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샤 파이팅! 사샤 오그네노브스키는 2009~2012시즌 성남FC에서 사샤란 이름을 달고 K리그를 누볐다. 사샤가 지난 2011년 5월 3일 열린 '더팩트'와 인터뷰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성남 탄천종합운동장 = 문병희 기자 |
인간은 다른 사람에게 자기 이름을 소개할 때 꼭 두 번 말하는 습성이 있다고 한다. 자기 이름을 더 각인하기 위해서 말이다. 누구나 자기의 이름 그대로 불릴 권리가 있다. 하지만 범위를 K리그로 옮기면 좀 달라진다. 대부분 성 대신 이름이 불리고 있고 단순 축약형이나 완전히 의미가 달리 쓰이고 있는 사례도 많다. 거두절미하고, 이제는 바꿀 때다.
다국적군 K리그 외국인 선수들이 어김없이 올해도 K리그 클래식 무대를 누빈다. 온전히 성을 등록명으로 새긴 선수들도 있고 이름을 쓰는 선수들도 있다. 이외 이름을 줄이거나 살짝 바꾼 이들도 있다. 이전보다 이름을 둘러싼 작명 논란은 확실히 많이 줄었다. 최근을 이야기하면 지난달 오르샤(22·전남 드래곤즈)는 미슬라프 오르시치 대신 오르샤로 등록명을 바꿨다. 어려운 발음 탓에 부르기 어렵다는 이유다. 본인도 만족했다는 후문이지만 고개를 갸우뚱하게 한다. 2006년 전북 입단 당시 스테비차 리스티치란 본명 대신 축약형 이름이 된 팀 동료 스테보(32·전남)와 비슷한 맥락이다.
문제는 오르시치의 사례가 K리그 전통처럼 자주 일어난다는 데 있다. 카사(26·울산)은 필립 카살리카란 본명을 놔두고 성을 줄였다. 알렉스(26·제주 유나이티드)도 알렉산더 요바노비치란 긴 성 대신 다소 흔한 이름을 선택했다. 그래도 과거보단 낫다. 졸리, 뽀뽀, 아트, 수호자, 박은호 등 본명과 상관없이 '창작물'을 연상케 하는 이름들이 존재했다. 이전에 팀을 이끈 수비수의 뒤를 이었으면 하는 바람이나 팬들이 쉽게 기억할 수 있다는 점 등 작명 이유는 다양했다. 하지만 전통성을 생각할 땐 다소 황당한 상황이었다.
내가 진짜 케빈. 인천 공격수 케빈은 K리그 통산 두 번째로 '케빈'을 유니폼 뒤에 새기고 경기에 나서고 있다. / 인천 제공 |
대부분 세 글자로 끝나는 한국식 이름처럼 외국인 선수의 이름을 축약하는 인상이 짙다. 대체로 우리보다 이름이 길다 보니 부르기 어렵고 기억하기도 어렵다. 물론 이름이 굉장히 긴 브라질 외국인 선수처럼 어쩔 수 없이 이름을 줄여야 할 때도 있다. 하지만 지나친 이름 줄이기는 옳지 않다. 리그 23년 역사상 당장 동명이인이 속출하고 있고 리그를 누빈 외국인 선수들의 발자취도 퇴색되는 결과를 낳았다. 선수 한 명이 곧 자산인 프로축구의 마케팅 측면에서 볼 때도 역방향으로 가는 일이다.
당장 샤샤란 이름을 떠올릴 때 '우승 청부사'로 수원, 성남 등에서 활약한 세르비아 그 샤샤를 생각하겠지만, K리그에 샤샤는 두 명이 더 있었다. 성남에서 활약한 몰도바 출신 공격수 샤샤와 포항에서 활약한 크로아티아 출신 샤샤다. 동유럽에서 흔한 샤샤(Sasa)란 이름을 사용한 결과다. 호주 대표팀 주장까지 지낸 사샤 오그네노브스키(35)도 영문명은 같지만, 살짝 이름을 바꾸는 구단의 기지(?)로 K리그 역사상 아직 유일한 사샤로 남았다. 이렇게 같은 이름을 가지고 다른 이름을 만든다. 제주 알렉스는 K리그 통산 8번째 '알렉스'로 불리고 있다. 시간이 흐르고 그는 팬에게 어떤 선수로 기억될까.
K리그 통산 여덟 번째 알렉스. 제주 수비수 알렉스(왼쪽)는 K리그 23년 역사상 '알렉스'란 이름을 단 여덟 번째 선수다. 알렉스가 지난해 8월 10일 열린 수원전에서 수원 공격수 로저와 공을 다투고 있다. / 수원월드컵경기장 = 문병희 기자 |
케빈 오리스가 본명인 공격수 케빈(30·전북)은 올해를 놓고 보면 팬들이 헷갈릴 이유가 없다. 다만 공격수 케빈의 활약으로 2009년 FC서울에서 뛴 프랑스 수비수 케빈 하치(33)의 존재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수비수 케빈'을 기억하긴 쉽지 않다. 실력만으로 평가받는다는 게 프로 세계지만 어딘지 모르게 억울하다. 이들 외에도 실바, 산토스 등 동명이인들은 넘쳐 흐른다. 단 1경기를 뛰었더라도 K리그를 누빈 이들의 이력도 소중하다. 외국인 선수 개인이 존재한 시간을 지켜주는 게 필요하다.
동명이인을 만들어내는 외국인 선수의 작명은 시대에 동떨어진다. 축구 본고장 유럽이나 남미는 성을 유니폼에 새긴다. 가까운 일본만 해도 그렇다. 손흥민(22·레버쿠젠)은 'SON(손)'으로 불리고 기성용(26·스완지 시티)은 'KI(기)'가 새겨진 유니폼을 입고 경기장을 뛴다. 이들은 모두 고유의 것을 그대로 존중하는 문화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유럽의 것을 모두 따라가자는 것은 아니다. 다만 K리그를 누비는 외국인 선수들도 이름보다 전통을 살릴 수 있는 성으로 불릴 권리가 있다. 또 다른 샤샤, 알렉스 양산은 이제 그만둬야 한다. 유니폼 마킹값이 조금 더 들더라도 성을 달고 누비는 외국인 선수가 보고 싶다.
[더팩트|김광연 기자 fun3503@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