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재희의 골라인] '뜨거운' 시메오네와 '차가운' 코쿠의 '0-0 명승부'
입력: 2016.03.16 12:23 / 수정: 2016.03.16 13:45
시메오네 vs 코쿠! 아틀레티코의 시메오네(왼쪽) 감독과 에인트호번의 코쿠 감독이 챔피언스리그 16강전에서 멋진 지략 대결을 펼쳤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홈페이지, 에인트호번 홈페이지
시메오네 vs 코쿠! 아틀레티코의 시메오네(왼쪽) 감독과 에인트호번의 코쿠 감독이 챔피언스리그 16강전에서 멋진 '지략 대결'을 펼쳤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홈페이지, 에인트호번 홈페이지

아틀레티코, 승부차기 끝에 에인트호벤 꺾고 '챔스 8강행!'

[더팩트 | 심재희 기자] 같은 0-0이었지만 2차전은 1차전과 완전히 달랐다. 연장전과 승부차기까지 치른 2차전이 1차전보다 훨씬 더 빨리 지나갔다는 느낌이 들 정도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이하 아틀레티코)와 PSV 에인트호번(이하 에인트호번)의 2015-2016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16강전. 골이 단 하나도 터지지 않았지만 끝까지 '쫄깃한' 승부가 이어지며 축구팬들의 새벽잠을 달아나게 만들었다.

명승부의 중심에는 두 감독이 있었다. 아틀레티코의 디에고 시메오네 감독과 에인트호번의 필립 코쿠 감독이 팽팽한 '지략 대결'을 펼치며 끝까지 승부를 알 수 없게 만들었다. 기억을 더듬으니, 1970년에 태어나 '동갑내기'인 두 감독은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선수로 만난 적이 있다. 당시 아르헨티나와 네덜란드 국가 대표 유니폼을 입고 '월드컵 8강전'에 출전한 둘은 풀타임을 소화했다. 결과는 코쿠 감독의 조국 네덜란드의 2-1 승리. 후반 44분 데니스 베르캄프의 그 유명한 '미친 터치'에 이은 결승골이 터진 게 바로 이 경기다. 에드윈 반 데 사르, 야프 스탐, 프랑크 데 보어, 로날드 데 보어, 에드가 다비즈, 파트리크 클루이베르트, 마르크 오베르마스, 베르캄프(이상 네덜란드), 카를로스 로아, 로베르토 아얄라, 하비에르 사네티, 후안 베론, 마티아스 알메이다, 클라우디오 로페스, 다니엘 오르테가, 가브리엘 바티스투타(이상 아르헨티나). 경기에 나선 선수들의 이름만 들어도 그때의 설렘이 다시 느껴지는 듯하다.

추억의 스타들! 1998년 프랑스 월드컵 8강전 네덜란드와 아르헨티나 경기의 출전 선수 명단. 반가운 이름들이 눈길을 끈다. /국제축구연맹 홈페이지 캡처
추억의 스타들! 1998년 프랑스 월드컵 8강전 네덜란드와 아르헨티나 경기의 출전 선수 명단. 반가운 이름들이 눈길을 끈다. /국제축구연맹 홈페이지 캡처

어느덧 18년이 지나 감독으로서 '별들의 전쟁' 챔피언스리그 무대에서 만난 시메오네와 코쿠는 또 한번의 명승부를 역사에 새겼다. 선수 시절 투지 넘치는 미드필더로 명성을 떨쳤던 시메오네 감독은 '뜨겁게' 아틀레티코를 지휘했고, 골키퍼를 빼고 모든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었던 코쿠 감독은 '차갑게' 에인트호벤을 이끌었다. '뜨거운' 시메오네와 '차가운' 코쿠가 팽팽한 0의 행진을 이어가면서 승부차기 승부를 벌였다.

사실 1차전이 0-0으로 끝났을 때, 아틀레티코 쪽으로 손을 올리는 사람들이 매우 많았다. 2차전 홈 경기를 남겨둔 아틀레티코가 안방에서 매우 강하고, 객관적인 전력에서도 한 수 위라고 평가 받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별리그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유로파리그로 떨어뜨리며 16강에 오른 에인트호벤의 저력은 만만치 않았다. 코쿠 감독은 '변형 스리백'(파이브백으로 수시 전환)을 들고 나오면서 아틀레티코의 공격을 효과적으로 차단했고, 징계를 털고 돌아온 루크 데 용을 중심으로 공격에서도 날카로움을 보이며 선전을 펼쳤다.

코쿠 감독의 '변칙'에 시메오네 감독도 후반 들어 '변화'를 주며 맞불을 놓았다. 골잡이 페르난도 토레스를 투입하며 4-4-2 전형에서 변형 4-4-2 혹은 4-3-3 전형으로 판을 바꿨다. 몸이 매우 가벼웠던 토레스가 에인트호벤 진영을 활발하게 누비면서 아틀레티코의 공격이 살아났다. 하지만 골은 끝내 터지지 않았다. 아틀레티코가 주도권 잡고 몰아치자, 코쿠 감독은 적절한 선수 교체로 전열을 가다듬으며 실점 없이 120분을 버텨냈다. 경기 전 코쿠 감독은 이런 말을 했다. "0-0 스코어가 나쁘지 않다. 하지만 결코 수비적으로 경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코쿠 감독의 노림수가 승부차기 전까지 확실히 통했다.

운명의 승부차기. 승부차기까지 염두에 둔 에인트호벤 선수들은 대비가 잘 되어 있었다. 철저하게 구석을 찌르는 깔아차기로 재미를 봤다. 아틀레티코 역시 키커들이 침착하게 성공을 이어가면서 승부차기 스코어 7-7. 이 순간, 시메오네 감독 특유의 제스처가 중계 카메라에 잡혔다. 여러 차례 두 팔을 위로 짧게 들며 관중들의 응원을 이끌어냈다. 그리고 곧바로 이어진 에인트호번 8번째 키커 루치아노 나르싱의 슈팅이 거짓말처럼 크로스바를 강타했다. 아틀레티코는 승리의 분위기에서 마무리를 '베테랑' 후안프란이 담당했다. 후안프란은 깔끔한 슈팅으로 에인트호번 골망을 가르며 긴 승부를 매조지었다. 아틀레티코의 승부차기 8-7 승리.

아틀레티코, 8강 진출! 아틀레티코가 에인트호번을 물리치고 챔피언스리그 8강 고지를 밟았다. 1,2차전 모두 0-0 승부였지만, 두 팀 모두 좋은 경기력을 보이며 축구팬들을 즐겁게 했다. /유럽축구연맹 홈페이니 캡처
아틀레티코, 8강 진출! 아틀레티코가 에인트호번을 물리치고 챔피언스리그 8강 고지를 밟았다. 1,2차전 모두 0-0 승부였지만, 두 팀 모두 좋은 경기력을 보이며 축구팬들을 즐겁게 했다. /유럽축구연맹 홈페이니 캡처

시원한 골이 나오지 않았지만, 그보다 더 뜨거운 감독들의 승리 열정이 느껴졌던 아틀레티코와 에인트호번의 16강전이었다. 선수보다 더 열심히 뛰는 시메오네 감독의 넘치는 에너지와 다양한 작전과 냉정한 분석으로 전력 열세를 뒤집을 뻔한 코쿠 감독의 두뇌가 경기 내내 맞대결을 벌여 눈길을 끌었다. 여기에 감독들의 주문에 맞춰 팀으로서 함께 열심히 뛴 선수들의 멋진 대결이 승부차기까지 이어져 손에 땀을 쥐게 했다.

골이 나오지 않아도 축구는 재미 있고 아름다우며 많은 것을 느끼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한판. 승자인 아틀레티코도 패자인 에인트호벤도 함께 박수를 받을 수 있는 이유다.

kkamanom@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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