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프리즘] '쓸쓸한 사퇴' 히딩크, '아임 스틸 헝그리'라 말해주오
입력: 2015.07.01 05:00 / 수정: 2015.07.01 14:31

자 간다 거스 히딩크 감독이 지난해 7월 24일 덕성여자대학교에서 열린 드림풋살장 개장식에서 공을 차고 있다. / 배정한 기자
'자 간다' 거스 히딩크 감독이 지난해 7월 24일 덕성여자대학교에서 열린 드림풋살장 개장식에서 공을 차고 있다. / 배정한 기자

사퇴 압력에 시달리던 거스 히딩크(68)가 여론의 따가운 눈살을 끝내 이기지 못하고 네덜란드 축구 국가 대표팀 지휘봉을 내려놨다. 부임 당시엔 예상하지 못한 불명예 퇴진이다. 재기를 노리기엔 이제 너무 많은 일흔에 가까운 나이. 모두 세계 축구 흐름에 적응하지 못한 히딩크는 끝났다는 시선이 지배적이다. 과연 이대로 물러나고 말 것인가. 그만두기엔 그의 엄청난 승부사 기질과 용병술이 아깝다. 백발의 노 감독이 마지막 재기에 나서며 마지막 꽃을 피울지 관심이 쏠린다. 한국을 사상 첫 월드컵 16강에 올려놓고도 아직 배고프다며 절박한 마음을 드러낸 그가 아닌가.

네덜란드축구협회는 지난달 30일(이하 한국 시각) 홈페이지에 히딩크 감독의 대표팀 감독 사임 소식을 알렸다. 2014 브라질 월드컵이 끝난 직후인 지난해 8월 1일 루이스 판 할(63) 감독에 이어 자국 대표팀을 맡은 지 채 1년도 안 돼 자리에서 물러나고 말았다. 감독 경력의 사실상 마지막 종착역으로 자국을 선택해 유로 2016에서 화려한 피날레를 꿈꿨으나 모두 없던 일이 됐다.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1994~1998년에 이어 다시 네덜란드를 이끌고 1998 프랑스 월드컵 4강 재현을 노린 그였다. 히딩크 감독은 조용히 "좋은 결과를 내지 못해 미안한 생각뿐"이라고 변을 밝혔다.

스승을 바라보는 애제자 히딩크(왼쪽) 감독과 박지성이 지난해 7월 2일 열린 하나은행 K리그 올스타 with 팀 박지성 기자회견에 참석했다. / 더팩트 DB
'스승을 바라보는 애제자' 히딩크(왼쪽) 감독과 박지성이 지난해 7월 2일 열린 하나은행 K리그 올스타 with 팀 박지성 기자회견에 참석했다. / 더팩트 DB

사임 이유는 그간 히딩크 감독과 연관 없을 거 같던 단어 바로 '성적 부진'이다. 히딩크 감독은 네덜란드는 이끌고 총 10번의 A매치에 나서 4승 1무 5패에 그쳤다. 지난 1년 동안 네덜란드는 이탈리아, 체코, 아이슬란드, 멕시코, 미국에 차례로 패했고 터키와 비겼다. 스페인을 꺾으며 주위를 놀라게 하기도 했으나 다른 세 번의 승리는 라트비아에 두 번, 카자흐스탄에 한 번이 전부였다. 브라질 월드컵 준우승을 차지하며 축구 강국 명성을 굳건히 한 네덜란드에 성이 차지 않은 결과다.

특히 히딩크 체제에 네덜란드는 유로 2016 예선 A조에서 3승 1무 2패(승점 10)로 아이슬란드(승점 15), 체코(승점 13)에 밀린 3위에 그치고 있다. 아직 네 경기를 남겨놓고 있어 반전의 여지는 충분하다고 하지만 그간 보여준 경기력도 시원치 않다. 결과뿐만 아니라 내용도 좋지 않자 여론은 가만히 있지 않고 더 악화했다. 네덜란드 현지에선 본선 직행 티켓 마지노선인 조 2위는 고사하고 플레이오프 티켓이 걸린 조 3위도 위태롭다는 말이 심심치 않게 흘러나왔다. 이는 곧 결국 이날의 사퇴 결심으로 이어졌다. 팬의 철퇴를 앞두고 미리 손을 놓은 셈이다.

히딩크 감독은 지난 2009년 2월 첼시 임시 감독으로 부임해 2008~2009시즌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4강과 잉글리시축구협회(FA)컵 우승을 일군 뒤 내림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2010~2011년 터키 대표팀을 이끌었으나 2010 남아공 월드컵 본선 진출에 실패했고 러시아 리그 안지 마하치칼라(2012~2013년)에서 조기에 물러난 데 이어 이번 네덜란드 대표팀 사임 이력을 추가했다. 네덜란드 전 국가 대표 로날드 데 부어(45) 등은 히딩크를 향해 "옛날 전술"이라는 악평을 퍼부었다. 감독 생활 말년에 칭찬보다는 줄곧 야유를 들으며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다.

이 미소 다시 볼 수 있을까 히딩크 감독이 지난 2013년 10월 13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한국과 브라질 국가 대표팀의 평가전에 참석했다. / 임영무 기자
'이 미소 다시 볼 수 있을까' 히딩크 감독이 지난 2013년 10월 13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한국과 브라질 국가 대표팀의 평가전에 참석했다. / 임영무 기자

그간 쌓은 성과와 최근 성적은 확연히 비교된다. 한국 대표팀을 이끌었던 2001~2002년, 히딩크는 두말할 필요 없이 세계적인 명장으로 우뚝 섰다. 한일 월드컵 4강 신화를 썼고 네덜란드로 돌아가 PSV 에인트호번(2002~2006년)에서 리그 우승 3회, 컵대회 우승 1회, 2004~2005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4강 업적을 쌓았다. 이후 세계 축구 강호라 할 수 없는 호주(2005~2006), 러시아(2006~2010) 대표팀을 차례로 이끌고 각각 2006 독일 월드컵 16강, 유로 2008 4강에 올랐다. '축구 개발도상국'을 선진국 반열에 올려놓은 탁월한 지도력으로 팬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한국에선 적어도 그의 이름은 여전히 '축구대통령'과 같다.

이번 실패는 그의 내림세를 말하고 있으나 감독 커리어의 모든 것이 될 순 없다. 보여준 게 많은 만큼 따라오는 실망도 큰 법이다. 그간 히딩크 감독은 세계 최강은 아니지만, 가능성이 큰 팀을 맡아 실력을 극대화하는 용병술을 보였다. 여전히 그에겐 풍부한 경륜과 이번 실패로 뼈저리게 느꼈을 세계 축구 흐름에 대한 깨우침이 남았다. 40여 년에 이르는 감독 생활에서 여러 번 실패에도 오뚝이처럼 일어났기에 마지막 도전 가능성은 충분하다. 한일 월드컵 당시 '나는 아직도 배고프다'(I'm still hungry)는 한마디로 세계 무대에 과감히 도전장을 던진 승부사 기질을 생각한다면 그도 조용히 재기의 칼날을 준비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더팩트|김광연 기자 fun3503@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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