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초점] 넥센과 강원, 머니볼과 갈락티코
입력: 2016.12.24 02:50 / 수정: 2016.12.27 12:52

[더팩트 | 최정식 선임기자] '강락티코'라 불러야 할까? 프로축구 강원FC의 공격적인 선수 영입이 화제다.

지난 9일 이근호를 시작으로 거의 날마다 보강 선수를 발표하면서 눈길을 끈 강원은 21일 올 시즌 득점왕이자 MVP인 광주의 스트라이커 정조국마저 영입했다고 밝히면서 축구계를 놀라게 했다. 새로 영입한 선수가 무려 10명인데다 지명도와 중량감이 있는 선수들이 대거 포함돼 있어 세계 최고 클럽 레알 마드리드의 '갈락티코'를 떠올리게 한다.

이같은 '대형선수 쇼핑'이 낯선 것만은 아니다. 전북도 지난해 김신욱, 로페즈, 김보경, 에두 등을 영입해 전력을 끌어올리며 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우승의 성과를 거뒀다. 그러나 전북은 현대자동차라는 대기업의 지원을 받는 넉넉한 구단인데 비해 강원은 최근까지도 빚을 갚기 급급했을 정도로 재정이 열악한 도민구단이라는 점에서 의외의 일로 받아들여졌다.

그런 강원이 22일에는 네이밍 라이츠(명칭 사용권)로 스폰서를 확보하겠다는 계획을 밝혀 또 한 번 주목받았다. 프로축구에서는 첫 시도가 되는데다 새로 부임한 조태룡 대표가 프로야구 넥센 히어로즈의 단장을 지낸 인물이기 때문이다.

히어로즈는 2007년 현대를 인수해 프로야구에 뛰어들 때부터 스포츠 기업을 표방하며 기존 구단들과 다른 길을 걸었다. 히어로즈의 전략은 비용을 최소화하고 마케팅을 통한 스폰서 확보로 수익을 창출해 자생력을 갖춘다는 것이었다. 그런 마케팅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 것이 네이밍 라이츠였다.

우리담배의 후원을 이끌어내며 우리 히어로즈로 출발했고, 2010년에는 넥센타이어와 계약해 넥센 히어로즈로 이름을 바꿨다. 사실 이같은 네이밍 라이츠 활용은 모기업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국내프로야구의 성격에 힘입은 면이 있다. 연고지명과 닉네임으로 이뤄진 메이저리그 팀 이름과 달리 국내프로야구는 기업명이 공식적인 팀 이름으로 쓰이고 있다. 프로축구와 달리 연고지명은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이 때문에 네이밍 스폰서를 맡는 기업은 경영에 대한 부담 없이 대기업들이 누리는 마케팅 효과를 거둘 수 있다.

히어로즈의 구단 운영은 마케팅 활동보다 저비용 구조의 효율성 면에서 주목받고 있다. 한때 '선수를 팔아 팀을 운영한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으나 저평가된 선수들을 받아들여 주축선수로 키워내고, 꾸준히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는 성과를 내면서 '한국판 머니볼'이라는 호평을 받고 있는 것이다. 강정호 박병호 유한준 손승락 등 핵심 선수들이 팀을 떠났는데도 신예들이 그 자리를 메우면서 '육성'의 성공 사례를 보여주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히어로즈의 방식을 어떻게 프로축구에 접목시키느냐 하는 것이다. 네이밍 라이츠를 똑같이 내세우면서도 선수단 구성에서는 오클랜드가 아닌 레알 마드리드를 따르고 있다. 히어로즈의 머니볼이 강원에서 갈락티코로 변한 것은 프로야구와 프로축구의 차이 때문으로 보인다. 프로야구와 달리 프로축구는 최소의 비용으로 목표한 효과를 거두기 힘들다. 다른 시도민구단과 비슷한 행보로는 마케팅에 한계를 맞을 수밖에 없다. 레알 마드리드의 갈락티코는 강력한 스쿼드를 만드는 것 이상으로 브랜드 구축에 의미가 있다. 강원이 클래식으로 승격한 시점에 맞춰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치는 이유다.

축구는 전세계적으로 선수 시장이 활성화돼있고 챔피언스리그를 통해 글로벌 마케팅 시장도 열려있다. 국내의 시장 환경은 야구보다 나을 게 없지만 해외로 눈길을 돌리면 얘기가 달라진다. 조태룡 대표가 정조국 등을 영입하면서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출전을 언급한 것도 마케팅 활동을 염두에 둔 것이다.

강원의 새로운 시도에서 문제가 될 수 있는 것은 역시 성적이다. 프로야구도 좋은 성적을 내야 브랜드 가치가 높아지지만 승강제가 있는 K리그는 그 차원이 다르다. 챌린지로 떨어지게 되면 마케팅에서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다. 이번의 의욕적인 선수 영입이 곧바로 전력 강화로 이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것은 조직력이라는 측면에서 야구와 축구의 차이 때문이다. 프로야구 정도의 리그 전체적인 인기를 기대하기 어려운 만큼 성적 뿐 아니라 경기 내용과 팀 컬러도 중요하다.

또 야구기업인 히어로즈와 달리 강원은 도민구단이다. 마케팅을 통해 자생력을 갖추겠다고 하지만 기본적으로 도의 지원이 필수적이다. 그런데 예산 편성이나 구단주인 도지사의 거취 등 구단 운영에 변수가 적지 않다. 야구에서 통했던 프로 스포츠 구단 경영 모델이 그대로 적용되기 어려운 환경이다. 그러나 K리그라는 정체돼 있는 시장에서 강원이 펼치는 새로운 시도가 신선하게 느껴지고 자극이 되는 것만은 틀림없다.
malishi@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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