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철의 스포츠 뒤집기-궁금스 30] 중국과 일본의 전국체전은?
입력: 2014.10.31 11:00 / 수정: 2014.10.31 11:04

전국체전의 제 95회 제주 대회가 31일 현재 중반의 열기를 더하고 있다./95회 전국체육대회 홈페이지 캡처
전국체전의 제 95회 제주 대회가 31일 현재 중반의 열기를 더하고 있다./95회 전국체육대회 홈페이지 캡처

'저건 골이 맞을까?', '그 선수의 유니폼엔 어떤 비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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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인 제 100회 대회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전국체전의 제 95회 제주 대회가 31일 현재 중반의 열기를 더하고 있다. 제주도에서 전국체육대회가 열린 건 2002년 제 83회 대회 이후 12년 만이고 1998년 제 79회 대회 이후 통산 세 번째다.

앞으로 전국체육대회는 2015년 제 96회 대회가 강릉을 주 개최지로 강원도에서, 2016년 제 97회 대회가 아산을 주 개최지로 충청남도에서, 2017년 제 98회 대회가 충주를 주 개최지로 충청북도에서, 2018년 제 99회 대회가 익산을 주 개최지로 전라북도에서 열린 뒤 2019년 제 100회 대회가 서울에서 개최된다.

서울이 전국체육대회를 주최한 건 1981년 제 62회 대회가 마지막이었다. 지방 발전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던 1950~70년대에는, 1966년 제 47회 대회부터 1972년 제 53회 대회까지 7회 연속 등 서울에서 대회가 많이 열렸다. 1980년대 이후에는 대회 개최가 지역 발전에 도움이 된다는 걸 지방자치단체가 알게 된데다 서울은 숙박 문제와 불편한 교통 등으로 대회 개최가 어려워져 지방을 돌면서 대회가 열렸다.

우리나라 전국체육대회는 동아시아 스포츠 3강인 중국 일본과 비교해 역사와 전통에서 크게 뒤지지 않는다.

‘전국운동회’로 불리는 중국 전국체육대회는 청나라 시절인 1910년 제 1회 대회가 난징에서 열린 뒤 중화민국(오늘날의 중국과 다른 나라) 때 4년과 6년 10년 등 불규칙한 주기 속에 1948년 상하이 대회까지 7차례 열렸다. 이후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된 뒤 그해 제 1회 전국운동회가 베이징에서 개최됐다.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느라 바빴던 중국은 제 2회 대회를 16년 뒤인 1965년 베이징에서 열었다.

이후 문화대혁명의 소용돌이가 몰아치면서 제 3회 대회는 10년 뒤인 1975년 베이징에서 열렸다. 제 4회 대회가 1979년 베이징, 제 5회 대회가 1983년 상하이, 제 6회 대회가 1986년 광둥에서 벌어진데 이어 제 7회 대회가 1997년 베이징과 쓰촨, 진황다오에서 분리 개최됐다. 이후 2001년 제 8회 대회(상하이)부터 2013년 제 12회 대회가 랴오닝에서 열리는 등 4년 주기로 열리고 있다.

'국민체육대회'로 불리는 일본 전국체육대회의 전신(前身)은 메이지신궁경기대회다. 이 대회는 1924년부터 1943년까지 14차례 열렸다. 제1회 대회 종목은 육상 수영 야구 정구 축구 럭비 하키 농구 배구 조정 씨름 유도 검도 궁도 승마 등으로 제법 큰 규모였다. 이 대회는 초창기 우리나라 스포츠와 적지 않은 인연을 갖고 있다.

1925년 9월 조선메이지신궁(서울 남산에 있었다) 완공을 축하하기 위해 때맞춰 준공된 경성운동장(이제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 서울운동장→동대문운동장)에서 그해 10월 제 1회 조선신궁경기대회가 열렸다. 조선신궁경기대회는 메이지신궁경기대회에 출전하는 조선 지역 대표를 뽑는 선발전을 겸했다.

메이지신궁경기대회는 1932년 제 6회 대회까지 조선인 선수들의 출전을 막다가 1933년 제 7회 대회부터 참가를 허용했다. 거의 조선인 선수들끼리 겨루는 조선신궁경기대회와 달리 메이지신궁경기대회는 조선인 선수와 일본인 선수들이 여러 종목에서 맞붙게 돼 조선인들의 많은 관심을 모았다.

1933년 제 7회 대회에서 양정고보가 중등부 800m 계주 우승을 차지했다. 1935년 제 8회 대회 마라톤에서는 손기정이 2시간26분42초의 당시 세계 최고기록으로 우승했다. 축구 일반부에서는 김용식(1936년 베를린 올림픽 출전)과 김영근 이유형 이영민(야구 선수로도 활약하면서 경성운동장 개장 이후 첫 홈런을 때렸다. 전국 규모 고교 야구 대회에서 가장 높은 타율을 기록한 선수에게 주는 상의 주인공) 채금석(발이 빨라 ‘군산 오토바이’라는 별명이 있었다) 등이 활약한 경성축구단이 우승을 차지했다. 1937년 제 9회 대회 마라톤에서는 유장춘이 1위를 차지해 손기정에 이어 조선인 선수가 2연속 우승했다.

1940년 제 11회 대회 축구 일반부에서는 함흥축구단이, 중등부에서는 중동중학이 패권을 차지해 조선의 축구 실력을 뽐냈다. 역도에서는 김성집(75kg급 1948년 런던 올림픽 동메달리스트)이 세계신기록으로 우승했다. 1940년과 1944년 올림픽이 예정대로 도쿄와 런던에서 열렸다면 김성집은 손기정(1936년 베를린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에 이어 두 번째 한국인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될 수도 있었다. 제 2차 세계대전의 와중에 열린 마지막 대회인 1943년 제 14회 대회에는 조선인 선수들이 출전하지 않았다.
패전국이자 전범국(戰犯國)인 일본은 1948년 런던 올림픽에 출전하지 못하는 등 국제 사회의 제재를 받았지만 1946년 제 1회 국민체육대회를 열어 스포츠 부흥의 의지를 밝혔고 이후 해마다 대회를 열어 올해 나가사키에서 열린 대회가 제 69회 대회다.
1920년 제 1회 전조선야구대회를 효시로 하는 우리나라 전국체육대회는 1929년 제 10회 대회에서 종합경기대회로 발전했다. 종전에 시기를 달리해 치러 왔던 전조선야구대회와 전조선정구대회 전조선육상경기대회를 하나로 묶어 그해 6월 13일 한 날에 개막한 것이 첫 번째 전조선종합경기대회다.

일제 강점기에서 해방된 1945년 10월 27일부터 31일까지 서울운동장에서 열린 제 26회 대회에는 ‘자유 해방 경축 전국종합경기대회’라는 긴 이름이 붙었다. 이어 한국전쟁의 여파로 1950년 제 31회 대회가 개최되지 못했으나 1951년 제 32회 대회와 1952년 제 33회 대회는 전쟁의 와중에도 전라남도(광주)와 서울에서 열렸다.

식민 지배와 전쟁이라는 힘들고 어려운 시기에도 선배 체육인들은 열정적으로 조국의 스포츠 발전을 위해 노력했고 100살을 눈앞에 둔 전국체육대회를 후손들에게 선물했다.

더팩트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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