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김현회기자] 고종수가 그라운드와 작별했다. 고종수는 6일 “이제 모든 것을 정리할 때가 왔다. 지난 기억을 가슴에 묻고 그라운드를 떠나겠다”고 은퇴 의사를 밝혔다. 이로써 지난 10여년 간 축구 팬들을 열광시켰던 고종수는 서른 하나의 이른 나이에 축구화를 벗게 됐다.
18세 2개월 12일 만인 1997년 1월, 처음으로 당시 차범근 감독이 이끌던 성인대표팀에 발탁된 그는 18세 3개월 만에 홍콩과의 1998 프랑스월드컵 아시아지역 1차 예선 원정경기에 출전해 최연소 성인대표 선발출전 기록을 갈아치웠던 축구천재였다.
1996년 수원의 창단 멤버로 K-리그에 입성한 고종수는 스승 김호 감독과 함께 1998년과 1999년 K-리그를 제패했고 1998 프랑스월드컵에서도 당돌한 활약으로 한국축구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그런 그를 이제 다시는 그라운드에서 볼 수 없다. 고종수의 전매특허인 날카로운 왼발 프리킥과 덤블링 세레모니도 이제 그라운드에서 볼 수 없다. 잦은 부상과 무적 신세, 잇단 스캔들…. 경기장 안팎에서 우리를 울리고 웃겼던 고종수와의 즐거운 기억을 마지막으로 꺼내본다.
#1. 세계를 놀라게 하다
지난 2001년 1월 3일 일본 요코하마종합경기장. 2002 한일월드컵 공동 개최를 기념해 한일올스타와 세계올스타가 경기를 펼쳤다. 전세계로 중계된 이날 빅이벤트는 고종수의 존재를 알리는 경기였다.
당시 대표팀 코칭스태프와의 불화설에 잦은 부상까지 겹치면서 기량을 마음껏 발휘하지 못했던 고종수는 전반 17분 세계올스타의 골문 앞에서 프리킥 기회를 잡았다. 한일올스타 전체를 통털어 프리킥에는 가장 자신있는 고종수였다.
그는 당시 세계 최고 골키퍼 중 한 명인 칠라베르트(파라과이)를 상대로 골문 오른쪽 상단에 프리킥을 정확히 꽂아 넣으며 7만 관중과 전세계 축구팬을 놀라게 했다. 경기가 끝난 뒤 해외언론은 ‘한국에도 오르테가가 있다’며 극찬했다.
칠라베르트 역시 2006독일월드컵이 끝난 뒤 당시 고종수의 프리킥골을 회상하며 “너무 잘차서 꼼짝할 수 없었다. 내가 경험한 몇 되지 않는 환상적인 골 중 하나”라고 평했다.
#2. ‘히딩크의 황태자’가 되다
히딩크호의 출발점이었던 2001년 홍콩 칼스버그컵은 고종수를 위한 무대였다. 1차전 노르웨이와의 경기에서 전반 24분 자신이 얻은 페널티킥을 직접 성공시켜 히딩크 감독 체제 1호골을 기록한 고종수는 1월27일 파라과이와의 3,4위전에서도 진가를 발휘했다.
왼쪽 날개로 선발 출장한 고종수는 경기가 0-0으로 팽팽하던 후반 11분 그림 같은 중거리슛으로 파라과이 골망을 흔들었다. 고종수는 유상철이 미드필드 중앙에서 크로스한 공이 수비를 맞고 흐르자 아크 부근에서 달려들며 강력한 왼발 중거리슛을 쏘아올렸다.
두 경기 연속골을 기록한 고종수는 곧바로 전매특허가 된 덤블링 세레모니로 히딩크 감독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렸고 이후 한 동안 ‘히딩크의 황태자’라는 별명을 얻었다. 이 골은 아시아축구연맹(AFC)이 선정하는 ‘이달의 골’로 선정되기도 했다.
#3. ‘원맨쇼’를 펼치다
2001년 7월 15일 수원종합운동장에서 열린 수원과 부산의 경기. 고종수는 이날 경기 전까지 두 경기 연속 어시스트를 기록하며 상승세 중이었지만 팀은 6위로 처져 있었다.
수원과 부산은 전반 초반부터 엎치락뒤치락 했다. 전반 시작 10분 만에 데니스의 골로 앞서간 수원은 전반 20분 부산 장대일에게 프리킥 골을 허용하며 1-1로 전반을 마치더니 후반 6분 이기부에게 또 다시 골을 내주며 1-2로 역전 당했다.
고종수의 ‘원맨쇼’는 이때부터였다. 고종수는 후반 27분 부산 측면 좌측에서 자로 잰듯한 정확한 크로스를 날려 산드로의 동점골을 도왔다. 그리고 4분 후, 고종수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아크정면 오른쪽 24m 지역, 이름하여 ‘고종수 존’에서 수원이 프리킥 기회를 잡은 것이다.
고종수의 프리킥은 여지 없었다. 그가 감아찬 왼발 프리킥은 부산 골문을 흔들며 극적인 3-2 재역전 드라마에 마침표를 찍었다. 부산 골키퍼 정유석은 손도 쓸 수 없었다. 좌절하는 부산 선수들 사이로 고종수는 덤블링 세레모니를 선보이며 웃었다.
#4. 천재임을 증명하다
2002년 9월 4일 전북과 수원의 경기가 펼쳐진 전주월드컵경기장. 수원의 고종수는 후반 8분 미드필드 중앙에서 날카로운 스루패스로 서정원의 첫 골을 어시스트 하더니 후반 41분에는 기가 막힌 골을 뽑아내며 팀 승리에 쐐기를 박았다.
그는 수비 진영에서 공을 잡아 지체 없이 슛을 날렸다. 무려 57m에 이르는 거리였지만 고종수의 천부적인 감각은 적중했다. 전북 골키퍼 이용발이 전진한 것을 보고 때린 왼발 장거리슛은 전북 골네트 가운데를 정확히 갈랐다.
고종수는 이 경기에서 두 가지 대기록을 달성했다. 57m 장거리슛으로 종전 김종건(당시 울산)이 1994년 세운 국내 프로축구 최장거리슛(54m) 기록을 갈아치운 그는 프로통산 114경기 만에 30골-32어시스트를 달성해 최단경기 ‘30-30클럽’에도 이름을 올렸다.
이제 고종수는 떠났다. 선수 생활 동안 절제되지 못한 사생활로 비난을 받기도 했던 고종수지만 그는 팬들에게 그 이상의 즐거움을 그라운드에서 선사했다. 타고난 재능에 비해 우여곡절이 많았던 고종수. 비록 이제 그를 그라운드에서 볼 수는 없지만 그의 왼발은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90minutes@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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