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라고?' 서울 차두리가 19일 열린 슈퍼매치에서 팀의 세번째 골을 성공시킨 뒤 수원 팬들 앞에서 도발적인 세리머니를 펼치고 있다. / 수원월드컵경기장 = 최용민 기자 |
75번째 슈퍼매치가 수많은 이야기를 남기고 막을 내렸습니다. 포근한 날씨가 수원월드컵경기장을 감싸는 19일 2만 9406명의 관중이 이야기를 함께 나눴습니다. 왜 '슈퍼'매치인지 이유를 알린 한 편의 드라마가 그라운드에 수놓아졌습니다.
19일 하늘은 밝게 미소 지었습니다. 보송보송하게 마른빨래마냥 나뭇잎들이 싱그럽게 마지막 푸른빛을 방출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짜증이 나는 더위는 아니었습니다. 기분 좋은 햇살을 맞으며 운전대를 잡았습니다. 창문을 열고 선선한 가을바람을 맞으며 수원월드컵경기장에 도착했습니다.
경기 시작 1시간 전이었지만 많은 팬들이 경기장 주변에 보였습니다. 슈퍼매치를 맞아 통천으로 가린 2층까지 개방한 수원월드컵경기장은 팬들의 발길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슈퍼매치를 기다리는 팬들의 각오는 대단했습니다. 서울 서초구 잠원동에서 원정 응원을 온 강지유(28) 씨는 "올해 수원한테 1-5로 졌다. 지난 경기는 비겼지만 너무 수비적으로 나섰다. 이번엔 시원한 공격 축구로 승리하길 원한다"고 강한 어조로 말했습니다. 수원에 사는 이치열(31) 씨는 "최근 수원은 분위기가 좋고 서울은 안 좋다. 그대로 이어지는 결과가 나왔으면 좋겠다. 대승을 기대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감독들의 신경전도 대단했습니다. 경기에 앞서 감독들은 기자들과 인터뷰를 합니다. 공식적인 기자회견과 달리 농담이 오가고 편안 이야기를 주고받는 자리입니다. 최용수 감독은 이영표 KBS 해설위원과 함께 기자들을 맞이했습니다. 이영표 해설위원이 KBS 신입 기자를 소개하자 최용수 감독은 "너도 막내아냐? 너는 비정규직이잖아"라고 말해 취재진의 웃음을 자아냅니다. 특유의 재치가 인터뷰 내내 묻어나옵니다. 서정원 감독의 분위기는 조금 달랐습니다. 전날 독일에서 스승 디트마르 크라머 감독의 별세 소식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서정원 감독은 크라머 감독과 올림픽 대표팀 시절 인연을 맺었습니다. 검은색 정장과 넥타이를 착용한 서정원 감독은 "이 자리에 있기까지 가장 큰 영향을 준 분이다"고 밝혔습니다. 특유의 차분한 음성이 이날따라 슬프게 들렸습니다.
'감동 시축!' 2011년 K리그 경기 도중 심장마비로 쓰러진 뒤 기적적으로 의식을 회복한 신영록이 '슈퍼매치'의 시축자로 나섰다. |
◆ 신영록 감동 시축, 하나 된 수원월드컵경기장
이날 경기는 신영록이 시축을 맞아 의미를 더했습니다. 치열한 응원전을 벌이는 두 팀의 서포터즈도 한마음으로 신영록을 바라봤습니다. 신영록은 걸음걸이가 불편했지만 휠체어를 이용하지 않고 조금씩 걸어서 그라운드 중앙으로 나아갔습니다. 신영록이 센터써클에 다다를 수록 관중들의 박수와 함성은 커졌습니다. 이동준 주심의 휘슬 소리에 맞춰 신영록이 시축을 했습니다. 과거 푸른 유니폼을 입고 보인 강렬한 슈팅은 아니었다. 조심히 걸어 공을 찼습니다. 공은 굴러갔습니다. 하지만 선수와 팬들은 어떤 멋진 골보다 더 함성과 박수로 신영록을 맞았습니다.
'차 부자!' 차범근 감독의 얼굴이 새겨진 통천이 걸린 75번째 슈퍼매치에서 차범근이 골을 터뜨렸다. |
◆ 차범근 아들 아닌 차두리만의 존재감
경기 시작에 앞서 수원은 응원가와 함께 수원의 20주년을 맞아 특별히 제작한 통천을 내걸었습니다. 통천에는 곽희주와 염기훈, 김호 감독, 서정원 감독과 함께 차범근 감독의 얼굴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의미 있는 경기였지만 수원은 이날 승리를 챙기지 못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서울의 승리를 이끈 이는 차두리였습니다. 차두리는 2-0으로 앞선 전반 42분 수원의 공을 가로채 오른쪽을 질주한 뒤 침착한 오른발 슈팅으로 수원 골망을 흔들었습니다. 아버지의 얼굴이 걸렸던 수원 응원석 앞에서 차두리는 손을 귀에 갖다 대는 세리머니를 펼쳤습니다.
차두리는 아버지를 기억하는 수원 팬들 가슴에 지수를 꽂았습니다. 차두리는 경기가 끝나고 "수원 팬들에게 욕도 먹고 안 좋은 소리도 많이 듣는다. 그런데 골을 넣으니 조용하더라. 그런 의미에서 세리머니를 했다"며 "통천에 있는 아버지를 봤다. 자랑스럽다. K리그 흥행에 이바지할 수 있어 기쁘다"고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습니다. 차두리는 항상 K리그를 위해 흥행요소를 만들길 바라고 실천했습니다.
'상반된 분위기.' 서포터들과 승리의 기쁨을 나누는 서울 선수들(위)과 팬들에게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인사를 하는 수원 선수들. |
◆ 16년 만의 대패, 8년 만의 대승으로 갚다
서울은 지난 4월 18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73번째 슈퍼매치에서 1-5로 크게 졌습니다. 무려 약 16년 만에 경험한 4골 차 패배였습니다. 치욕적인 순간이었고 당시 최용수 감독은 "앞으로 이런 경기를 해선 안 된다"고 낮은 음성으로 다짐했습니다. 그리고 154일 만에 설욕에 성공했습니다. 75번째 슈퍼매치에서 완승을 거두며 올 시즌 처음 수원을 꺾었습니다. 서울이 수원을 세 골 차 이상으로 꺾은 것은 지난 2007년 3월 4-1 승리 이후 약 8년 6개월 만이었습니다. 서정원 감독은 "실제로 찬스가 있었지만 운이 따르지 않았다. 좋은 팀이 되기 위해선 이런 것도 헤쳐나가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서울은 이 분위기를 이어 가기 위해 노력할 것이고 수원은 반전을 노릴 것입니다. 과연 76번째 슈퍼매치의 승자는 누가 될지 다음 경기를 기다리는 이유가 하나 더 늘었습니다.
[더팩트ㅣ수원월드컵경기장 = 이현용 기자 sporgon@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