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재희의 골라인] 롱볼 유나이티드? '뻥축구'에 대한 오해와 진실
입력: 2015.02.14 08:31 / 수정: 2015.02.14 15:17
롱볼도 주요 공격 전술이다! 최근 롱볼 유나이티드라는 비판과 함께 롱볼 축구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 사진은 2015 아시안컵에서 깜짝 원톱으로 한국의 롱볼 축구를 이끌었던 곽태휘가 2014 브라질 월드컵을 앞두고 몸을 푸는 장면. /최진석 기자
'롱볼'도 주요 공격 전술이다! 최근 '롱볼 유나이티드'라는 비판과 함께 '롱볼 축구'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 사진은 2015 아시안컵에서 '깜짝 원톱'으로 한국의 '롱볼 축구'를 이끌었던 곽태휘가 2014 브라질 월드컵을 앞두고 몸을 푸는 장면. /최진석 기자

맨유 '롱볼 축구' 비판 여론! 무엇이 문제인가?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의 명문 클럽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가 최근 '롱볼 유나이티드'라는 새로운 별명을 얻었다. 9일(한국 시각) 치른 웨스트햄 유나이티드(이하 웨스트햄)와 원정 경기에서 극적인 1-1 무승부를 기록한 뒤 상대 감독이 한 말이 발단이 됐다. 웨스트햄의 샘 앨러다이스 감독은 "우리는 롱볼 유나이티드에 대응하지 못했다"(we couldn't cope with the long ball United)는 의견을 드러냈고, 언론과 많은 팬들이 손을 올리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이해하기 힘든 상황이다. '롱볼 유나이티드'가 '롱볼(wrong ball) 유나이티드'로만 비치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팀이 지고 있는 상황에서 동점골을 만들기 위해 '롱볼'을 구사한 것은 욕먹을 일이 아니다. '롱볼 축구'를 하든 '짧은 패스게임'을 하든 가장 확률이 높다고 판단되는 카드를 꺼내서 목표를 이루면 되는 것 아닌가. 맨유의 루이스 판 할 감독은 '롱볼 논란'이 거세지자 객관적인 데이터까지 보여주며 상황에 맞게 '롱볼'을 선택했다고 강조했다. 팀이 뒤지고 있었고 가장 확률 높은 마루앙 펠라이니의 큰 키(194cm)를 적절히 활용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판 할 감독의 반박. 맨유 판 할 감독이 롱볼 축구 비판에 맞서기 위해 내세운 자료. /맨체스터이브닝뉴스 캡처
판 할 감독의 반박. 맨유 판 할 감독이 '롱볼 축구' 비판에 맞서기 위해 내세운 자료. /맨체스터이브닝뉴스 캡처

국내에선 '롱볼'을 '뻥축구'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어감이 매우 좋지 않지만 '뻥축구' 자체가 잘못된 공격 방법은 아니다. '뻥축구만을' 구사하면 상대의 예측에 막힐 가능성이 높아져 '단순하다'는 혹평을 듣게 되지만, 상황에 맞게 '뻥축구'를 적절히 섞어서 공격하는 것은 현명한 선택이 될 수 있다.

'뻥축구'는 투박하고 멋이 없지만 가장 확률 높은 공격 패턴 가운데 하나다. 신체조건이 좋은 선수를 상대 진영에 박아놓은 뒤 공을 높게 차올려 공중에서 50-50 상황을 만들고, 떨어지는 공을 다시 처리해 골을 노리는 게 '뻥축구'의 핵심이다. 단순하지만 여러 가지 조합을 섞어 공격하는 다른 공격 전술보다 더 편하게 진행할 수 있다. 짧은 패스나 드리블 돌파로 상대 진영을 돌파하는 것보다 찬스를 만들 확률이 더 높다. 시간이 없을 때 대부분의 팀이 '롱볼 축구'를 주로 하는 이유도 '롱볼의 경제성' 때문이다.

2000년대 중반부터 '패스게임'과 '역습전개'가 축구 공격 전술 대세로 자리를 잡았다. 선수들의 기술이 점점 더 좋아지면서 예술 같은 패스를 주고받으며 골을 넣는 '티키타카'가 유행했고, 바람 같은 스피드와 높은 골 결정력으로 눈 깜짝할 사이에 골을 만드는 '카운터 어택'이 환하게 빛났다. 하지만 그런 가운데도 '롱볼 축구'는 사라지지 않았다. 위에 언급한 '롱볼 축구'의 경제성을 버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티키타카와 카운터 어택으로 무장한 최강자를 꺾었던 팀들의 주요 공격 전술이 바로 적절한 '롱볼 축구'와 세트 피스 활용이었다.

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이끄는 한국도 호주와 2015 아시안컵 결승전에서 '뻥축구'를 구사해 효과를 톡톡히 봤다. 후반 내내 동점골 찬스를 잡아나가면서도 2%가 부족해 끌려가던 슈틸리게 감독은 0-1로 뒤진 후반 42분 중앙수비수 곽태휘를 원톱으로 끌어올려 '롱볼 축구'를 펼쳤다. 경기 종료가 눈앞에 다가온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롱볼 효과'가 발휘됐다. 헤딩력이 가장 좋은 곽태휘가 전방 공중전을 시도하자 호주 선수들은 뒷걸음질 쳤고, 후반 46분 손흥민이 극적인 동점골을 작렬했다. 이전까지 빠른 패스게임을 시도했지만 동점골을 성공하지 못했던 한국은 '롱볼 축구'로 호주 수비진을 흔든 뒤 절묘한 패스게임으로 끝내 승부를 원점으로 돌렸다.

판 할 감독 맨유팬들은 실망하지 말아야 한다! 판 할 감독은 롱볼 축구에 대한 논란에도 자신감을 잃지 않고 있다. /맨체스터이브닝뉴스 캡처
판 할 감독 "맨유팬들은 실망하지 말아야 한다!" 판 할 감독은 '롱볼 축구'에 대한 논란에도 자신감을 잃지 않고 있다. /맨체스터이브닝뉴스 캡처

최근 만난 한 고등학교 축구 감독은 '롱볼 축구'에 대한 오해가 없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격 패턴은 당연히 여러 가지를 섞어서 완성도를 높여야 하고, '롱볼 축구'가 그 가운데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롱볼 자체는 매우 세밀한 공격 전술이다. 정확하게 롱볼을 올려야 하고, 공중에서 공을 떨어뜨리는 선수는 타점을 잘 맞춰야 한다. 그리고 마무리 기회가 오면 빠른 타이밍에서 슈팅을 쏴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어서 "요즘 애들이 기술은 많이 좋아졌는데, 너무 예쁘게만 공을 차려 한다"며 "기본 체력과 '피지컬' 향상을 위한 노력이 부족하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롱볼 유나이티드' 논란의 또 다른 흥밋거리는 가장 먼저 말을 꺼낸 앨러다이스 감독이 대표적인 '롱볼 지도자'라는 사실이다. '빅 샘'이라고 불리는 그는 중하위권 팀의 지휘봉을 잡고 선이 굵은 '롱볼 축구'로 강호들을 곧잘 꺾어 지도력을 인정받은 인물이다. 올 시즌 미드필드진의 짜임새를 더해 '롱볼'과 섞어가며 웨스트햄의 좋은 성적(14일 현재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 8위)을 이끌고 있다. 그런 그가 '롱볼'을 비판했으니 아이러니하다.

축구는 '골 싸움'이다. 화려하고 빠르고 멋있어도 골을 잡아내지 못하면 '헛심'을 쓴 꼴이 된다. 골을 터뜨리고 이기기 위해서 쓰는 공격 전술 가운데 '롱볼'도 포함된다. '롱볼'(long ball)을 잘 활용하면 '롱볼'(wrong ball)이 아닌 '위협적인 무기'가 될 수 있다.

[더팩트 | 심재희 기자 kkamanom@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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