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예' 박기동 "박주영 보고 떨려서 3일 간 말 못해" (인터뷰)
입력: 2011.04.01 11:57 / 수정: 2011.04.01 15:37

[ 광주=김용일 기자] 박기동(23·광주FC)에게 지난 3월은 일생일대의 전환점이었다. 청소년대표팀를 거치면서도 이 같은 스포트라이트는 받지 못했다. 프로로 데뷔했던 J리그 FC 기후에서 쓴맛을 보며 좌절의 시간을 보낸 그가 절치부심 끝에 K리그 신생 팀인 광주 FC의 지명을 받았다. 그리고 혹독한 동계 훈련을 견뎌 내며 재기의 디딤돌을 놓았다. 결국 개막전에서 결승골을 포함해 2골을 작렬하며 자신의 존재를 명확히 각인시켰다. 191cm의 큰 키, 유연한 발놀림과 순도 높은 골 결정력. 박기동은 결국 조광래 축구대표팀 감독의 마음까지 사로잡으며 생애 처음으로 국가대표팀에 선발되는 영광을 누렸다. 무엇이 그를 달라지게 만든 걸까, 그의 심장을 뜨겁게 울리고 있는 원동력은 무엇일까.

지난달 30일 오후 광주 선수단 숙소. 완연한 봄 내음을 느낄 수 있었던 그날 박기동을 만났다. 오전 훈련을 갓 마친데다 국가대표팀에 다녀온 지 사흘밖에 되지 않아 몹시 피곤할 법했지만 밝은 미소로 반겨 주었다. 그리고 가슴 뜨거웠던 3월의 시간을 되돌아봤다.

◆ '롤모델' 박주영과 3일 만에 말 붙인 사연? "편하게 하라고…"

박기동은 국가대표팀 발탁 소식에 얼떨떨하면서도 설레임을 감추지 못했다. 무엇보다 자신의 ‘롤모델’ 박주영(26․AS모나코)을 만날 수 있다는 것에서다.

"(박)주영이형을 제가 정말 좋아하거든요. 어린 시절부터 팬이었어요. 실제로 만났는데 무척 떨리더라고요. 첫날부터 주전 팀 조끼를 입고 함께 운동을 했는데 2~3일 간 말을 못했네요.(웃음) 그런데 3일째 되던 날, 주영이형이 저한테 다가와서 ‘기동아, 편하게 해’라고 말하셨어요. 그때부터 대화를 시작했고요. 훈련에서 5:5 게임도 하면서 친해졌죠. 무엇보다 '지나치게 긴장하지 말고 너하고 싶은 대로 하라'는 말에 감사했어요."

K리그 선배이자 '축구천재'로 맹활약한 뒤 유럽 무대로 건너간 박주영을 직접 만난 건 박기동에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대표팀 훈련을 통해서 그의 플레이를 하나하나 살펴보는 것도 박기동에게 소중한 공부였다.

"여유가 느껴지더라고요. 볼을 찰 때 급하지 않으니까…. 온두라스 전에서 뛰는 모습을 가까이서 지켜보니, 볼 터치도 일품이고 큰 키도 아닌데 공중볼을 참 잘 따 내더라고요. 그리고 팀 미팅을 할 때도 주장으로서 말도 잘하시고 겸손한 면도 많아요. 후배들이랑 있을 때는 장난도 잘 치고요. 아주 좋았어요."

박기동은 온두라스전에 후반 40분 교체 투입돼 약 5분 간 그라운드를 누볐다.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자신의 첫 A매치인데다 '롤모델' 박주영을 대신해 그라운드를 밟았기에 그 쾌감을 결코 잊을 수 없다. "영광이었죠. 교체로 들어갈 때 주영이형이 '짧지만 최선을 다하라고' 말하셨어요. 짧은 5분이었지만 무엇인가 보여 주고 싶더라고요. 그런데 볼을 두 번밖에 못 잡았어요.(웃음) 그래도 뛰었다는 것 자체가 영광이죠. 아, 마지막 네 번째 골에서 (이)근호형이 헤딩을 못하셨으면 저한테 찬스가 왔을 텐데요.(웃음)"

국가대표팀트레이닝센터에 입소하기 전에는 경기를 하기까지 컨디션 조율에 집중할 줄 알았단다. 그러나 축구를 하면서 가장 힘들었을 만큼 혹독한 훈련을 거쳤다. 저절로 '아, 대표팀은 역시 다르구나'를 연신 외쳐 댔다. 특히 대표팀 선배들이 꾀부리지 않고 훈련에 열중하는 모습에서 많은 것을 느꼈던 박기동이다. 그는 소집 해제 후 조광래 감독으로부터 "영리한 플레이를 해야 한다”는 쓴소리를 들었다. 장신 스트라이커로서 골 결정력 뿐 아니라 유연성과 민첩성을 길러야 한다는 뜻이었다. "감독님의 판단이 정확하실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 말씀을 듣고 더욱 프로 의식을 갖고 훈련하고 있습니다. 다시 뽑아 주신다면 보답하고 싶습니다."

◆ '쓴맛' 본 J리그 "(유)병수 득점왕 할 때, K리그 오고파"

숭실대 3학년에 재학 중이던 박기동은 J리그 주빌로 이와타의 입단 테스트에 나섰다. 어린 시절 황선홍, 홍명보와 같은 자신의 우상들이 활약하던 J리그에 유독 관심이 많았던 터라 성실하게 테스트를 받았고 관계자들에게 호평을 받았다. 그러나 주빌로의 공격수 자리는 포화 상태였다. 그는 6개월 간 2부 리그의 FC 기후에서 적응을 한 뒤 주빌로로 돌아올 것을 권유받았다. 그러나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FC 기후는 열악한 환경과 더불어 스폰서를 잡지 못하는 등 경영난에 허덕였다. 더구나 박기동은 발목 부상이 겹치며 지난 시즌 8경기 출장에 그쳤다.

"일단 부상으로 운동을 제대로 못한다는 것이 너무 힘들었어요. 기후 구단 사정도 2부리그에서 가장 나빴거든요. 무엇보다 친구인 (유)병수가 K리그에서 득점왕을 하고, 또 다른 친구들도 자리를 잡아 가는 모습을 보니까 마음이 좀 안 좋았죠. 나도 K리그 드래프트에 참여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했던 것이 사실이에요. 좌절을 많이 했었어요."

"처음에는 숭실대 시절 감독님이 계시는 수원 삼성으로 가지 않겠냐고 주변에서 말씀을 해 주셨어요. 물론 수원은 K리그에서 손꼽히는 최고의 팀이고 감독님이 저를 잘 아시니까 장점이 많았겠죠. 하지만 광주가 신생 팀으로서 제가 더 동기부여를 갖고 많은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어요. 결과적으로 지금 이렇게 잘할 수 있었던 것에 감사드리죠."

유난히 추웠던 올 겨울, 그는 그야말로 혹독한 전지훈련을 거쳤다. 오전, 오후 할 것 없이 신생 팀 특유의 매서운 맛을 보여 주려는 최만희 감독의 지도 아래 몸을 만들었다. 박기동은 "당연히 창단 팀이니까 다른 팀보다 많은 양의 훈련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조직력이나 전술적으로 준비할 게 많았죠. 힘들었지만 기분 나쁘거나 하기 싫지 않았어요. 특히 저는 일본에서 오래 쉬었기 때문에 운동량이 많은 게 마음에 들었거든요"

쓰디쓴 과정은 달콤한 열매를 맺었다. 그는 대구와 치른 K리그 개막전 홈 경기서 보란 듯이 결승골을 포함해 2골을 몰아치며 팀에 첫 승을 안겼다. 또 1라운드 MVP로 선정되며 조광래 감독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조광래 감독님이 (경기장에)오시는 것을 알고 있었어요. 저한테 기회라고 생각했는데 후반전에 의외로 쉽게 골이 들어가서 마음 편히 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운이 좋았죠."

광주는 이후 수원, 울산 등 강호들에게 연달아 졌지만 두 경기 모두 선제골을 넣은 뒤 프리킥과 페널티킥으로 골을 내주며 아쉽게 패했다. 광주는 신생 팀이지만 K리그 모든 팀들이 결코 만만히 볼 수 없는 전력을 갖추고 있다는 사실을 시즌 초반 확실히 증명했다. 그 중심에는 박기동이 있다.

◆ "걸그룹이요? 달샤벳이 짱이죠"…당구 실력은 '200'

박기동의 일상이 궁금했다. 191cm의 훤칠한 키에 생긋생긋 미소를 짓는 '훈남' 박기동의 이상형은 누구일까. "딱히 이상형이라기 보다 저를 사랑해 주고, 저만의 사람이 나타나면 교제도 하고 싶죠. (지금은 없나요?) 예, 없어요.(웃음)" 애장품은 사복이란다. 옷이나 신발 같은 패션 용품에 관심이 많다고 한다. K리그 패셔니스타로 발돋움하지 않을까 하는 말에 "그럼 좋죠. 수원 선수들이 화보 찍은 것을 봤는데 나중에 기회가 되면 저도 한번 해보고 싶어요"라고 당당하게 외친다.

박기동은 광주가 고향이 아니다. 그래서 쉴 때 따로 만날 친구가 없다고 한다. "오전 훈련이 있는 날에는 오후에 잠을 보충하는 경우가 많아요. 아니면 근처 커피숍에서 동료들하고 이야기도 하고요. 당구를 치러갈 때도 있어요. (아, 얼마나 치나요?) 제가 한 200정도 쳐요.(웃음)"

좋아하는 걸그룹을 물어봤다. 그러자 그는 "걸그룹 대부분을 좋아해요. 그런데 요즘에는 달샤벳이 좋더라고요. 'Supa Dupa Diva'라는 노래에서 짱구춤이 나오잖아요? 정말 매력적입니다. 실제로 만나게 된다면 제가 커피라도 기꺼이 사 드릴게요.(웃음)"

걸그룹 이야기에 생긋 웃는 그의 미소 속에 영락없는 20대 초반의 생기발랄한 청년의 얼굴이 보였다.

그의 돋보이는 활약에 수식어도 많이 따라붙었다. 'K리그 신데렐라'에서 최근 '고공폭격기'까지…. "고공폭격기가 헤딩을 많이 떠올리잖아요? 하지만 저는 키가 크다고 헤딩만 잘한다는 소리는 듣기 싫어요. 저 특유의 플레이를 펼쳐서 앞으로 저만의 수식어를 들어봤으면 하는 욕심이 있습니다.(웃음)"

박기동의 답변은 시종일관 차분했다. 흔들림 없는 초롱초롱한 눈빛이 피로한 몸을 압도했다. 박기동은 지금,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높은 지점을 향해 아름다운 질주를 하고 있다. 찬란한 3월도 자기 능력에 대한 자만심이 아닌 다가올 일들에 대한 준비의 시간으로 되돌리고 있다. 인터뷰를 마감하며 "말을 조리 있게 잘한다"는 말에 "이제 야구도 개막하잖아요? 광주가 워낙 야구 인기가 좋은데요. 저희 광주 FC도 홈 개막전 때 잘했는데 언제나 최선을 다하고 이기는 경기로 사랑받는 팀이 되고 싶어요. 일본에서 지낸 어려운 시간을 통해 프로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독을 품게 됐어요. 간절한 마음을 배웠죠.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할 생각입니다"

<사진 = K리그 명예기자 박종민>

kyi0486@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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