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특집 TF취재기-매치 코디네이터의 세계①] 경기장 점검으로 1만 보,'확인 또 확인'
입력: 2015.09.27 05:00 / 수정: 2015.09.30 12:02
매치 코디네이터! 신명준 한국프로축구연맹 리그운영팀장이 23일 열린 대전-포항전에서 경기장을 바라보고 있다. / 대전월드컵경기장 = 이현용 기자
'매치 코디네이터!' 신명준 한국프로축구연맹 리그운영팀장이 23일 열린 대전-포항전에서 경기장을 바라보고 있다. / 대전월드컵경기장 = 이현용 기자

화려한 조명이 켜졌다. 직사각형 그라운드 안 22명의 선수에게 쏟아진다. 경기장을 메운 관중들의 눈은 하나의 공을 향한다. 한치의 양보도 없는 치열한 승부, 저마다 자신이 응원하는 팀을 향해 소리친다. 그러나 여기에 휩쓸리지 않는 한 사람, 공과 상관없이 바쁜 사람이 있다. 90분의 전쟁을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분주히 움직이는 사람은 바로 매치 코디네이터. K리그 경기를 책임지고 있는 그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 본다.

"저희 경기는 휘슬 울리기 3시간 전부터 시작돼요. 오후 4시 30분에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 만나요."
수화기 너머에서 신명준(42) 한국프로축구연맹 리그운영팀장의 덤덤한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그렇게 하루 전에 약속을 잡았다. 대전 시티즌과 포항 스틸러스의 경기가 열린 23일, K리그를 만드는 사람들의 일과를 취재하기 위해 대전으로 떠났다.

맑은 날은 아니었다. 하늘은 희끄무레했다. '비가 오려나?'라는 생각과 함께 대전나들목을 빠져나와 경기장으로 들어섰다. 남문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신 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서문으로 와요."라는 말과 함께 발걸음이 바빠졌다. 4시 33분, 신 팀장을 만났다. '사진보다 말랐네'라는 시답잖는 생각을 하며 명함을 주고받는다. 인사와 일정 설명을 마치니 예상보다 10분 가량 늦어졌다. 신 팀장은 '매치 코디네이터 역할', '홈 경기 운영 매뉴얼', '경기감독관 전달문서' 등 A4 용지 뭉치를 여러 개 건넸다. "좀 늦었네요. 얼른 그라운드로 가시죠." 서두르는 듯한 그의 음성에 덩달아 내 마음도 급해졌다.

잔디 길이 2~2.5cm, 코너 플래그 높이 1.5m, 라인 두께 12cm 등 경기를 앞둔 그라운드는 확인할 것이 참 많다.
잔디 길이 2~2.5cm, 코너 플래그 높이 1.5m, 라인 두께 12cm 등 경기를 앞둔 그라운드는 확인할 것이 참 많다.

◆ 그라운드에 숨어 있는 숫자와 의미

아직 아무도 밟지 않은 푸른색 그라운드에 발을 올렸다. 멀리서 본 잔디와 가까이서 본 잔디는 많이 달랐다. 파인 뒤 치료를 한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다. 신 팀장은 강창구 경기감독관과 함께 능숙한 손길과 시선으로 그라운드를 훑는다. 강 감독관의 오른손에는 줄자가 들려 있다. "이게 다 규격이 있어요"라는 말을 던진 신 팀장은 질문 세례를 쏟는다. 하얗게 그려진 라인의 두께, 코너 플래그의 높이, 페널티박스에 그러진 타원형의 반원, 경기장 밖에 그려진 라인까지 모두 의미가 있다.

신 팀장이 잔디를 어루만지며 다시 묻는다. "이 기자는 혹시 잔디 길이가 어느 정도 길이가 좋은지 알아요?" 잠시 머뭇거리자 즉시 답을 내놓는다. "2cm에서 2.5cm가 적당해요. 오늘은 딱 좋네요." 슬그머니 잔디 한 올을 뽑아 길이를 쟀다. 신 팀장의 눈이 정확하다. 30분 동안 잔디 발육 상태, 그라운드의 평평함, 라인, 그라운드 딱딱함, 배수, 광고판, 골대 그물 등을 30분 이상 꼼꼼히 살핀 신 팀장은 그제서야 고개를 든다. 그라운드를 빠져나오면서도 잊은 것은 없는지 다시 한번 그라운드에 시선을 둔다. 이날 골대 그물 옆쪽이 구멍이 있었고 바로 조치가 취해졌다.

신 팀장이 가장 강조한 것은 안전이었다.
신 팀장이 가장 강조한 것은 안전이었다.

◆ 디테일이 살아 있네

신 팀장의 손에는 검정색 파일이 들려있다. 이날 경기와 관련된 문서가 담겨있다. 무척 중요한지 절대 신 팀장의 손에서 떠나지 않았다. 신 팀장과 자리를 옮겨 인터뷰실에 앉았다. '매치 코디네이터 리포트'를 건네며 "이 기자도 체크하면서 경험해 보세요"라고 한다. 이 A4 용지가 경기를 평가하는 성적표인 셈이다. 약 100개(집에 와서 세어보니 정확하게 98개)의 항목이 빼곡하게 종이를 채우고 있었다. 1~5점으로 정량평가를 하고 의견을 달아 정성평가를 한다. 모든 경기의 리포트가 모여 K리그는 조금씩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라커룸의 통풍부터 공식 사용구, 심판실 물까지 '정말 디테일이 살아 있네'라는 생각이 저절로 들 정도였다.

신 팀장은 "매치 코디네이터 제도가 도입된 것은 2012년부터다. K리그 규모가 크진 않지만 이런 행정적인 시스템은 아시아에서 최고다. 디테일이 강해야 한다"고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 그의 목소리에서 1996년 입사해 20년째 한국프로축구연맹에 몸담고 있는 자부심이 느껴졌다.

"가장 중요한 것은 선수 안전이다." 신 팀장이 경기를 준비하면서 가장 신경을 쓰는 부분이다. 어떤 돌발 상황이 발생할지 알 수 없는 스포츠 경기라면 그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그는 "선수들이 의식을 잃고 쓰러지는 비상 상황에선 구급차까지 싣는 데 얼마의 시간이 걸렸느냐가 중요하다. 3분이 넘지 않는다"고 말했다. 시즌 초반부터 구급차 구비 물품에 대해 꼼꼼히 확인을 했고 이제 구급차는 병원의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연맹은 시뮬레이션을 통해 비상 상황에 대해 항상 대비하고 있다. 신 팀장과 함께 보낸 시간에서 가장 많이 들은 단어가 '안전'일 정도로 그는 강조하고 또 강조했다.

신 팀장은 쉴 새 없이 경기장을 누볐다.
신 팀장은 쉴 새 없이 경기장을 누볐다.

◆ 경기장 점검으로 '만보'

참 많이 걸었다. 신 팀장은 경기 시작 120분을 앞두고 보통 경기장 주변을 걷는다. 위험 요소는 없는지 어떤 이벤트들이 관중을 기다리고 있는지 반입 물품에 대한 검사는 잘 이뤄지고 있는지 등등 확인할 것이 참 많다. 청바지에 운동화를 신어도 쉽지 않은 여정이다.

"운동량이 많은데 정장보다 조금 편한 차림으로 일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
"연맹을 대표한다는 생각입니다. 팬들을 맞는 자세라고 할까요? 전 괜찮습니다."

우문현답이다. 호흡이 가빠지며 묻는 말에 한점의 흐트럼 없이 말을 쏟아낸다. 경기장 외부 구석구석을 누비고 복귀를 했다. 신 팀장은 옅은 미소를 머금고 "사실 출장도 잦고 운동할 시간이 마땅치 않아요. 그런데 이렇게 경기장에 오면 항상 만보 이상은 걸어요"라며 시계를 내민다. 두 번 버튼을 누르니 '9230'이라는 숫자가 나온다. 아직 경기는 시작도 안 했는데 만보까지는 770보 남았다.

강창구 경기감독관(오른쪽에서 두번째)이 라인업 명단을 살피고 있다.
강창구 경기감독관(오른쪽에서 두번째)이 라인업 명단을 살피고 있다.

◆ 라인업 교환, 이미 경기는 시작됐다

경기 시작 90분 전, 4명의 사람이 구단 사무실에서 만났다. 강 경기감독관과 신 팀장, 대전과 포항의 주무는 라인업 명단을 교환했다. 절대 실수가 있어서는 안되는 자리다. 강 감독관은 진지하게 명단을 읽는다. 단 한자도 놓치지 않으려 진지한 표정으로 천천히 확인한다. 등번호와 선수 이름을 비교하고 23세 이하 선수의 출전 여부, 주장 등 확인한 게 은근히 많다. 축구에 죽고 사는 사람들이 모인 만큼 선발 명단에 대한 이야기가 오간다.

두 팀 주무들의 질문에는 전력 탐색의 의미도 담겨 있는 듯하다. 벌써부터 두 팀의 경기는 시작됐다. 약 20분이 지나고 모든 절차가 끝났다. 이제 선수를 바꾸게 되면 교체 카드를 사용하는 것이다. 경기감독관의 사인이 들어간 종이는 대량 복사돼 기자, 구단 관계자 등에게 배달된다. 사무실을 벗어나 이번엔 그라운드로 다시 이동한다. 신 팀장의 눈은 빠르게 그라운드를 훑는다. 성스러운 그라운드를 밟도록 허락받은 18명의 선수 외에 다른 선수가 있는지 확인하는 작업이었다.

신 팀장과 심판진이 파이팅을 외치며 경기에 나설 준비를 마쳤다.
신 팀장과 심판진이 파이팅을 외치며 경기에 나설 준비를 마쳤다.

◆ 경기 시작 직전

경기 시작이 가까워질수록 시간과의 싸움이다. 분 단위뿐만 아니라 초까지 계산하는 피 말리는 시간이 이어진다. 신 팀장이 경기를 앞두고 대기를 하는 곳은 심판실이다. 신 팀장과 심판은 이날 경기를 가장 객관적으로 지켜봐야 하는 사람들이다. 심판실은 막바지 경기 준비로 바빴다. 통신 장비를 차고 일일이 심판복에 로고를 붙인다.

이날 주심은 고형진 심판이었다. 심판들조차 자신이 그 경기의 주심인지 대기심인지는 경기 시작 1시간 전 경기감독관의 통보로 알 수 있다. 불미스러운 일을 막으려는 노력이다. 심판들은 진지한 자세로 경기 시작을 기다렸다. 이정민 부심은 "당연히 경기를 앞두고 긴장을 한다. 그러지 않으면 실수할 확률이 커진다"고 털어놨다. 더 이상 말을 걸기가 미안해졌다. 누구에게도 환영받기 힘든 심판은 참으로 극한 직업으로 보였다. 심판들과 신 팀장은 경기 시작 10분 전 파이팅을 외치고 그라운드로 나갈 준비를 마쳤다.

<②편에 계속>

[더팩트ㅣ이현용 기자 sporgon@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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