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적인 중년 팬!' 중년 남성 팬들이 13일 열린 안양과 부천의 경기를 보고 있다. / 안양종합운동장 = 이현용 기자 |
햇볕이 사라지자 제법 쌀쌀한 날씨였습니다. 경기장을 휘감는 바람에 옷깃을 여미게 됩니다. 하지만 안양종합운동장은 축구 열기로 일교차가 심한 날씨를 잊게 했습니다. 저마다 목소리를 높이며 응원하는 팀의 승리를 바랐습니다. K리그 클래식 경기에 비해 유난히 중년 남성 팬들이 경기장에 많이 보입니다.
여기는 13일 안양종합운동장입니다. FC 안양과 부천FC 1995의 현대오일뱅크 K리그 챌린지 9라운드 경기가 열렸습니다. 따사로운 5월의 햇살이 내리쬐는 날이었습니다. 하지만 해가 떨어지고 바람이 불자 날씨가 다소 쌀쌀해졌습니다. 그래서일까요. 경기 전 관중석이 한산합니다. 팬들로 북적이는 분위기는 아니었습니다. 경기 시작이 가까워지자 비로소 관중석은 조금씩 채워지기 시작했습니다.
20대, 30대 젊은 팬들이 다수인 K리그 클래식과 다소 다른 분위기였습니다. 가족 단위의 팬들이 손을 잡고 경기장을 찾았습니다. 안양 선수들의 상의 탈의 화보 덕분인지 여성 팬들도 많이 보였습니다. 안양이 공을 잡을 때면 여성 특유의 고음이 경기장에 울려 퍼집니다.
'언제쯤 북적일까?' 안양이 마련한 행사 부스는 뜸한 팬들의 발길로 한산한 분위기를 보이고 있다./안양=이현용 기자 |
그런데 다소 이색적인 장면이 눈길을 끄네요. 다른 경기장과 달리 중년 남성 팬들이 유난히 눈에 띕니다. 혼자 혹은 2~3명씩 짝을 지은 많은 중년 남성 팬들이 관중석을 채우고 있습니다. 목소리도 우렁찹니다. 경기장 출입 관록을 보여주듯 응원 함성보다 날 선 비판으로 열정적인 분위기를 이끌었습니다.
혼자 경기장을 찾아 그라운드를 향한 시선을 바삐 움직인 한 중년 남성 팬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그는 "운동장 근처에 살고 있다. 안양 경기가 있는 날은 마실 나온다는 생각으로 경기장을 찾는다"고 밝혔습니다. 조금 더 얘기를 들어보고 싶어 잠시 인터뷰를 하자고 제안했습니다. 하지만 그에겐 인터뷰보다 경기가 훨씬 중요했습니다. "무슨 인터뷰를…"이라며 "경기장을 자주 오니 매번 보는 사람들이 있다. 연배가 비슷한 사람들인데 눈인사를 나누기도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 순간, 안양 김선민의 슈팅이 골대 위로 벗어나자 그는 입을 닫았습니다. 그는 더운 듯 재킷을 벗었습니다. 후반 8분 응원하는 안양 GK 최필수가 슈퍼세이브로 결정적인 슈팅을 막아내자 괴성을 지르며 기뻐했습니다. 그는 선수들의 움직임만 보고도 누구인지 바로 아는 안양 전문가였습니다.
'남녀노소 우리는 안양 팬!' 안양 서포터스(위)와 레이디존에서 경기를 관람하는 여성 팬이 응원을 하고 있다. |
그의 주변에는 많은 중년 남성 팬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을 보니 약 20년 전 축구장 분위기가 떠올랐습니다. 기자가 초등학생 시절, 울산공설운동장에 자주 축구를 보러 갔습니다. 축구장은 항상 '아저씨'들로 붐볐습니다. 퇴근을 하고 회사 점퍼를 그대로 입은 거대한 인파가 축구장을 덮쳤습니다.
응원을 주도한 이들도 '아저씨 팬'이었습니다. 저마다 손에는 술잔을 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가감 없는 비판은 물론, 재치 넘치는 입담으로 주변에서 경기를 보는 이를 웃게 했습니다. 이제는 쉽게 볼 수 없는 축구장 풍경입니다.
하지만 5월 13번째 날, 20년 전 분위기를 느꼈습니다. 안양의 중년 팬은 어김없이 경기장을 찾았습니다. 더구나 1부 경기도 아니고 2부 경기를 진정으로 즐기는 분위기입니다. 아마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손주 손을 잡고 1부리그로 승격한 안양FC 경기를 응원하지 않을까요? 그는 자신의 방식으로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팀의 승리를 바랐습니다. 안양은 후반 추가 시간 극적인 1-1 동점골로 그들을 웃음 짓게 했습니다. 축구종가 잉글랜드처럼 3대가 함께 축구장에서 홈팀을 응원하는 광경을 볼 수도 있겠다는 가능성을 봤습니다.
[더팩트ㅣ안양종합운동장 = 이현용 기자 sporgon@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