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기획★코리언 레전드] 히틀러도 손 내민 '베를린 영웅' 손기정의 삶
입력: 2012.01.24 16:16 / 수정: 2012.01.24 16:16

▲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금메달리스트 고 손기정(가운데) /Koreanclick.com 보도 캡쳐
▲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금메달리스트 고 손기정(가운데) /
Koreanclick.com 보도 캡쳐

[김용일 기자] 박성철의 책 <삶을 축제로>에서는 한 무명 마라토너가 진심 어린 땀방울로 세계 정상에 우뚝 서는 모습을 그렸다. 그는 "뛰지 않는 것이 내게는 더 힘든 일 이었다. 오늘 한번쯤 죽어보자. 한 발자국 더 나아가는 것쯤이야"라며 마음의 저울질을 했다. 42.195km를 뛰며 자기 자신과 사투를 벌이는 마라톤은 과정과 의미에서 올림픽 정신에 가장 부합하는 종목으로 여긴다. 흔히 '올림픽의 꽃'으로 불리며 대회 마지막 날 인내와 끈기로 무장한 마라토너들의 값진 정신을 되새기고 있다. 우리나라는 1992년 바르셀로나 대회에서 황영조가 금메달을 땄고, 4년 뒤 애틀랜타 대회에서는 이봉주가 은메달을 땄다. 특히 황영조의 금메달은 역대 올림픽에서 한국이 따 낸 금빛 메달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다. 바로 1936년 일제 강점기에 베를린 대회에서 일장기를 달고 금메달을 목에 건 고 손기정의 한을 56년 만에 푼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손기정은 우리 마라톤 역사는 물론이요 한국인이 세계 스포츠계로 뻗어나가는 도약의 계기를 마련해 준 인물이다. 더불어 한국인의 긍지와 우수성을 널리 알렸다. 그의 마라톤 인생은 뛰지 않으면 육체적으로 편해질 수 있어도 마음과 생각은 불편해 진다는 삶의 가치관에서 비롯됐다. 2012년 설날 새해를 맞이해 <더팩트>은 오는 6월 런던 올림픽에서 한국 마라톤의 부활을 기원하며 '1936 베를린의 영웅' 손기정의 삶을 '코리언 레전드'에서 다뤄봤다.

'가난 했기에' 뛰어야 했던 손기정…日 국가대표까지

1912년 8월 29일 신의주 출생인 손기정은 소학교 시절 해일로 집안이 몰락해 부모를 도와 장사를 했고, 16살 때 중국 단둥에 있는 회사에 취직했다. 당시 차비가 부족해 신의주와 압록강, 단둥에 이르는 20리 길을 매일같이 뛰어다녔다. 마라톤 영웅의 시발점은 아이러니하게 이때부터였다. 달리기에 소질을 보인 그는 소학교 6학년 시절 신의주, 중국 안동 간 체육대회에서 5천 미터 우승을 차지했다. 1931년 전국체육대회에서도 평안북도 대표로 출전해 5천 미터 2위, 이듬해 한 일간지 주최 하프 마라톤에서도 2위에 올랐다. 그의 재능을 알아본 양정보통학교는 손기정의 입학을 권했고, 어려운 가정환경에도 손기정은 학업을 이어갈 수 있었다. 그리고 본격적인 마라톤 선수로의 길을 걷기 시작하며 체계적인 훈련 속에서 기량이 일취월장했다. 이후 1933~1936년까지 총 13차례 마라톤 대회에서 무려 10회 우승을 차지한다. 결국 1936년 베를린 올림픽을 앞두고 학교 선배 남승룡과 함께 가슴에 일장기를 달고 일본 국가대표에 선발되기에 이른다.

▲ 손기정(가운데)은 일장기를 달고 올림픽 정상에 섰다. 은메달과 동메달을 딴 하퍼(왼쪽)와 남승룡(동메달) / Koreanclick.com 보도 캡쳐
▲ 손기정(가운데)은 일장기를 달고 올림픽 정상에 섰다. 은메달과 동메달을
딴 하퍼(왼쪽)와 남승룡(동메달) / Koreanclick.com 보도 캡쳐

'손기테' 아닌 '손기정', 베를린서 코리언 히어로 등장
1936년 8월 9일 오후 3시. 베를린 올림픽 스타디움에는 세계 정상급 56명의 마라토너들이 자리했다. 손기정도 그 가운데 한 명이었다. 당시에는 1932년 LA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후안 카를로스 사바라(아르헨티나)의 독주를 막는 것은 불가능처럼 여겼다. 그러나 손기정은 초반 중위권으로 처졌지만, 30km 비스마르크 언덕에서 속도를 내 사바라를 따돌렸다. 그리고 31km 지점에서 영국 출신의 하퍼까지 제치며 단독 선두로 나서 12만 명의 관중들이 운집한 스타디움 안에 가장 먼저 발을 내딛었다. 2시간29분19초 세계신기록. 마라톤 금메달을 거머쥐는 순간이었다. 또한 손기정의 목에 금메달을 걸어준 사람은 다름 아닌 아돌프 히틀러였다. 아리아인의 우월성을 과시하려던 그는 작고 다부진 체격의 동양인인 손기정의 활약에 크게 놀랐다. 장내 아나운서 또한 "한국인이 아시아의 힘과 에너지로 뛰었다"며 일본 국적의 손기테로 대회에 출전한 손기정을 '한국인'이라고 명확하게 알렸다. 그렇게 세계 전역에 '코리언 히어로'의 등장을 알린 가슴 벅찬 순간이었다.

▲ 손기정 투구로 알려진 이 투구는 올림픽 마라톤우승자에게 씌어주려 했으나, 50년 간 현지 박물관에 보관. 지난 1986년 손기정에게 전달됐다.손기정은 1994년 국가에 기증했고, 서양 유물로는 처음으로 보물 904호로 지정돼 있다.
▲ '손기정 투구'로 알려진 이 투구는 올림픽 마라톤
우승자에게 씌어주려 했으나, 50년 간 현지 박물관
에 보관. 지난 1986년 손기정에게 전달됐다.
손기정은 1994년 국가에 기증했고, 서양 유물로는
처음으로 보물 904호로 지정돼 있다.

시상대 일장기 말소 사건…광복 이후 명감독의 삶

손기정과 함께 출전한 남승룡은 동메달을 차지했다. 그러나 시상대에 선 두 사람의 표정은 어두웠다. 올림픽 챔피언의 희열이 아닌 시대적 한이 우러나왔다. 베를린 스타디움에 일장기가 오르고 일본 기미가요가 흘러나오자 월계관을 쓴 두 영웅은 고개를 숙였다. 손기정은 월계수 나무로 옷에 새겨진 일장기를 살며시 가렸다. 그는 경기 후 한국어 이름으로만 서명했고, 그 옆에 한반도를 그려 넣기도 했다. 인터뷰에서도 자신의 모국은 한국이라고 했다. 이후 조선중앙일보가 그의 수상 소식을 알리는 과정에서 의도적으로 일장기를 지운 일장기 말소 사건이 일어났고, 손기정은 전차를 타는 것조차 일본의 감시를 받아야 했다. 결국 자신을 이을 한국인 후계자를 키우는 데 전념한 손기정은 해방 후 첫 해외 원정인 1947년 보스턴 마라톤 대회에서 서윤복을 우승시켰고, 1950년 동 대회에서 함기용, 송길윤, 최윤칠 등 세 선수를 1위부터 3위까지 독점하게 만드는 등 명감독으로 나래를 떨쳤다.

▲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마라톤에서 금메달을 딴 황영조(가운데)를 축하하고 있는 손기정(오른쪽)
▲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마라톤에서 금메달을 딴 황영조
(가운데)를 축하하고 있는 손기정(오른쪽)

75년 만에 되찾은 '올림픽 손기정' 이름 석 자

손기정은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대한체육회 부회장, 1963년 대한육상경기연맹 부회장을 역임했고 1966년 아시아경기대회에서는 한국 대표 단장으로 참가했다. 1988년 서울 올림픽 조직 위원회와 올림픽 성화 최종 봉송 주자로 뛰기도 한 그는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때 황영조의 정신적 지주로도 역량을 떨치며 존재 가치를 드높였다. 당시를 회고한 황영조 국가대표팀 감독은 <더팩트>과 인터뷰에서 "내가 금메달을 딴 뒤 손기정 선배님 목에 걸어 드렸는데 선배님께서 고맙다며 눈물을 흘리셨다. 가슴이 뭉클하고 더 뿌듯했다"고 말했다. 손기정은 2002년 지병으로 사망하기까지 살아생전 자신의 금메달을 우리 것으로 되찾기 위해 무척 애썼지만 일본 올림픽위원회의 거부로 이루지 못했다. 그러나 지난 해 12월15일 IOC는 75년 만에 손기정의 손을 들어주었다. IOC는 일본의 식민지 시절 손기정이 한국 선수였음을 분명히 밝히면서 일본식 이름인 '손기태'에서 한국식 이름인 손기정으로 바로잡았다. 그러면서 "당시의 복잡한 역사적 배경을 알게 돼 더욱 자세한 설명을 추가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비록 손기정의 국적은 한국이 아닌 일본으로 여전히 남아있지만 올림픽 역사에 그의 이름 석 자를 되찾았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었다.

▲ 1986년 서울 올림픽 성화 봉송 최종 주자로 나선 손기정.
▲ 1986년 서울 올림픽 성화 봉송 최종 주자로
나선 손기정.

1992년 황영조의 금메달 직후 "오늘은 내 국적을 찾은 날이야. 내가 노래에 소질이 있다면 운동장 한복판에서 우렁차게 불러보고 싶다"고 말한 손기정. 비록 세상에 그는 없지만 아직까지 세계인들은 그를 기억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의 기운을 벗 삼아 흑룡의 해인 올해 런던 올림픽에서 또 다른 손기정 신화가 탄생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그리고 언젠가 손기정의 마지막 소원이 현실에 이루어질 날도 그려볼 수 있을 것이다.

▲ 제2, 제3의 손기정 신화가 2012년 런던에서 쓰여지길 기대해본다.
▲ 제2, 제3의 손기정 신화가 2012년 런던에서
쓰여지길 기대해본다.
더팩트 스포츠기획취재팀 kyi0486@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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