 실체 없는 유령 파이터? 日서 버젓이 활동하고 있는 파이터!

그렇다면 석상준과 싸운 마쓰오카 다카시는 누구일까. 그는 일본 격투기 무대에서 활동하고 있는 1990년생 선수다. 일본 CMA에서 팀 사무라이 소속으로 61.2kg급(밴텀급)과 66kg급(페더급)을 오가며 싸우는 선수다. 일본 중소 격투기 대회 앰비션에 밴텀급과 페더급으로 각 1번씩 출전해 2승을 거뒀고, 글래디에이터에서는 페더급으로 출전해 1패를 기록했다.

엄밀히 따지면 다카시는 격투기로만 생계를 이어가는 프로 파이터는 아니다. 생업은 따로 있다. 오전에는 회사에서 일하고, 저녁때 파이터로서 훈련에 매진한다. 하지만 현실과 이상이 다르므로 생업과 파이터라는 2가지 노선을 달릴 뿐, 그의 파이터로서 열정이나 자신감은 누구보다 충만하다. 다카시는 <더팩트>와 SNS 인터뷰를 통해 "회사생활을 하면서 주 4회 도장에서 훈련하고 있다"며 "일본 파이터의 95% 이상은 생업과 파이터를 겸업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격투 단체가 많은 일본이지만 파이터 생활만으로 생계를 이어가기 어려운 것은 한국과 마찬가지다.

또한 다카시는 이번 논란에 대해 "나는 아직 부족한 선수지만, 이번 로드 FC에서 많은 관중 앞에서 경기할 수 있었다. 비록 졌지만 좋은 경험이었다고 생각한다"며 "힘껏 노력한 결과이기 때문에 부끄러운 경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앞으로 더욱 훈련해 인정받는 선수가 되고 싶다"고 밝혔다. 한국 격투기 팬들을 향해 "앞으로 잘 부탁한다"는 당부의 말도 잊지 않았다.

사실 다카시와 최초 인터뷰 당시에는 "나는 이기기 위해 많은 훈련을 하고 경기에 나섰다. 결과가 나온 뒤에 터진 이런 논란은 실례"라며 "내가 그렇게 약해 보였나"는 답변을 받았다. 다카시에게 던진 질문은 많았지만, 돌아온 답변은 짧고 굵었다. 다카시 역시 피해자였다.

'석상준은 도대체 누구와 싸운 것이냐'에 대한 답은 이미 나왔다. 그는 3전 2승 1패의 마쓰오카 다카시와 정정당당히 대결을 펼쳤고, 또 승리했다. 오해와 억측, 그리고 불신이 부른 안타까운 일면이다. 34살이라는 늦깎이 나이에 격투기를 시작하고자 생업도 멈춘 채 운동에 매진했던 석상준의 프로 데뷔 첫 승은 영광을 잃고 색이 바랬다.

nimitoa@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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