檢, 이재용 영장 청구 결국 자충수 되나…수사심의위 권고에 '쏠린 눈'
입력: 2020.06.10 06:30 / 수정: 2020.06.10 06:30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법원의 구속영장 기각 결정이 내려진 9일 오전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에서 귀가하고 있다. /임세준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법원의 구속영장 기각 결정이 내려진 9일 오전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에서 귀가하고 있다. /임세준 기자

재계 "이재용 국정농단 재판 때와 상황, 근본적으로 다르다"

[더팩트 | 서재근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검찰이 청구한 구속영장이 기각되면서 경제계 안팎의 시선이 검찰수사심의위원회(수사심의위)의 판단에 쏠리는 분위기다.

특히, 이번 구속영장 기각으로 사정 당국이 대기업 관련 수사 건 가운데 전례 없이 많은 시간을 들였다. 수십여 차례의 압수수색과 관련자 수백여명에 대한 소환 조사에 나섰음에도 사실상 검찰이 혐의를 입증할 만한 '스모킹 건(결정적 증거)'을 확보하지 못했다는 평가에 무게가 쏠리면서 일각에서는 수사심의위의 불기소 권고 가능성을 점치는 관측도 나온다.

◆ 검찰, '수 싸움' 판정패…재계 "애초 구속 사유 없었다"

전날(9일) 서울중앙지법 원정숙 영장전담부장판사는 이 부회장과 최지성 전 삼성 미래전략실장(부회장), 김종중 전 미전실 전략팀장(사장)에 대해 검찰이 청구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불구속재판의 원칙에 반해 피의자들을 구속할 필요성 및 상당성에 관한 소명이 부족하다는 게 법원의 판단이었다.

무려 1년 8개월여에 걸친 수사 기간 동안 혐의를 입증할 만한 단서를 확보하지 못했다는 각계의 지적에도 이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를 강행한 검찰로서는 '무리한 수사'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실제로 수사 기간 동안 검찰이 삼성을 대상으로 벌인 압수수색 횟수는 50여 차례, 관련인 소환 조사는 430여 회에 달한다. 영장실질심사를 위해 제출된 검찰의 수사 기록 분량만 400권, 20만 쪽이다.

특히, 검찰에서 이 부회장이 일련의 불법행위 과정에 깊게 관여했다고 보는 삼성바이오로직스(삼성바이오)의 분식회계 의혹의 경우 지난 2015년 시민단체의 고발을 기점으로 햇수로 6년이 지났음에도 결정적인 증거는 드러난 바 없다. 검찰이 앞서 회사 가치를 고의로 부풀린 장본인으로 지목한 김태한 삼성바이오 대표 역시 영장실질심사에서 법원은 '명확한 증거 부재'를 이유로 구속영장을 기각한 바 있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부당합병 의혹 역시 마찬가지다. 이미 삼성 측이 이 부회장의 1, 2심 재판부를 비롯해 지난 2017년에 치러진 삼성물산 합병 무효 소송에서도 '삼성 승계와 무관하다'는 소명을 마쳤고, 각 재판부에서도 같은 맥락의 판단까지 내렸다. 검찰 측이 '시세 조종'의 근거로 제시한 합병 전 삼성물산의 카타르 복합화력발전소 기초공사 수주 공시 건 역시 지난 2017년 이 부회장의 1심 재판과정에서 다뤄진 사안이다.

1년 7개월여 동안 이재용 부회장과 삼성을 향한 고강도 수사를 단행해 온 검찰은 이번 법원의 구속영장 기각 결정으로 무리한 수사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더팩트 DB
1년 7개월여 동안 이재용 부회장과 삼성을 향한 고강도 수사를 단행해 온 검찰은 이번 법원의 구속영장 기각 결정으로 '무리한 수사'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더팩트 DB

◆ 수사심의위 '불기소' 권고 가능성 '촉각'…돌아선 여론·불안한 대외정세 '관건'

검찰이 삼성의 '기 싸움'에서 사실상 판정패를 당하면서 수사심의위가 내릴 판단의 '무게감'은 더욱 커지게 됐다. 삼성 측 변호인단 역시 전날 "향후 검찰 수사심의 절차에서 엄정한 심의를 거쳐 수사 계속과 기소 여부가 결정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라고 밝힌 바 있다.

앞서 이 부회장 측은 지난 2일 검찰의 기소가 타당한 것인지 여부를 따져봐 달라며 수사심의위 소집 신청서를 제출했다. 수사심의위는 검찰 스스로 권력 남용의 부작용과 폐해를 없애겠다며 검찰 수사 결과의 적법성을 투명하고 공정하게 평가하기 위해 지난 2018년 도입된 제도다.

서울중앙지검 검찰시민위원회는 오는 11일 수사심의위 소집 여부를 결정할 부의심의위원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부의심의위원회는 검찰시민위원회 중 무작위 추첨된 15명으로 구성된다.

수사심의위의 권고는 검찰이 이를 반드시 따라야 하는 '강제성'은 없다. 그러나 애초 제도 도입 취지와 더불어 이번 구속영장 기각으로 역풍을 맞은 검찰 안팎의 상황을 고려하면, 권고가 미칠 영향력은 클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관측에 무게가 실린다.

특히, 사정 당국의 무리한 수사를 향한 경제계 안팎의 회의적인 시선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미중 무역분쟁 등으로 커져가는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을 비롯한 대외 여건이 권고 향방을 가늠하는 데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수사심의위가 '불기소' 권고를 내릴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점쳐진다.

이재용 부회장은 경영 복귀 이후 수조 원 규모의 신규 투자를 진두지휘한 데 이어 지난달 초 대국민 기자화견 이후 노사문화 재정립, 사회와 소통 강화 등 내부 조직문화의 대대적인 체질개선 작업에도 속도를 높이고 있다. /이동률 기자
이재용 부회장은 경영 복귀 이후 수조 원 규모의 신규 투자를 진두지휘한 데 이어 지난달 초 대국민 기자화견 이후 노사문화 재정립, 사회와 소통 강화 등 내부 조직문화의 대대적인 체질개선 작업에도 속도를 높이고 있다. /이동률 기자

외신에서도 '사법 리스크'가 삼성 경영에 미치는 영향력과 그에 대한 우려를 집중 조명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현지 시간으로 9일 "지난 3년간 법적 문제로 삼성은 거의 마비 상태에 놓였다"라며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을 헤쳐나가야 하는 이 부회장과 삼성에 사법 리스크가 연장되는 것은 상당한 부담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블룸버그통신 역시 같은 날 "이 부회장 부재가 현실화할 경우 인수합병(M&A) 또는 전략적 투자 등 중요 의사결정이 어려워지기 때문에, 이 부회장에 대한 사법 리스크는 삼성에 큰 우려로 남아 있다"고 전했다.

한 재계 관계자는 "이번 검찰의 수사는 국정농단 이슈 때와 근본적으로 다르다"라며 "삼성바이오 분식회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부당 합병 등 핵심 쟁점을 두고 경제계는 물론 학계와 심지어 법조계에서조차 유무죄를 판가름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라는 지적과 특정 기업 및 총수를 향한 '표적 수사'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수사심의위 판단을 쉽게 예단할 수 없지만, '무리한 수사'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은 상황에서 만일 검찰이 외부 목소리에 귀를 닫고 기소를 감행한다면 비난의 목소리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likehyo85@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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