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태용 감독이 10일 스위스 빌비엔에서 열린 모로코와 평가전에서 선수들의 경기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대한축구협회 제공 |
[더팩트 | 최정식 선임기자] 만약 한국 축구가 세계 정상을 다툴 정도로 강하다면 축구 열기가 더 뜨거워질까? 어쩌면 오히려 시들해질지도 모른다. 물론 늘 지기만 한다면 더 관심을 갖지 않게될 것이다. 축구에 대한 한국인의 열기는 '가능성'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리고 그 가능성은 이길 수도 있는 상대에 이기는 것으로 확인된다. 밤잠을 설치며 대표팀의 경기를 지켜보는 '축구팬'의 다수는 한 번도 K리그 경기장을 찾지 않은 이들이다. 그들이 좋아하는 것은 축구라기보다 승리다.
공식대회 이외의 A매치는 평가전 또는 친선경기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평가'라는 말이 붙었으니 좀 더 큰 목표를 위해 승패에 연연하지 않고 다양한 실험을 하는데 치중할 수 있을까? 그럴 수 없다. 더 강한 팀을 만들기 위해 여러가지 시도를 해 보는 것은 대표팀 감독의 권한이다. 그러나 그에게는 자국 팬들을 위해 승리해야 할 의무도 있다. 평가전은 과정이면서 별개의 목표이기도 하다.
신태용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대표팀이 10일(현지시간) 스위스 빌비엔에서 열린 모로코와 평가전에서 1-3으로 패했다. 경기 시작 10분 만에 두 골을 내줬고 손흥민의 페널티킥으로 영패를 면했다. 전반에 일찌감치 전형을 바꿀 정도의 수비 불안 때문에 라인 컨트롤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고, 수비 라인이 제때에 전진하지 못하니 공격도 원활할 수 없었다. 일대일 경합에서 뒤지는데 진형마저 콤팩트하게 유지하지 못하니 계속 공을 빼앗길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승리는 고사하고 의미 있는 실험도 해 볼 수 없었다.
신 감독은 대표팀 사령탑으로 부임한 이후 러시아 월드컵 최종예선 두 경기에서 득점 없이 비겼고, 지난 7일 러시아와 평가전에서 2-4로 진 데 이어 모로코에게도 완패했다. 2무 2패를 기록하며 또 첫 승을 거두는데 실패했다.
한국이 10일 스위스 빌비엔에서 열린 모로코와 평가전에서 1-3으로 완패했다./ 대한축구협회 제공 |
어디서부터 잘못됐을까? 이번 유럽 원정 두 경기에서의 실패는 해외파 선수로만 팀을 구성한 영향이 크다. 대표팀 자원을 부분적으로만 쓰면서 승리는 물론 실험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런 상황은 첫 단추를 잘못 끼운데서 비롯됐다.
신태용 감독은 월드컵 최종예선 두 경기를 앞두고 K리거 중심으로 대표팀을 조기소집했다. K리그에 '협조'라는 이름의 양보를 요구했던 터라 이번에는 '상생'이라는 이름으로 불완전한 팀을 꾸릴 수밖에 없었다. 11월 한 차례 평가전을 치르고 나면 12월 동아시안컵은 K리그 선수들로만 팀을 구성해야 한다.
최종예선 이란전과 우즈베키스탄전을 '안정적'으로 운영하다보니 경기력 논란에 시달려야 했고, '히딩크 역할론'까지 나오면서 월드컵 본선에 대비하기보다는 대표팀에 대한 불신을 걷어내는 것이 우선이 됐다. 평가전이라고 하지만 다른 때보다 더 승리가 필요한 상황이 됐는데 결과는 완패였다. 프로축구에 대한 어쩔 수 없는 배려 때문에 실험에 중점을 둔 탓이다.
2001년 8월 거스 히딩크 감독이 이끈 한국 축구대표팀은 체코 브르노에서 열린 체코와 평가전에서 0-5로 크게 패했다. 이에 앞서 대구에서 벌어진 컨페더레이션스컵에서도 프랑스에게 0-5로 졌기 때문에 히딩크에게는 '오대영'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한일월드컵을 9개월 앞둔 시점에서 체코에 대패하면서 감독에 대한 비판이 거셌다.
히딩크는 강한 팀이 되기 위해서는 강팀과 싸우며 경험을 쌓아야 한다고 주장하며 목표 달성을 위한 과정으로서 의미를 강조했으나 대부분이 그의 지도력에 의구심을 나타냈다. 결과적으로 한국은 한일월드컵에서 세계 4강의 위업을 이뤘다. 그렇다면 체코에 패했을 때 그에게 쏟아졌던 비판은 그저 단견이었을 뿐일까? 감독이 자신의 신념을 지킨 것은 훌륭한 일이었지만 과정에 대한 문제 제기도 분명 필요했다.
신태용 감독의 '무승'을 히딩크의 '오대영'처럼 과정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까? 러시아 월드컵을 8개월 앞둔 지금 이란의 카를로스 케이로스 감독이 지난 8월 한국과 월드컵 최종예선을 치르기 위해 입국하면서 했던 평범하지만 의미심장한 말을 떠올리게 된다. "팀 전체가 배우고 발전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이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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